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에 한 번 회사에 오는 대표가 주는 스트레스만 아니면 지낼만합니다." 환갑이 다 된 후배의 볼멘소리에 마땅한 위로를 건네지 못하고 "견뎌야지 뭐, 어쩌겠누"라고 했어. 노동자는 아무리 직급이 올라도 상급자의 히스테리를 받아내는 감정노동에서 벗어날 수 없나 봐. 피해자의 처지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은 딱히 없어. 감수하거나 관계를 끊어 내 거 나지.
돌아보면, 감정 통제에 능하지 못했던 나는 늘 절연을 택한 거 같아. 인간관계나 경제적 측면에서 늘 손해를 봤어. 결정적 순간에 보다 현명하게 대처했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나은 결과를 얻었으려나? 후회는 부질없고 나는 왜 그랬을까를 따져 보면, ‘자존감‘이 낮아서란 결론을 얻게 돼. 여러 이유로 낮아진 자존감을 가진 자는 분노조절에 장애를 갖지. 내가 그랬어. 큰 어젠다에는 분노하지 못하면서 사소한 일에 짜증 내고 '버럭'을 일삼았지. 낯이 뜨거워지는 한심한 노릇이야. 나의 낮은 자존감에는 가족사와 더불어 이상과 현실의 괴리 등등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결코 핑계일 수는 없어.
요즘 나는 내가 유일한 존재이고,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있음을 자각하는 방식으로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애쓰고 있어. 자존감이 낮은 자들의 공통점 중에 ‘버럭‘이 있다고 하더라. 부끄럽게도 정확히 내가 그랬어. 우리는 피해자임과 동시에 가해자일 때도 있어. 요즘, 예전 같았으면 독한 말을 쏟아냈을 순간, 조심하는 나를 봤어. 천성이 어디 가지는 않아. 다만 참아내면서 버럭의 횟수를 줄이는 거지. 최근, 자존감과 관련해 중요한 뉴스를 봤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유명한 유홍준 작가가 국립중앙박물관장에 임명됐다는 소식이었어. 이 정부 들어 중용될 걸 예상했던 인사였어. 눈길을 끈 건 그의 직책이 문화체육부 장관이 아니라 국중박 관장이란 거였어.
기사를 읽으며, 장관직을 제의받았던 그가 자신의 전문성을 내세워 국중박 관장을 선택한 게 아닐까, 소설을 써 봤어. 나의 상상력이 팩트라면, 유 작가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결정을 한 거야. 기왕이면 더 높은 직책을, 더 많은 권한을 원하는 건 인지상정이잖아. 만약 그가 관직의 고하를 떠나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을 택했다면, 그는 명성보다 더 큰 자존감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 싶어. 학식에 인품까지 겸했다니, 반할 노릇이고 인간적으로 부럽기만 하네. 반대로 요즘 정치면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보면, 하나 같이 자존감이 제로에 수렴하는 사람들 같아. 감당하지도 못할 감투를 쓰고, 위임받은 한시적 권한을 불변의 권력으로 오인하고 칼춤을 추는 모습들이 기괴하기만 해. 대체 이런 소란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일상의 평온을 누릴 수 있을지 모르겠어. 무더위에 건강 조심하시게. 아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