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해서 메일을 열어보니, 생각지도 못한 자료가 도착해있었다.
'안녕하세요 변호사님. 강대만씨 아내입니다. 탄원서를 작성해 보내드립니다.'
강대만씨는 얼마 전 옆자리에 애인을 태우고 술을 마신채 길거리를 질주하다 뺑소니로 사람을 치어 구속된 피의자였다. 그는 전과는 없었지만 경찰 수사 단계에서 불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여러 거짓말을 했고, 그 과정에서 아내에게 모든 사실을 탄로당한 상태였다.
보다 못한 강대만씨의 절친한 친구가 구속당한 그를 대신해 우리 사무소에 각종 양형자료 등을 챙겨주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아내가 '탄원서'를 보내온 것이었다.
궁금한 마음에 바로 탄원서 파일을 열어봤다. 평범한 탄원서였다. 피의자는 선량하게 살아왔으며, 한 순간의 실수로 인해 이러한 일을 저질렀으니 최대한 선처를 바란다는 그런 내용.
다만 눈길을 끄는 문장이 있었는데, '남편이 심한 우울증을 겪을때 일이 바빠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다. 배우자로서 무심했던 것을 반성한다.'라는 문장이었다.
그녀는 어떤 마음으로 저 문장을 적었을까. 다른 여자와 함께 술에 취해 광란의 질주를 하다 구속된 남편을 위한 탄원서를 적어내려가는 아내의 마음은 무엇일까. 나 역시 결혼할 사람이 있지만 선뜻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그날 이후로도 메일은 계속 이어졌다. '유리한 양형을 받으려면 어떤 자료가 필요할까요?' 적극적인 질문이 이어졌고, 거기에 대해 충실한 답변을 이어나갔다. 피의자가 음주운전 전과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단순 음주로 처음 걸린것이었다면 매우 가벼운 처벌을 받았겠지만, 어디까지나 '뺑소니'사고였던데다 음주수치도 매우 높았고 이미 구속까지 된 상황이라 마냥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관건은 피해자 합의인 상황. 아내분과 함께 힘을 모아 피해자에게 강대만씨의 진심어린 사과의 뜻을 대신 전달하기로 했다. 아내분의 절실한 마음과, 나와 피해자 변호사간의 수십통의 전화가 오간 끝에 합의는 원만히 이뤄졌다.
강대만씨의 아내는 법정에 방청까지 왔었다. 방청석에 앉은 순간 부터 그녀는 눈물을 훔치기 시작하더니 이내 자신의 남편이 포승줄에 묶여 나오는 모습을 보고 눈에 띌 정도로 울기 시작했다. 죄인으로서 피고인 석에 앉은 그는 자신을 위해 눈물을 연신 쏟는 아내에게 잠깐 물끄러미 눈길을 줄 뿐이었다.
변론이 끝난 후, 그녀는 내게 한달음에 달려와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다. 여타 다른 구속 피고인들의 아내들처럼 말이다. 한번도 배신당한 적 없는 것 처럼, 그녀의 머릿속에 자신의 남편이 '바람을 피우다' 음주운전 뺑소니 사고를 냈다는 사실은 날아간듯 했다.
친절하게 그리고 성심껏 답변을 하긴 했지만 그녀에게 정말 묻고 싶었다. '정말 남편을 용서하셨는지'. 하지만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금방 접어버렸다. 내가 그들 부부 사이의 깊은 내력을 어떻게 다 알겠는가. 그들 부부 사이에는 아이만 둘이 있었다. 아이들 때문에 참고 사는걸까, 라는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그렇다기엔 그녀가 쏟은 눈물은 분명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위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강대만씨는 공판 끝에 집행유예를 받게 됐다. 음주운전의 전력이 없는 점, 피해자의 처벌불원의사가 있는 점, 가족등과의 유대관계가 있어 사회에 복귀하더라도 앞으로 재범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 등이 참작된 것이었다.
아내분은 내게 고마웠다며 장문의 메일을 보내왔다. 처음 내게 남편을 위한 탄원서를 보내올때는 단 한문장이었지만, 이번엔 이번 일을 겪으면서 어떤 감정이 들었는지, 자신과 내가 함께 힘쓴 만큼 좋은 결과가 나와서 정말 기분이 좋다는 내용으로 메일이 가득차있었다.
그렇지만 그녀가 쓴 글 어디에서도 남편의 '불륜' 때문에 상처받은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그녀는 지난한 공판 과정과 정신없는 피해자와의 합의 과정, 그리고 변호사의 득달같은 양형자료 요청 속에서 자신이 가장 상처받은 사실을 잊기로 결심하였는지도 모르겠다.
집행유예로 풀려난 그보다, 상처 받은 기억을 조금이라도 잊은 그녀의 마음이 위로받았기를 바란다. 어쩌면 이번에 나의 진정한 의뢰인은 그의 아내였던 것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