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아비가 07화

어쩔 수 없었음을

by 스침

정설인지는 모르겠으나, 뱀이 진화해 새가 되었고 닭은 새에서 퇴화했다고 하더라. 그럼 치킨이 되느라 천수를 못 누리는 닭의 조상이 뱀이란 건가? 그런 얘기를 들으면, 나는 내가 새에서 퇴화한 닭과 새가 되지 못한 뱀 중에 어느 쪽인지 생각하게 돼. 둘 다 아니면, 일생을 통해 진화와 퇴화의 과정을 두루 겪는 걸까? 말머리가 뜬금없는 걸 보니, 오늘 얘기는 중구난방일 모양이네.


당신이 금연하기 전, 군대에서 뒤늦게 흡연자가 된 당신과 술 한 잔 하다가 같이 담배를 피우던 시간이 참 좋았어. 뭐랄까, 부자지간이 아니라 동등한 인격체로서 마주하는 느낌이 들어서였나 봐. 결혼 후 성공한 금연이 당신의 의지였다면 타고난 체질 때문에 금주를 할 이유는 없었지? 정말 다행이야. 그 두 가지만 멀리해도 큰 탈은 없을 테니까.

나도 차수를 변경해 가며 밤을 새우던 질펀한 술자리를 하지 않은지 오래됐어. 과한 취기를 견딜 예전 체력도 아니고, 밑천이 드러나기 시작한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지. 대신 조촐한 술상에 자작하던 소박한 즐거움이 있었는데, 요즘엔 그마저도. 술에 취약한 당신의 체질은 크나큰 축복이라고 생각해. 내가 술병 대신 더 많은 책을 말아 쥐고 살았다면, 지금보다는 좀 더 일찍 성숙해졌을 거라 생각하니까. 당신에게 권했던 영화 <퍼펙트데이즈>에 이런 대사가 나와.

"아직 모르는 게 많은데, 결국 아무것도 모르는 채 끝나나 봅니다."

요즘의 내 심정을 가장 잘 대변하는 하나의 문장을 손꼽으라면 이게 아닐까 싶어. 너무 뭘 모르고 살았고, 끝내 모르는 채 떠날 게 분명하니까 자꾸 조바심만 커져. 부디 당신은 술과 담배로 허비하지 않은 시간에 하나라도 더 깨닫기를 바라.


연일 폭염이네. 마음 놓고 에너지를 소비할 수 없는 이들에게 앞으로의 여름은 더욱 혹독할 거야. AI와 전기자동차에 펄펄 끓는 지구를 생각하다가 향후 에너지 이슈가 더 커질 거란 예상을 했어. 투자가인 친구에게 안주 삼아 그런 얘기를 했더니, 자신은 이미 미국 에너지 관련주에 투자를 하고 있다더군. 그 자리에서 나는 내가 부자가 아닌 까닭을 새삼 알게 됐어.

내가 지금의 당신보다 어렸을 때, 신문에선 에너지 고갈을 우려하는 기사가 일정한 텀을 두고 기획기사로 나오곤 했어. 그런 기사엔 접미사처럼 30년 후엔 석유가 고갈될 거란 불안한 전망이 덧붙었지. 이후 석유 매장량이 더 늘어난 건지, 아직 시추할 석유가 남아 있으니 다행인 건가. 아무튼 이런 식으로 점점 여름이 난폭해진다면, 에너지 취약층에 더 많은 세금을 투입해야지 싶어.


낮에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꼬마의 정수리에서 햇볕 냄새가 잔뜩 풍기더라. 저녁엔 그림엽서 같은 노을도 보았지. 하지만 황홀한 노을도 대지에 눌어붙지 못하고 이내 사라지더군. 또 하루가 저물었어. 어둠이 깊어 사물을 분간할 수 없게 되면 다독이지 못한 사람들을 떠올리게 돼. 나도 모르게 퉁명스러운 어투로, 곱지 않은 눈빛으로 상처를 주었을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도 커지지.

계량되지 않는 고독의 문지방을 넘지 못하고 술잔을 기울일까 하다가 17%의 설탕이 든 식빵 한 조각으로 허기를 달랬어. 빵을 씹으며 난 오늘, 17%라도 누군가에게 달콤했을까를 생각했지. 타자를 이해하기 위한 전제가 하나 있다고 생각해. “그도 어쩔 수 없었겠지”라고 생각하는 거지. 이런저런 잡념이 많은 밤이야. 사랑이 미수에 그친 밤이 깊어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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