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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 Nov 20. 2024

김장과 남편

김장하고 119에 실려간 남편 이야기


지난 주말에 올해는 김장을 하지 않겠다고 남편에게 말했다. 김장을 하지 않으려는 이유로 배추 한 포기에 만 원 가까이한다는 지난달 뉴스를 먼저 언급했다. 물론 김장철인 지금은 포기당 3000원대로 내려왔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배춧값뿐만 아니라 바쁘고 시간도 없고 힘들어서 올해는(올해부터 라고 말할 걸 그랬나?)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남편이 웬일인지 올해는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옆에서 지시만 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남편도 효도 대신 가정의 평화를 선택하기로 했는지 혼자라도 하겠다며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아마도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나의 결연한 표정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힘들더라도 같이하자는 말을 참으며 "엄마가 올해도 우리가 김치 해올 거라고 기다리지는 않겠지"라고 남편이 말했다. 그 말이 마음에 걸렸다.


남편은 김장하는 걸 좋아한다. 김장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김장의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다 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남편이 김장을 벌려놓으면 내가 할 일이 더 많다. 남편은 손이 느리고 느긋하고 나는 손이 빠르고 성격이 급한 사람이다. 몇 년 전부터 이제 힘들어서 김장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외출한 사이에 남편이 배추를 사서 절여놓는다거나 자기 혼자 다 할 테니 나더러 옆에서 지시만 하라고 꼬드겨서 내가 넘어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 다닐 때 매년 가을에 어린이집 부모들끼리 아이들이 먹을 김치를 함께 담그는 행사를 했었다. 그때부터 김장을 하고 있다. 김장하는 날이면 아이들도 좋아하고 그때는 나도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땅에 묻으면 더 맛있다는 말을 듣고 김치냉장고가 있는데도 텃밭에 항아리를 묻어서 김치를 보관했던 적도 있다. 아이들이 고등학교 들어가며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부터는 절임배추를 사서 조금씩 하다가 말다가 했다. 큰애가 수능 보던 해(포항에서 지진이 나서 수능이 일주일 연기되었던 해)에는 김장을 해놓고는 김치 냉장고 전원을 켜지 않은걸 한참 지난 후에 알게 되어 김치가 모두 쉬어버려서 먹지도 못하고 아까워서 버리지도 못하고 몇 달을 보관했던 적도 있다.


어느 해에는 김장을 하다가 남편이 무리해서 허리를 삐어 입원했던 적도 있었다. 나는 아이들과 속초에 살고 남편은 원주에 살 때였다. 일요일에 김장을 하고 나는 아이들과 속초로 왔는데 다음 날 아침에 남편이 못 일어나겠다고 전화가 왔다. 이웃에 사는 택시 하는 분께 전화해서 우리 집에 한번 가봐 달라고 부탁했다. 그분 혼자서는 부축해서 일으킬 수 없는 상태라 119에 전화를 했다고 했다. 급하게 하루 연가를 내고 원주로 가서 남편 속옷을 챙겨서 병원에 갔다. 남편은 들것에 누워 마당을 가로질러 구급차로 갈 때 마침 눈이 내리기 시작했는데 그 눈이 얼굴에 떨어질 때 기분이 묘했다고 했다. 그러고도 남편은 해마다 11월만 되면 김장을 하고 싶어 했다.


지난주에 학교에서 급식을 먹다가 우리 학교 김치가 맛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학교에 김치를 납품하는 회사에 주문하면 학교로 김치가 배달될 때 같이 갖다 주기도 한다는 말을 들었다. 영양사님께 전화번호를 받아서 포기김치 10kg을 주문했다. 고성에 있는 김치 공장에서 매주 1회 학교로 김치가 배달되는데 그때 같이 갖다 주겠다고 했다.


오늘 김치를 받았다. 영양사 선생님께서 "이 김치 어제 담근 김치래요"라고 했다. 김치와 함께 받은 거래명세표를 보고 나서 인터넷을 통해 검색해 보고서야 해양심층수로 만든 저염 김치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번 주에 오랜만에 남편이 서울 어머님께 다녀오겠다고 하는데 김치통에 오늘 산 김치를 넣어서 보낼 생각이다. 아들과 며느리의 정성은 들어갔지만 맛이 덜한 김치보다 정성은 없어도 맛이 있는 김치를 드시는 게 어머님도 더 좋을 것이라 믿으며 미안한 마음을 던다. 해양심층수 김치가 어머님 입에 맞으면 좋겠다. "며늘아, 이번에 네가 사서 보낸 김치가 내 입에 맞으니 내년에도 이 김치 보내라" 하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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