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아비가 06화

다음은 ‘인력’일까?

by 스침


말(馬)은 신분의 징표였어. 지배계급은 말을 타거나 마차를 탄 채로 피지배계급을 내려다보며 자신들의 권력을 과시했지. 말은 인간에게 높이를 통한 권위를 선사함과 동시에 많은 역할을 했어. 전시에 말을 탄 자는 기동력 측면에서 압도적 우위를 가졌지. 유럽을 공포에 몰아넣은 말 탄 몽골리언은 상징적 사례겠지. 평시에도 말은 노동력으로 인류에 기여했어. 말 말고는 너른 밭을 갈고 무거운 짐을 대신 나를 마땅한 대체재가 오랫동안 없었으니까. 산업혁명 이전까지는 말이야.

그랬던 말이 논밭과 거리에서 사라진 건 인류가 휴식을 주고 여물을 챙길 필요 없는 쇠로 만든 말(기계)을 발명했기 때문이지. 이 사건으로 인류는 이제껏 이룬 적 없는 높은 생산성을 확보할 수 있었어. 어떤 정치적, 사상적 혁명도 이보다 더 인류의 삶을 혁신시킨 적은 없을 거야. 물론 그렇다고 굶주림과 불편에 시달리는 사람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스코틀랜드의 발명가 제임스 와트는 증기기관의 개량과 보급에 기여했고, 산업혁명의 주역이었던 그는 노동력과 동력원이었던 말의 기준으로 ‘마력’이란 개념까지 창안했어. 75kg의 물체를 1초에 1미터 수직으로 들어 올리는 일률 된 힘이 1마력인 거잖아?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그런 고리타분한 18세기말의 과학사가 아니야.

내 관심은 앞으로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인가이지. 전문적 지식은 없지만 4차 산업혁명 이후, 마치 마력이란 개념이 생긴 것처럼 ‘인력’이란 개념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예컨대 “IQ 130인 사람이 1시간 동안 올릴 수 있는 생산성을 1인력이라 한다”와 같은 정의가 생기지 않을까? 너무 허무맹랑한 얘기처럼 들리나?

사람에게 있어 도구였던 말이 기계로 대체되는 과정과 달리 주체였던 인간이 노동력을 잃게 되는 일은 충격파가 클 것 같아. 노동자의 지위(?)를 다종의 기계에게 넘긴 인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일손을 놓은 인류는 생명체로서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지? 노동력을 기계에게 넘긴 말이 경마장, 승마장, 유원지에서만 목격되는 것처럼 노동의 공간을 떠난 인류는 어떤 공간에 머무르게 될까? 온통 질문만 하게 되네.


워커홀릭인 사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은 ‘일’과 ‘놀이’ 가운데 놀이를 택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해. 그 옛날, 극심한 노동에 시달리던 시절에도 인간은 소박한 놀이를 결코 포기하지 않았고, 우리는 아직도 그 놀이의 확장 영역에서 휴식을 취하잖아. 일과 놀이라는 이 오랜 밸런스가 무너져서 일 없이 오로지 휴식만 하게 된다면 어떤 광경이 펼쳐질까?

요한 하위징아는 인간의 본질을 유희적 인간, 놀이하는 존재로 정의하며 ‘호모 루덴스’란 용어를 만들었지. 책을 뒤져 보니, 사람들은 재미를 느끼면 어떤 일도 하게 된다는 ‘게임화 이론’, 경제학에서는 ‘넛지효과’ 등등의 다양하고 복잡한 이론들이 있더군. 그런데 그런 이론들은 놀이의 반대편에 노동이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잖아? 만약 노동이 사라진 시대라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지 않을까?

잘 모르는, 내가 겪지 않게 될 미래에 대한 얘기를 하자니 그저 물음표만 붙인 편지가 되고 말았네. 나보다 훨씬 오랜 기간 살아남아서 가늠되지 않는 인류의 선택을 지켜보게 될, 또 선택의 당사자가 될 당신도 유사한 질문을 하면서 일상을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야. 폭우가 몇 날을 할퀴더니 태양이 작렬하네. 극단적인 자연 앞에서 무력해진 하루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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