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태・조수용,『나음보다 다름』
어릴 때 엄마는 나에게 화장실 청소를 시켰다. 내가 아무리 구석구석 깨끗하게 청소해도, 엄마는 지저분한 곳을 찾아내곤 나를 꾸짖었다.
난 혼나는 게 싫었지만, 구석구석을 꼼꼼히 청소하기는 더 싫었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땀도 너무 많이 났다. 나는 <대충 청소하고 엄마에게 혼나지도 않을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난 결론을 냈다. '화장실이 실제로 깨끗한지/아닌지의 문제가 아니다. 엄마에게 깨끗하게 보이는지/아닌지의 문제다.' 둘은 엄연히 다른 문제라고 생각했다. 문제의 범위를 좀 더 좁게 정의하니 해결 방법이 쉽게 나왔다. "사람의 시선이 어쩔 수 없이 잘 가는 곳을 신경 쓰자. 지문, 얼룩, 때가 특히 잘 보이는 곳을 깨끗하게 닦자."
난 청소를 대충 한 후, 아래 부분만 광이 나게 닦았다. 세척액을 뿌리고 몇 번 닦으면 금방 광이 났기 때문에, 이 작업은 10분도 안 걸렸다.
1. 지문이 잘 보이는 곳 닦기
- 거울
- 세면대 수도꼭지
- 욕조 수도꼭지
- 변기 물 내림 버튼
- 수건걸이
2. 검은 얼룩이 잘 보이는 곳 닦기
- 변기 표면
- 욕조 표면
- 하얀 선반
청소된 화장실을 본 엄마가 말했다. "이거 봐. 열심히 하니까 되잖아!"
열심히 안 했다. 평소보다 대충 했고 시간은 반도 안 걸렸다. 하지만 내 입장에선 목표를 달성했고, 훨씬 좋은 결과가 나왔다. 난 이 일을 통해 깨달았다. 내가 누구에게 평가받아야 할 때, '실제로 어떤지'보다 '평가자가 어떻게 인식할지'에 초점을 맞추고 해결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새로운 제품을 시장에 출시해 본 메이커들은 마케팅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것이다.
아무리 좋은 제품을 만들어도, 알리지 않으면 사람들은 쓸 수 없다. 물론 바이럴을 잘 타면 마케팅 없이도 새로운 유저가 생길 수 있지만, 가만히 있으면서 '바이럴 될 거야'하는 건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그럼, 마케팅만 성공한다고 모든 사람들이 잘 쓸까? 아니다.
큰 규모의 페이드 마케팅을 진행하면 유저들이 늘어나겠지만, 그건 아마 일시적 현상일 것이다. 가치를 느끼지 못한 유저들은 금방 이탈한다.
그럼 유저들이 이탈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들의 머릿속에 잘 자리 잡아야 한다.
유저들이 우리 서비스가 필요한 특정 상황이 닥쳤을 때, 무의식적으로 쉽게 기억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택시가 필요한 순간, 곧장 '카카오 택시'를 떠올리는 것처럼.
직역하면 '동일한 점'이다.
POP는 서비스를 처음 접한 사람들이 '아 대충 이런 느낌의 서비스구나'하며 서비스에 대해 쉽게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Lush를 생각해 보자.
Lush는 자기네 제품을 강렬한 향기와 컬러를 가진 <자연주의 목욕용품>으로 소개한다. 사람들은 '자연주의 목욕용품'을 보고, '더바디샵처럼 목욕할 때 쓰는 제품인데 친환경적인 거구나.' 하고 생각한다. 짧은 단어만으로 언제, 왜 사용해야 하는 제품인지를 사람들에게 이해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이때 '자연주의 목욕용품'이라는 단어가 바로 POP이다.
직역하면 '차이점'이다.
POP를 통해 어떤 류의 서비스인지 이해시켰다면, 이제 차별점(POD)을 통해 왜 이 서비스를 써야 하는지를 어필하고 강력히 각인시켜야 한다.
POD는 딱 1가지일수록 좋다.
요즘은 IT 서비스 종류도 많고, 대중들에게 노출되는 광고도 매우 많다. 사람들에게 가장 임팩트 있는 딱 1개의 차별점만 확실하게 전달하자. 2~3개 전달해 봤자 오히려 기억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하나의 브랜드에 섣불리 여러 개의 개념을 덧붙이면, 말 그대로 '죽도 밥도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별점을 1개만 쓰는 것은 여전히 걱정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그럴 필요 없다. 디지털 세상에서는 서비스의 콘셉트가 너무 뾰족해서(좁은 타게팅) 수요가 적다고 해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현실 세상보다 보관/재고의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오히려 차별화되지 않은 제품이 사라진다. 차별화만 제대로 된다면 어디서든 시장이 형성되는 것이 요즘이다.
