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 개의 좌표
-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공간(어디)의 좌표는 가로와 세로의 선을 그어 계산한다. 다만 왜 거기에 있는가는 본인만이 안다. 그렇다면 시간의 좌표는 어떻게 산출하는가? 과거를 가로로 두고 미래를 세로로 두어 교차점을 찾아야 할까. 시간은 풀리지 않는 숙제다. 분명한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혹은 만든 가로와 세로가 직선이지 않다는 사실이다. 휘어진 가로와 꺾인 세로로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한다.
- 거의 매일 카메라로 일상을 기록하다가 흠칫 놀랐다. 절대적으로 세로컷 사진이 많아서다. 며칠 전 함께 취재에 나선 사진작가는 "취향 혹은 선택한 태도"라고 답했다. 잘못된 습관은 아닌 모양이니, 위안이 됐지만 좀 더 탐구할 일이다. 우선 드는 생각은 건강 때문에 자연의 풍광을 담지 못하고 동네 마실이나 다니는 탓에 건물과 가로수가 전부인 도시의 세로 풍경에 익숙해져서인 것 같다.
- 공간과 시간에 가로축과 세로축이 있다면, 음악으로 푸는 정서의 좌표엔 장조와 단조가 있다. 예전에 장조는 '들뜸'을 단조는 '애조'를 생산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어떤 음악 평론을 보니, 장조가 슬픔을 단조가 신남을 표현하는 도구가 된단다. 참 하찮은 지식으로 살았다. 분별하고 단정해 확증하는 행위의 위험성은 너무 높다.
- 20년 전 인터뷰했던 한 증권사의 CEO는 "금융업은 굴뚝 없는 공장"이라며 자신의 성공 철학을 이렇게 설명했다.
"저는 모든 수치를 면밀히 관찰합니다. 그래야만 숫자 이면의 흐름까지 파악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 다음 제가 계산했다는 사실조차 잊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야만 저와 다른 판단을 한 사람의 의견을 존중할 수 있으니까요. 리스크의 우려가 있을 때만 철두철미하게 계산했던 제 생각을 꺼내는 거죠."
어떤 분야든 일가를 이룬 이들의 탁견은 소름 돋는 구석이 있다.
- 오래간만에 필드를 뛰었다. 금천구에 있는 봉제업체들을 취재했는데, 몇 가지 사실에 놀랐다. 우선 2년 전 취재했던 서울 서북권 업체들과는 너무 규모가 달랐다. 금천구 봉제업체들은 직원수나 매출액에서 월등했다. 더 놀라운 것은 이들 업체들의 성공 케이스가 다 달랐다는 점이다.
- 그 가운데 한 업체의 대표는 자신을 무용강사 출신이라고 소개했다. 사연인즉슨 강사를 하면서 무용복 제작을 업체에 의뢰했는데 그만 공장이 부도가 났단다. 엉겁결에 봉제공장의 미싱 기계를 떠안게 된 그는 "어디다 얼마에 팔아야 할지도 모르겠으니 차라리 사용법을 배워 내가 만들자"라고 판단했단다. 이후 그 업체는 무용복 전문 생산 업체로 자리를 잡았다. 장르를 떠나 무용학원이나 입시생, 전공자가 얼마나 될까 싶어 물었더니, "요즘 MZ세대들은 취미로 배우는 발레지만 자신의 만족을 위해 외국으로 레슨을 받으러 다니는 클래스를 보인다"라며 "그러니 무용복도 컬러별로 트렌드에 따라 자주 구매하는 소비행태를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 작품과 작가를 동일시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출중한 역량이 인간적 성숙과 비례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외 없는 법칙이 없듯 자신의 작품보다 정직하고 순수했던 이도 있다.
- 1975년 '창비(창작과 비평사)시선' 1번을 단 <농무(農舞)>의 시인 신경림 선생이 고인이 되셨다. 개인적 인연을 쌓은 적은 없지만 먼발치서 늘 존경의 마음을 접지 않았다. 편갈라 문단 정치질이나 일삼고 연단이나 욕심내던 인사들과 달리 선생은 시처럼 순박하고 정결했음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분의 시 한 편을 읽는 것으로 문상을 대신한다.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되어서. (‘낙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