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아비가 03화

‘종이’와 ‘모니터’

by 스침


존경할 사람은 없지만 존중받지 못할 대상은 없다고 생각해. 살면서 딱히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다고 여겼는데, 친구가 “지금까지 일할 기회를 얻었다면, 누군가는 그로 인해 좌절했을 테고 그것도 일종의 가해 아니었을까?”라고 묻더군. 실존 자체로도 가해자가 된다니, “제가 알지 못하는 잘못까지도 회개하나이다”라고 기도할 수밖에.

요즘 문득, 20세기에 교육받은 세대가 21세기에 태어난 청년들을 가르치는 것이 합리적인가를 고민하게 돼. 단적으로 ‘종이'와 '모니터'로 상징되는 두 세대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세계를 인식하잖아. 앞으로는 그런 고전적 방식으로 구동되지 않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싶어. 세대 간의 연결성 대신, 계속 새로운 특성을 가진 세대의 등장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더불어 든 생각이 있어. 구체적으로 간파할 능력은 없지만 다종한 뉴스를 보면서 ‘패러다임’의 변화가 감지되거든.


다양한 집단과 개인을 가리지 않고 욕망은 더 노골적으로 작동하지만 큰 틀에서의 구조적 변화가 느껴져. 그게 바람직한 방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바쁘게 살더라도 세상 돌아가는 흐름을 놓치지 않고 살았으면 해.

좋든 싫든 20세기와의 자연스러운 작별은 기정사실이고, 조만간 당신도 기성세대가 되겠지. 겪어보니, 청년기는 느닷없이 닥치지만 중년과 노년은 준비가 가능한 시기라고 생각해. 나도 마음은 다부지게 품은 넓게 가지려고 노력 중이야. 어떤 권력도 사회적 영향력도 없는 필부인 나의 처신이 대수로울 건 없으나 늘 마음과 몸가짐을 조심하고 있어. 그것만으로도 가치 있다고 믿어서야.

필부의 반대말이 엘리트라고 한다면 우리는 소수의 엘리트 양성이 지상 과제고 그들이 부국을 견인한다는 사회적 신념을 갖고 살았어. 권력과 부가 상속되는 자본가 계급이 아닌 전문가 그룹일수록 특정 학교, 자격증에 집착하면서 엘리트를 자임해 왔지. 과연 그들은 우리의 현재에 어떤 역할을 했을까? 순기능이 왜 없었겠어. 탁월한 정치인은 국가를 경영하고 훌륭한 의사는 생명을 살리고, 공명정대한 법률가는 억울한 이들을 구했겠지.


당신도 알고 있겠지만 난국을 겪고 보니, 이른바 엘리트의 민낯이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나더라고. 특정 대학과 군 교육기관 출신들은 자신들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국가와 국민을 헌신짝 버리듯 배반했어. 우리 공동체의 주축이란 자들의 그런 광란을 막아선 건 허울 좋은 엘리트가 아닌 무명의 필부들이었어. 상식에 준하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을 거야. 자신의 욕망과 이익을 위해 공동체의 안위와 질서를 무시하는 집단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집단지성이 필요한 이유겠지.

지금처럼 과학이 발전하지 않은 시대의 고지도들을 보면서 “저 정도면 꽤나 유사한데”란 생각을 했었어. 알고 보니, 지도 제작자들이 수많은 상인과 선교사, 탐험가들의 다양한 경험을 듣고 반영한 결과더라. 집단지성의 힘은 그렇게 발휘되는 거더군. 부디 ‘나머지’에 대한 존중의 태도가 결여된 소수에 대항하는 집단의 슬기로움이 새로운 패러다임의 근거가 되었으면 싶은 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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