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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 Jul 10. 2024

치악산 상원사 일출 산행기

상원골 주차장-상원사 -영원산성 -영원사 -금대분소 주차장


다음에 언제


지난달 25일 치악산을 종주한 다음 날에 '다음에 언제' 상원사 일출을 보러 가자고 b와 약속했었다. 그 '다음에 언제'를 6월29일로 잡았다. 이번 산행은 상원골 주차장에서 상원사로 올라갔다가 영원사로 내려와서 금대분소에서 마치는 코스로 계획했다. 더울까, 비가 올까 걱정은 했지만 더워도 비가 와도 갈 생각이었다.


차 한 대는 영원사 아래 금대분소 주차장에 세워두고 또 한 대는 상원사 아래 상원골 주차장에 세워두고 출발해서 <상원골 주차장-상원사-남대봉-영원산성-영원사-금대분소 주차장 > 코스로 새벽 3시 30분부터 걷기 시작해서 넉넉잡아 오후 1시쯤에 마칠 예정이었다.


일주일 내내 토요일(6월 29일) 날씨가 흐리고 비가 온다고 되어있었다. 금요일에 확인하니 다행히 일출 시간에 있던 구름 그림이 해 그림으로 바뀌어있었다.


치악산 둘레길을 걸을 때부터 다음 날 새벽에 나가야 될 때는 b가 우리 집에 와서 자고 같이 출발했다. 이번에도 우리 집에서 자기로 했다. 밤 9시가 넘자마자 b와 함께 2층으로 올라갔다. 새벽 2시쯤에 일어나려면 9시 취침도 늦었다.



해치지 않아, 가던 길 가렴.


6월 29일. 2시 30분에 맞춰둔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졌다. 2시 19분. 창밖을 보니 하현달이 떠 있었다. 건너편 방에서 b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나보다 늦게 잔 게 분명한데 언제 일어났는지.


2시 36분에 집에서 나왔다. 3시 30분에는 상원골 주차장에 도착할 줄 알았다. 네비로 검색했을 때 집에서 상원골 주차장까지 50분 소요된다고 되어있었는데 밤길이라 시간이 좀 더 걸렸다. 새벽인데다 b는 운전 4개월 차이고 나는 느린 운전자라는 걸 간과했던 것이다.


상원골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자동차 불빛에 놀라서 도망치는 고라니를 세 마리나 만났다. 해치지 않아, 가던 길 가렴.


3시 40분이 넘어서 상원골 주차장에 도착하니 차가 대여섯 대 주차되어 있었다. 벌써 일출 산행을 하러 온 사람들이 올라갔나 보다 생각하니 마음이 급해졌다. 등산화를 신고, 팔토시를 끼고, 무릎 보호대를 차고, 모자를 쓰고, 모자 위에 헤드렌튼을 끼우고, 등산스틱을 펼치고, 간단한 준비운동도 하고, 사진도 찍고 하다 보니 3시 46분에야 출발했다. 3시 30분에 출발해서 1시간 30분 잡고 올라가서 일출을 볼 예정이었는데 출발이 늦었다.



나 기다리지 말고 먼저가


출발이 15분 정도 늦었으니 빨리 걸어야 했다. 랜턴 불빛은 생각보다 멀리 퍼져서 걷는데 지장은 없었으나 온갖 벌레들을 얼굴로 끌어당겼다. 걷다가 랜턴을 끄면 어떨까 갑자기 궁금했다. b를 불러 세웠다. 둘 다 랜턴을 꺼 보았다. 온통 새까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무가 우거져서 달빛조차도 들지 않았다.



계속 그러고 놀 시간이 없었다. 랜턴을 켜고 다시 걸었다. 물소리 새소리가 들려왔다. 앞서가는 b 따라 걸으랴, 계곡 건너편에는 뭐가 있나 쳐다보랴, 넘어지지 않게 바닥 쳐다보랴 사진 찍을 틈도 없었다. 물을 마시기 위해 두 번 정도 멈추고는 또 걸었다. 몸이 데워지기 시작하니 콧물이 나왔다. 멈춰 서서 휴지를 꺼낼 시간이 없었다. 한쪽 콧구멍을 누르고 반대편 콧구멍으로 바람을 불어서 콧물을 빼내는 방식으로 코를 풀었다.