POP는 기업마다 각양각색이며, 정답이 없다. 소비자가 '우리 제품이 어떤 카테고리에 속하는 서비스인지'를 알게 해주는 포인트이기 때문에, 택시 잡는 서비스가 될 수도 있고 / 메신저 서비스가 될 수도 있다.
POD는 소비자들에게 우리 제품을 사야 하는 이유로 느껴지는 '차별점'이다. 차별점은 사람들이 제품을 쓰고 싶은지 / 아닌지를 갈리게 만드는 아주 중요한 포인트이다. 이 책이 좋은 이유는 바로 이 '차별점'을 어떻게 하면 잘 만들고 포장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노하우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이것이 곧 대중들이 내 서비스를 '쓰고 싶은 제품'으로 느끼게 만드는 노하우다.
먼저, 제품은 '3D적인 차별점'을 갖고 있어야 하며, 소비자들에게도 그렇게 인식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방법을 사용하자.
[ 우리 제품의 차별점을 3가지 관점에서 검토하기 ]
1) 소비자들이 호감을 가질 수 있는(desirable) 포인트인가?
2) 소비자들이 '독특하다'라고 느낄 수 있는(distinctive) 포인트인가?
3) 오래 지속할 수 있는(durable) 포인트인가?
이해를 돕기 위해 예시가 준비되어 있다. (ex. Lush의 3D 전략)
1) 신선한 핸드메이드 제품임을 강조하여 호감을 사고(desirable),
2) 강렬한 향, 화려한 컬러가 독특하게 느껴지며(distinctive),
3) 크리에이티브 제품들(폭탄처럼 투하하는 입욕제)을 계속 개발하며 지속한다(durable).
여기서 특히 주의해서 받아들여야 할 점은 Durable(지속성)이다.
지속성은 본래 그대로 쭉 유지하는 것을 뜻하지만, 여기서는 변화 없이 가만히 있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지속성의 핵심 전략은 Lush처럼 사람들의 충성심(Loyalty)을 잘 유지하는 것이다. 본질은 흔들지 않되, 껍질은 끊임없이 바꿔야 한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사람들은 최초/유일/최고를 더 잘 기억하고, 믿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2등 했어요!"라고 외치는 것은 그게 큰 시장일지라도 효과가 별로다. 좀 더 작은 시장일지라도 "저희가 여기 1등이에요!"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얘기다.
이 책의 글쓴이는 이 모든 것들을 '제품의 요건'이 아닌 '심리적 인식의 요건'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결국 모든 건 심리 싸움이다.
이 책의 내용을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POP: 어떤 제품/서비스인지 사람들의 머리 안에서 명확히 카테고라이징 될 수 있어야 한다.
POD: 동종 카테고리의 다른 서비스들과 어떤 차별점이 있는지 명료하게(1개) 어필해야 한다.
Distinctive, Desirable: 그 차별점은 사람들에게 독특함과 호감을 동시에 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Durable: 제품의 가치관은 유지하되, 껍질을 계속 바꾸며 고객이 지루함을 느끼지 않게 해야 한다.
FOB: 고객들에게 더 잘 기억될 수 있도록 어떻게든 최초/유일/최고 타이틀을 찾아 붙여라.
도움이 많이 되는 책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내가 평소에 어렴풋이 생각하던 개념'을 정확한 언어로 표현해 선명화시켜 주는 책이다. 이 책이 그랬다.
제품,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들은 '대중의 머릿속에 어떤 이미지로 자리 잡고 싶은지'를 고민해야 한다. 이것이 내 머리를 어렴풋이 부유하던 개념을 선명화한 문장이다. 이것이 홍보 마케팅, 브랜딩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5년 전에 첫 직장에서 마케팅 업무를 할 때엔 이런 개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마케팅을 고려한 서비스 기획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대부분은 서비스 기획자가 서비스를 만들고, 마케터가 마케팅 포인트를 잡는다. 보통 기업들은 그렇게 영역이 정해져 있다. 하지만 사람들의 머릿속에 둥지를 잘 틀고 사용성과 매출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기획 전략과 마케팅 전략이 같은 곳을 겨냥하고 있어야 한다. 두 직무를 이해하고 고려하는 사람은 더 높은 등급의, 가치 있는 기획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이 내가 기획자로서 또 한 번 레벨 업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느낀다. 기획자/마케터라면 꼭 한 번 읽어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