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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 Mar 27. 2024

나의 걷기는 나를 어디로 데리고 갈까?

거칠부의 '히말라야를 걷는 여자'를 읽고


삼월 첫 주, 전입 교사 환영회식을 할 때 옆자리에 앉은 선생님에게 퇴근 후에 학교 체육관에서 배드민턴을 치자고 권했다. 그랬더니 허리가 안 좋아서 요즘은 걷기를 주로 하고 예전에는 등산을 많이 했었다고 했다. 그래서 봉정암(요 몇 년 사이 가장 힘든 등산이었던)에 가보셨냐고 했더니 허리 아프기 전에는 봉정암 뿐 아니라 대청봉을 한 달에 세 번이나 다녀온 적이 있다고 했다. 대청봉을 그렇게 간 이유는 히말라야에 가기 위해서였으며 그 후 남편과 함께 실제로 히말라야에 다녀왔다고 했다. 혼자서도 종종 설악산을 간다고 하여 혼자 가면 무섭지 않냐고 물었다. 높은 산에는 힘들어서 잡범들이 오지 않는다, 높은 산에는 멋있는 사람들만 온다고 말했다.



살면서 히말라야에 다녀온 사람을 바로 앞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라며 사진을 보여 줄 수 있냐고 물었다. 힘들 때 보려고 핸드폰에 넣어 다닌다는 히말라야 여행 사진 몇 장을 보여주었다. 히말라야에는 에베레스트베이스캠프인 EBC와 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인 ABC가 있는데 ABC코스로 많이들 간다고도 알려주었다. 하려던 배드민턴 이야기, 봉정암 이야기는 쑥 들어가고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abc코스라는 단어가 내 귀에 쏙 들어왔다.



다음날  A(나의 배드민턴 선생님)에게 히말라야를 다녀온 사람이 우리 학교에 있다고 했더니 A의 동생도 히말라야를 다녀왔다고 했다. 블랙야크에서 100대 명산을 완주한 사람들을 모아 히말라야를 보내준 적이 있었는데 그때 선발됐다며. 세상에는 정말 대단하고 멋있는 사람들이 많다. 내 시야가 좁아서 그런 사람들을  못 봤을 뿐이었다.



책을 꼭꼭 씹어 먹기로 다짐한 후 첫 책이다. 직장 동료의 책상에서 '히말라야를 걷는 여자'라는 책 제목을 보고 빌려가도 되냐고 했더니 그냥 가지라고 했다. 가져온 지 한 달이 지난 어제서야 책을 읽었다. 의식적으로 천천히 읽으려고 노력했다.


어제 다 읽었지만 오늘 아침에 다시 처음부터 끝까지 빠르게 두 번을 넘겨봤다. 그 이유는 작가가 히말라야를 찾는 이유는 궁금함 때문이었다는 글을 읽었는데 그게 정확한 표현인지 찾고 싶어서였다. 오늘은 마음에 든 문장을 찾아서 연필로 동그라미라도 치고 페이지를 찾게 쉽게 포스트잇도 붙였다


트레킹팀의 일원이 되어 맨 뒤에 따라간다는 마음으로 읽었다. 글과 함께 실린 히말라야의 풍경 사진이 함께 히말라야를 걷는 듯한 느낌을 갖게 했다. 작가는 오랫동안 트레킹을 한 사람답게 민낯을 보여주는데 주저하지 않는 사람으로 보였다. 솔직하고 덤덤하게 자기가 걸으며 보고 느낀 것을 포장하지 않고 썼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껴둔 간식을 포터들에게 나눠줄지 말지를 고민하거나 여행이 끝난 후 팁을 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준다면 얼마를 줘야 할지 고민하는. 그런 장면들이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해 주었다.


작가는 스물한 살에 산악회에 가입하여 전국을 다니며 야영 산행을 즐기다 서른아홉에 17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히말라야를 만났다고 한다. 나에게 직장을 그만두고 싶을 만큼 간절히 하고 싶은 일은 뭘까, 나의 걷기는 나를 어디까지 데려다줄까 생각해 본다.


오래전에 TV에서 히말라야를 걷는 사람들을 보다가 고향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 언제 히말라야 한 번 가야지' 했을 때 그 친구가 '히말라야 좋지, 한 번 가야지'했던 적이 있다. 이전 학교에서 근무할 때도 많은 시간을 함께 걸었던 선생님에게 히말라야에 가보고 싶지 않냐고 이야기 한 기억이 있다. 그 후 나의 나이와 체력이 히말라야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생각에 오랫동안 히말라야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살았다. 그랬던 내가 요즘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히말라야 이야기를 자꾸 꺼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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