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배배 꼬이고, 귀는 닫히고 말수가 적어지는 자리가 있어. 대화 상대가 비상식적 주장을 두서없이 할 때야. 무리한 주장이야 서로의 생각이 다름을 인정하면 그나마 견딜 만 한데, 논리 전개가 매끄럽지 않으면 최악이지. 소수이긴 하지만 어떤 사람의 말은 녹취로 풀면 그대로 온전한 문장이 되기도 하지. 그런 사람과의 만남은 헤어짐이 아쉽지. 유무식의 문제는 아냐. 축적된 앎은 느껴지는데 말의 흐름이 거친 사람도 있거든. 화술도 아닌 것이, 단호하지도 않고 어눌한데 경청하게 되는 사람도 있으니까. 말이 문장이 되는 사람까지는 아니어도 상대를 설득하고 동의를 구할 정도가 되려면, 정돈이 돼야 해. 수로로 물이 흐르듯 생각을 말에 얹어 잘 흘릴 수 있어야 하지. 어떻게? 단언컨대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해. 가령, 인권이란 이슈의 최근 담론이 무엇이고 나는 A란 견해에 동의한다는 글을 써 보지 않으면, 자신의 주장을 말로 조리 있게 펴지 못해.
직업이 아닌 이상 글쓰기는 진입장벽이 높긴 해. 그렇다고 포비아에 빠질 일은 아냐. 누구나 아는 아주 간단한 원칙, 서본결론을 단 석 줄만으로도 완성할 수 있어. 길게 쓰기(말하기)는 훈련을 거쳐 늘이면 되는 거고. 지난 주말, 도서관 주관 ‘서평배틀‘에 참가했는데, 그때 텍스트도 글쓰기책이었어. 11년 전 출판된 <고종석의 문장>이란 책인데, 글을 쓰려는 인간의 욕망을 쉽게 해석하고, 글쓰기 요령을 실례 중심으로 잘 구성했으니, 읽어 보시게. 나도 자꾸 생기는 나쁜 버릇을 고치려고 주기적으로 보는 책이야. 내 경우, 문장 사이의 탄성을 높이기 위해 접속부사를 최대한 줄이고, 치장을 위한 형용사를 줄이는 효과를 보곤 해. 산문보다 시를 즐겼던 내 글쓰기의 단점은 치장이 과한 거거든. 글쓰기는 ‘허세‘에서 시작하지만 '담백'해야 한다는 이중성을 갖고 있어. 7년 만에 휴대전화를 바꾸고 ‘클로바 노트‘란 어플을 깔았어. 음성녹음의 텍스트 변환이 정교하더라. 말하는 연습과 글쓰기에 큰 도움이 되더군. 일기장처럼 활용할 수도 있고 말이지.
글쓰기도 분명한 목적이 없으면 실천하기 어렵더라. 이 글도 ‘아들에게 말 걸기’를 결심하고 시작했잖니. 당신은 10년 뒤 아내가 읽게 될 편지를 써보면 어떨까? 너무 부담스러운 제안인가? 아이디어 차원에서 한 말이야. 사진 앨범과 함께 휴대전화에 글로 쓴 앨범 하나를 추가하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앞에 얘기한 책에 이런 구절이 나와. “첫 시집이 대표작인 시인은 많아도 산문가는 만년에 좋은 글을 남기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이야. 시인은 타고나지만 산문은 누구나 쓸 수 있다고 생각해. 이름을 내놓고 글을 쓰지 않더라도, 당신이 필자이자 유일한 독자가 되더라도, 꼭 글을 쓰기 바라. 안 쓴 날보다 쓴 날이 더 많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