 "취잇~ 취잇~ "


휴지 꺼내다가 일출을 놓칠 순 없었다.


어느새 하늘색이 까만색에서 파란색으로 변하는 게 보였다. 마음이 더 급해졌다. 조금 더 걸어가자 붉은 놀까지 보였다. 이래서는 둘 다 일출을 놓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b에게 말했다.


"나 기다리지 말고 먼저가, 무슨 일 있으면 소리 지를 테니까, 혼자라도 먼저 가서 사진이라도 찍어서 보여줘"


내 입에서 그 말이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b는 순식간에 내 눈 앞에서 사라졌다. 혼자 걸으려니 조금 무서웠다. b를 따라 빨리 가고 싶었지만 무리하다 쓰러지면 안 되지, 일출이 뭐라고, 천천히 가자, 천천히 가자, 스스로를 타이르며 걸었다.


우린 곰이 아니야


걷다 보니 상원사 일주문이 보였다. 4시 45분이었다. 1시간 30분 예상하고 걸었는데 얼마나 빨리 걸었는지 1시간 만에 도착한 것이었다. 은혜 갚은 까치 전설이 있는 종에 도착하니 4시 49분이었다. 노크하듯 손으로 세 번 작게 두드리며 가족들의 안녕을 빌었다.


상원사 아래 텃밭을 지나서 올라가는데 한 보살님이 "아이고 일찍 올라오셨네요"하면서 인사를 했다.  "예, 일출, 보려고요, 헉, 헉" 대답하면서 보니 간이 화장실에 요강을 비우러 가는 듯했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는 전기, 가스, 물, 화장실, 빨래, 생필품 등은 어떻게 해결할까 잠시 생각했다.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1등은 지리산 법계사, 2등은 설악산 봉정암)로 높은 곳에 있는 사찰이라는 상원사,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산신각에 올라가서 일출을 기다렸다. 일출 장면을 놓칠까 봐 쉬지 않고 걸은 덕분에 일출시간까지는 20분 정도 여유가 있었다. 느긋하게 쉬면서 해뜨기 전 풍경을 감상하고 싶었다.


그러나 벌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땀냄새를 맡고 온 것인지 까만 옷을 입어서 곰인 줄 알고 공격하는 것인지 벌들이 유난히 b에게 많이 달라붙었다. 내가 입은 파란 옷도 까만색으로 보이는지 b만큼은 아니지만 내게도 벌들이 웽웽거리며 모여들었다. 벌 피하랴, 사진 찍으랴, 경치 구경하랴. 그러는 사이 해가 떴다. 순식간에 먼 산 위로 작고 빨간 동그라미가 쏘옥 올라왔다.



공양주 보살님

일출 시간이 5시 10분이니까 1시간 30분 소요된다고 하니 주차장에서 늦어도 3시 40분에는 출발하면 되겠다고 생각한 건 오산이었다. 해가 산 뒤에서 떠오르는 시간은 순식간이다. 해가 떠오르기 전에 붉게 물드는 하늘을 보며 일출을 기다리는 시간까지 계산해서 미리 올라와있어야 한다는 걸 몰랐다. 오늘처럼 일출 2, 30분 전에는 도착해야 일출풍경을 제대로 여유 있게 감상할 수 있는 것을 또 하나 배웠다.


스님들도 일어나기 전 시간이라 공양간 보살님밖에 다른 사람은 보지 못했다. 상원사에 일출을 보러 온 사람은 우리 둘 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아 상원골 주차장에 있던 차들은 일출을 보러 온 차가 아니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그 차들 덕분에 빨리 걸어서 일출 풍경을 놓치지 않았으니 상원골 주차장에 차를 댄 누군지 모를 차주분에게 감사.


