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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찬 May 23. 2024

잃어버린 돌을 찾아서

끊임없이 덜컹거리며 어두운 터널을 달리는 전철의 굉음은 귀를 덮은 이어폰으로도 막을 수 없었다. 흔들거리는 얼굴들엔 표정이 없었고 굉음에 묻힌 무거운 침묵은 굉음보다 견디기 힘들었다. 반복되는 평범한 퇴근길 풍경이었다.

그 당시 두 남녀가 눈에 띈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온통 무채색인 전철 안엔 그들만 다채롭게 피어있었으니깐. 서로가 서로에게 유일한 서로인 것처럼 두 눈을 크게 떠 상대를 바라보는 그들은 온갖 생기발랄한 표정과 손짓으로 그들만의 언어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때 내가 로맨틱한 음악을 듣고 있었기 때문일까? 그들의 소리 없는 말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느껴졌고, 갑자기 수어가 배우고 싶어졌다.

사회복무요원으로 장애인 복지관에서 일한 적이 있다. 일하면서 마음에 무거운 돌 같은 것이 생겼다. 장애인이 소수라는 이유로 다수의 비장애인이 장애인들을 섬으로 내몰았다는 생각. 나도 다수에 속해 다수의 편의대로 만들어진 시설과 제도를 누리고 있다는 것.

그런데 내가 얼마나 치사한 사람인지, 어느 순간 그 돌이 사라져 있었다. 그러다 퇴근길 전철에서 수어로 대화하던 남녀를 보았다. 저기서 잃어버린 돌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거란 예감이 들었다. 며칠 후 지역 농아인협회에서 운영하는 수어 교실에 등록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 나는 수어를 거의 할 줄 모른다. 처음의 비장했던 마음은 3일을 채 가지 못했다. 수어는 두 손만 사용하는 언어인 줄 알았던 것이 가장 큰 패착이자 착각이었다. 수어에 두 손만큼 중요한 것은 바로 얼굴이라는 점을 그때는 몰랐다.

수어로 '밖에 비 와.'와 '밖에 비 와?'를 결정하는 것은 놀랍게도 얼굴 표정이다. 떡볶이가 조금 매운지, 아주 매운지, 미치게 매운지를 손이 아닌 비수지 기호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당시 손만 열심히 풀던 나는 얼굴을 쓸 줄 몰랐다. 처음 보는 낯선 수어 교실 사람들 앞에서 평생 지어보지 않은 표정을 짓는 게 너무 어렵고 부끄러웠다.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를 내려놓지 못한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부끄러운 것이 아닌데... 부끄러워했던 그때의 나를 생각하면 너무 부끄럽다.

손에 무언가를 가득 쥔 채로는 새로운 것을 잡을 수 없다. 배움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내려놓음이 아닐까 싶다.

그게 시간이든 돈이든 관계든 체면이든, 지금 손에 꽉 쥐고 있는 무엇인가를 포기할 수 있어야 배울 수 있다. 수어를 배우고 싶은 마음이 아직 남아있을 때 내려놓아야 한다. 나를 내려놓아야 잃어버린 그 돌을 다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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