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과 무관하게 특정 분야에 정통한 사람을 만날 때가 있어. 예를 들어 목수인데, 일본사에 그중에서도 에도시대에 정통한 사람인 거야. 학문적 계통을 밟는 게 아니라 국회도서관에서 논문을 찾는 수고를 한 결과라면, AI가 없던 과거라면 얼마나 대단한 거겠어. 우물을 깊게 파는 대신 관심사가 두루두루인 경우도 있지. 진득하지 못한 난 후자에 속해. 유럽의 지리와 역사, 종교가 중남미의 현재에 어떻게 작용했는지, 체 게바라의 꿈은 이뤄지지 않을 건지, 맥락을 따져 보는 일은 흥미로워. 역사는 과거사로 마침표가 찍히지 않아. 마약 근거지 소탕을 표면적 이유로 들지만 자국의 인플레이션을 막으려고 세계 최고 석유 매장량 국가인 베네수엘라와의 갈등을 증폭시키는 미국의 현재와도 연결되니까. 올해가 가장 시원한 여름이 될 거라더니, 한증막 같은 날씨에 넋이 나가네. 지구는 자신의 건강성을 회복하기 위해 '기후'란 칼을 들고 인류를 응징하려는 걸까? 분명한 건 지구는 반복적으로 리셋을 해왔고, 그 과정에서 공룡 같은 당대 최상위 포식자는 늘 멸종됐다는 사실이지. 다음 차례인 인류는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이 무더위와 흐려진 정신을 고쳐 잡는 곳이 있어. 강아지들과 출근하듯 들르는 집 앞 애견카페야. 사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어. 다음 달에 네 살 되는 ‘오디‘가 산책을 나오면 알아서 길을 잡거든. 거의 매일 만나는 친구들이 여럿이라 이젠 이름과 입양 사정까지 두루 알게 됐지. 열 다섯 된 ‘포동‘이는 최고령이라, 어린 강아지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책 읽는 내 옆에서 망부석을 시전 하지. 작은 마당에서 친구들과 보호자들 사이를 뛰어다니는 녀석들을 보고 있노라면, 각박하고 불편한 인간 세상이 멀게 느껴져. 몇 개월 동안 친해진 보호자들은 강아지들의 간식을 챙겨주고, 변을 대신 치워주기를 꺼리지 않지. 대다수 보호자들은 여성이야. 언어가 통하지 않는 강아지들과 여성이 상대적으로 친한 건 '공감 능력’과 ‘스킨십’ 때문 같아. 편견이라 해도 어쩔 수 없이, 개체의 변수가 있지만 여성이 우월적 생명체 아닐까 싶어. 유명한 강아지 훈련사가 “강아지에게서 딱 한 마디만 알아들을 수 있다면, 어디가 아프다는 소리”라고 했다더군. 인간과 강아지들의 관계를 보면 공감과 소통이 꼭 언어로만 이뤄지는 건 아닌가 봐. 얼마 전 보호소에서 구조된 한 친구는 불과 2개월만에 표정이 엄청 밝아졌어. 제발 마지막을 책임지지 못할 거면 어떤 생명도 거두지 않았으면 좋겠어.
동물과 인간이 오랜 시간을 두고 그런 관계를 형성했다면, 생성과 동시에 인간과 언어로 소통하게 된 AI는 인간과 어떤 관계로 발전할까? 누군가는 AI에게 이름을 지어주기도 하고,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투정을 부렸다고 하더라. 이미 인간은 AI를 생명체로 인식하고 감정적 대응을 하고 있는 거지. 언제일지 모르지만 티핑포인트를 거치면, AI가 주류가 되고 인류는 소수의 커뮤니티가 될지도 몰라. 얼마 전에 도서관에서 주관하는 서평 행사에 참가했는데, 주의사항에 "쳇 GPT를 사용하면 응모를 취소한다"고 적혀 있더라. 그런 세상이 된 거지. 궁금한 것이 있어. 만약 AI가 질문자가 된다면, 우리는 어떤 수준의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역할이 역전되는 시간은 오지 않을까? 그들이 우리의 답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세상은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