아침을 먹으려고 공양간 앞으로 가니 전기포트가 없었다. 지난번 치악산 종주 때 밖에 놓인 전기포트와 컵라면 드실 분은 야외 탁자에 가서 드시라는 안내글을 봐서 컵라면을 챙겨 왔던 것이다. 공양간 창문 쪽으로 가서 기웃거려서 아까 인사를 나눴던 보살님과 눈을 맞췄다.


"안녕하세요, 저희가 라면을 먹고 싶어서 그러는데 전기포트 좀 빌릴 수 있을까요?"


"거기에 없어요? 거기 있을 텐데. 아 OO스님이 치우셨나 보네, 제가 끓여서 갖다 드릴게요"


공양주 보살님이었다. 이곳에 온 지 사흘째라고 했다. 자신도 여기까지 올라오는데 너무 힘들었다며 이 시간에 올라오다니 대단하다고 했다. 뜨거우니까 컵라면에 물을 직접 부어주겠다고 하셨다. 물을 끓여서 주신 것만 해도 감사한데 그럴 수는 없었다.


까만 길


등산객을 위해 전기포트를 내놓는 일, 앉아서 풍경을 감상하라고 야외 테이블과 그네를 만들어 놓는 일. 이런 일들이 불경을 스피커로 틀어놓는 것보다 더 사람들의 마음에 가 닿는다는 걸 잘 아는 분들이 상원사에 계신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시주 플라스틱통에 등산객들이 넣어둔 것으로 보이는 간식들이 보였다. 나도 내가 가진 뭐라도 나누고 싶었다. 하필 다른 날보다 간식을 적게 챙겨가서 세척 사과 한 개를 플라스틱 시주통에 넣었다. 갖고 간 사과 두 개 다 넣을 걸, 바나나도 넣을 걸. 내려오면서 후회했다.


해가 뜨는 방향에 놓여있는 야외 테이블에 앉아 라면도 먹고 풍경도 감상하며 한참을 쉬었다. 라면에서 나온 국물은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빈생수병에 담아서 b가 챙겼다.


5시 52분에 상원사에서 영원사로 출발했다.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영원사로 내려오는 동안 등산객을 세명밖에 만나지 못했다. 8시 6분에 영원사 앞에 도착했다. 예상보다 빠른 도착에 당황스러웠으나 안내 지도를 보자마자 바로 이해가 되었다.


원래는 <상원사-남대봉갈림길-남대봉-종주능선전망대-영원산성삼거리-영원산성-영원사>로 갈 계획이었으나 남대봉 갈림길에서 영원사 푯말을 보고 <상원사-남대봉갈림길-영원사> 이렇게 바로 내려온 것이었다.


우리가 내려온 그 구간은 안내 지도에 까맣게 칠해져 있었다. 난이도가 가장 높은 구간이라는 뜻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길인지 풀이 우거진 곳도 많았다. 지난번 치악산 종주할 때 <남대봉-종주능선전망대-영원산성 삼거리>를 걸었으니 아쉬움은 없었다. 다만 다 왔다고 생각했는데 영원산성을 보러 다시 올라가야 한다니 기운이 빠졌다.


영원사, 영원산성 그리고 영원히 잊지 못할 진드기


그렇다고 영원산성을 안 보고 갈 수는 없는 일. 영원산성까지는 600m라고 적혀있었다. 600m쯤이야하고 생각했지만 영원산성을 보러 올라갔다가 영원사로 내려오는데 1시간 이상 걸렸다. 그만큼 가파른 구간이었다. 9시 28분에 영원사에 도착했다. 영원사 마당에 있는 나무 그늘 아래 평상에서 등산화를 벗고 쉬는데 나들이온 아주머니 대여섯 분이 우리 옆에 도시락을 꺼내놓았다. 산에서는 보통 옆에 사람이 있으면 모르는 사람이라도 먹을 것을 권하기도 하는데 그분들은 그러지 않았다. 그런 말을 b에게 했더니 먹고 싶었는데 안 줘서 그런 거냐고 놀렸다.


