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아비가 04화

원시적 디지털 시대

by 스침

여전히 극복할 차별의 벽이 높지만 우리는 역사상 가장 평등한 시대를 살고 있어. 더디지만 우상향 하던 평등지수가 하락할 것 같아서 걱정이야. 그 근거가 눈부신 과학기술의 진보 속에서 발견된다는 게 아이러니지.

휴대전화를 바꾼 지가 오래되었어. 단순 기능 사용자이기도 하지만 구매욕이 자극되지 않아서야. 한동안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등장 같은 획기적 사건이 일어나지 않더니, 최근 AI와 휴머노이드, 완전자율주행이 우리 일상으로 스며듦을 실감하고 있어. 만화와 SF소설에서 보던 가상의 미래가 구현되고 있다니. 얼마 전 챗GPT로 러프한 기획안 하나를 만들어 봤어. 최소 1주일은 검색엔진을 돌려서 만들 수 있는 수준의 문서가 즉석에서 완성되더라. 앞으로도 유용하게 활용하겠냐고? 글쎄, 판단이 서질 않아. 나의 질문이 고유한지도 모르겠고, 그 결과값이 나의 성과인지에 대한 의문도 들어서야.


사실 나는 기술 진화를 따라가기엔 너무 늦은 세대가 되었어. 나는 AI를 똑똑한 참모나 비서쯤으로 여기는 소비자 수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 AI를 탑재한 휴머노이드가 물리법칙이 적용된 가상공간에서 무한대의 학습을 하는 놀라운 시간이 닥친 현실을 수용하기 어려워. 뉴스에선 가자지구와 우크라이나의 전쟁만 보도하지만 보도되지 않는 또 다른 전쟁터는 기술기업 경쟁 세계가 아닐까?

안타까운 것은 천문학적 자금력을 가진 초거대 기업들이 사활을 걸고 싸우고 있는 시점에서 한국은 ‘이데올로기의 사슬’에 손발이 묶여 있다는 사실이야.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혁명기에 우리는 소규모의 자본시장에서도 뛰어난 역량을 보였고, 나름의 성과를 거뒀어.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의 IT생태계는 우선 활력이 없고, 독보적 기술 레시피도 없어 보여 안타까워.


이 대목에서 드는 두 가지 생각이 있어. 첫째는 디지털의 역사를 따로 기록한다면 100년 뒤쯤 오늘은 원시시대로 분류되지 않을까 하는 거지. 공개되지 않아 예측조차 불가능한 영역에서 어떤 실험과 개발이 이뤄지는지 도무지 알 수 없잖아? 깃발을 들지 않고 다가오는 ‘혁명’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

산업혁명은 인류에게 엄청난 생산성을 선물했지만 노동착취와 공해라는 과제를 남겼고, 현재까지도 해답을 찾느라 고심하고 있어. 그렇다면 막대한 자본을 앞세운 초거대기업들이 법과 제도까지 바꿔가며 주도하는 현재의 기술혁명은 우리에게 어떤 숙제를 남기게 될까를 고심하게 돼. 과도하게 기술에 의존하는 사회시스템 속에서 우리는 대체 어떤 삶을 살게 될까?

두 번째로 고민스러운 지점은 양극화의 가속화, 고착화로 인한 계급구조가 평등지수의 하락세로 이어질 것이란 두려움에 있어. 부와 계급은 세습되고, 인생역전 같은 드라마는 절대 쓸 수 없는 디스토피아가 되면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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