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두에게
- 유년기부터 기억을 공유하는 한 살 터울의 이종 사촌 동생 녀석. 내성적이고 유난히 순해 터져서 걱정스러운 구석은 있었지만 밝은 아내를 만나 아들 하나 두고 잘 살았다. 그 녀석이 햇빛 쨍한 5월 어느 날 중환자실에 누워 나를 올려다봤다.
- 녀석의 거구는 뇌출혈과 뇌경색에 발목이 걸려 고목처럼 넘어져 있었다. 고비는 넘겼고 재활에 따라 후유증의 정도가 달렸단다. 그와 가족의 삶의 질은 급격하게 낮아질 것이다. 오열하는 녀석의 누이를 붙들고 재활치료 단계에서 정신과 치료도 병행하라고 일러두었다. 사지가 마음먹은 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 심리적으로 크게 무너진다는 걸 겪어봐서 알기 때문이다. 눈앞이 자꾸 흐려지는 밤이다.
- 제주 한달살이를 떠난 동네 친구를 만나러 간 길에 미술관 몇 곳을 훑었다. 조촐한 기당미술관에서 마주한 화가 변시지의 작품들은 한결같이 직시(直視)를 불가능하게 했다. 그림이 발산하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고통 앞에서 시선은 자꾸 길을 잃었다. 일본 화단에서 먼저 인정한 그의 천재성은 이방인의 벽을 넘지 못했고 긴 세월 가족과 떨어져 제주에서 보낸 그의 삶은 저리 아팠던 모양이다.
- 변시지의 고독이 직시할 수 없게 만드는 적나라함이라면 동화 같은 이중섭의 그림은 오래 응시해야 드러나는 아픔이다. 절박한 가난과 병마를 안고 은박지를 벗겨낸 담뱃갑만 한 방에서 신음했던 그가 어떻게 저런 선(線)을 그릴 수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굶주림과 고독 따위는 그의 안중에 없었나 보다. 그러니 저리 빗겨 나 있는 것이 아닐까. 이중섭미술관을 들른 날, 하필이면 비가 내렸다.
- 젊어서는 사람 곁에 붙어 있지 않으면 불안했다. 혼자서는 밥도 술도 먹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동석이 불편하다. 혼자여야 좋은 게 아니라 그 시간을 견딤이 아니라 익숙함으로 받아들이고 있나 보다. 습관이 남아 있어 사람 냄새가 나는 길거리를 걸으면 사진을 찍는다.
- 가장 주목할 길거리 사진가 중 한 명인 비비안 마이어(Vivian Maier)는 기이한 인물이다. 사진을 전공한 적도 없고, 1950~1970년대 뉴욕의 모습을 담은 15만 장의 사진을 찍었으나 자신의 사진을 거의 현상조차 하지 않았다고. 평생 여러 집에서 보모로 지내 생전에 사진가로 불릴 기회조차 없었던 그녀였지만 항상 목에 카메라를 걸고 다녔다고 한다.
- 생계나 명성과 무관했던 그녀의 사진 찍기는 어떤 의미의 행위였을까. 쇼윈도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찍고 있는 그녀에게 묻고 싶다. 그 순간마다 전율했느냐고.
* 이 기이한 인물과 그의 사진이 궁금하다면 다큐멘터리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2015)>를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