다시 걷기 시작했다. 더운 날이었는데도 금대분소에 가까워 지자 영원사로 올라가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10시 28분에 금대 분소에 도착했다. b의 차를 타고 내 차가 있는 상원골 주차장으로 다시 가니 11시 12분이었다. 오늘 등산 소요시간은 6시간 42분. 상원사에서 한 시간가량, 영원사에서 10분가량, 그리고 중간중간 간식 먹느라 쉰 시간을 빼면 5시간 30분 정도 걸은 셈이다.


금대리에서 누룽지 백숙을 먹고 헤어지기로 했다. 백숙을 먹기 전에 반 정도의 양을 미리 포장 용기에 덜어놓고 먹었다. 집에 오니 1시쯤이었다. 그제야 늦은 아침을 먹으려던 남편이 벌써 다녀왔냐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포장해 온 백숙을 식탁에 올려줬다. 졸음이 쏟아졌다. 샤워한 후 낮잠을 자려다 다리에 붙어 내 피를 빨고 있는 진드기를 발견했다.



   살인 진드기와 로또  





* 걸은 날 : 2024. 6. 29.(토)

* 걸은 곳 :

   상원골 -상원사-영원사-영원산성-금대분소

* 소요시간 : 6시간 42분(한 시간 이상의 휴식 시간 포함)

* 걸음수 : 21,531보

* 이동거리 : 약 9km

* 기온 : 21~32도


* 주차장 주소

치악산 국립공원 금대 분소 주차장
 - 강원도 원주시 판부면 금대리 1335

상원사 입구 상원골 주차장
- 강원 원주시 신림면 성남리 산170-2



*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사찰 순위

1위 : 지리산 법계사 해발 1,450미터(출처:산청군청 홈페이지)
2위 : 설악산 봉정암 해발 1,244미터(출처:한국관광공사 홈페이지)
3위 : 치악산 상원사 해발 1,100미터(출처:원주시청 홈페이지)




3:46 상원골 주차장에서 출발 / 4:27 앞사람 따라 걷기 바쁘다, 사진찍을 시간도 없다 / 4:27 하늘이 파래진다, 마음이 급해진다



4:45 상원사 일주문에 도착 / 4:45 파란 하늘이 붉게 변하고 있다


4:49 은혜갚은 까치 설화와 종(등산객용 종)/ 4:54 상원사 동종 옆 / 4:54 상원사 동종


4:59 상원사에서 제일 높은 산신각에서 / 5:00 산신각에서 일출을 기다리며


5:05 샤스타데이지를 주인공으로 사진도 찍어보고 / 5:12 달려드는 벌을 주인공으로 사진도 찍어보고


5:15 순식간에 해가 뜬다 / 5:15 b와 나, 네모 안에 들어가 작품이 되었다


5:32 야외탁자에 컵라면을 얹어두고 익기를 기다리며 / 5:42 야외탁자를 두고 그네에 앉아서 라면을 먹는 b


5:52 상원사 떠나기전 공양간 앞, 등산객들이 나누고 간 간식들


6:08 상원사에서 500m 왔다 / 6:34 상원사에서 900m 왔다 / 6:56 대문바위 앞


8:06 영원사 앞 표지판, 우리가 걸어온 길이 까만색이다 / 8:07 600m 올라가야 영원산성이 있단다


8:30 영원산성 가는 길, 가파르다 / 8:47 영원산성, 이렇게 높은 곳에 성을 쌓으려면 그 옛날에 얼마나 힘들었을까


8:52 영원산성, 여기서 U턴하기로 / 9:15 멧돼지가 파놓은 것으로 보이는 구멍, 멧돼지 콧구멍을 닮았다 /  9:28 영원사


9:57 금대분소로 가는 길, 평길이라 걷기 좋다 / 11:12 상원골 주차장에 세워둔 차를 가지러 다시 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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