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김치찌개
출장에서 돌아오느라 정신없이 시작된 추석 연휴.
그저께는 회사생활의 정신적 지주(어느덧 사생활까지) 두 명과 함께 점심과 저녁 모두 양식을 먹게 된 날이었다. 저녁 식사였던 화덕피자와 파스타는 7시간 정도의 기나긴 웨이팅에도 감동적인 맛을 선사했지만 나는 밥이 먹고 싶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두 번째 피자 조각을 향한 나의 손동작이 현저히 느려진 것이다. 역시나 두 끼 연속 양식은 다소 버거운 어쩔 수 없는 한국인. 생경하지 않은 이 느낌은 나를 파리의 한 기억으로 데려가기에 충분했다.
그토록 꿈꿔왔던 파리에서 한국이 그리워진 까닭은 다름 아닌 ‘음식‘ 때문이었다. 여행을 자주 다니는 편이 아니라 여행지에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로컬 푸드를 먹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던 나는 일주일 만에 한식당을 찾고 말았다. 한국에서도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는 한식을 선호하는 내가 일주일이면 꽤 선방이지 않은가. 이곳에 온 이후로 내내 햄버거나 스테이크와 같은 기름진 음식을 먹다 보니 우리는 얼큰한 김치찌개 생각이 간절해졌다.
그렇게 오늘의 점심 식사는 한식으로 결정이 났다. 단, 반드시 매콤하고 얼큰할 것. 문득 가족들과 중국 장가계로 떠나기 전날의 광경이 나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떠올랐다. 튜브로 된 작은 고추장을 챙기던 엄마를 나무랐던 어렴풋한 장면이다. '그때는 어렸으니까.' 나름의 합리화와 함께 오르세 미술관에서 센강 너머 1km 정도 떨어진 한식당 '이랑'에 가기로 한다. 한식을 먹을 생각에 들뜬 마음은 미술관의 아름다움에 휘감겨 증폭되었다.
커다란 시계와 둥근 천장이 매력적인 오르세 미술관의 전신은 바로, 기차역이다. 고흐의 <자화상>과 <별이 빛나는 밤>, 밀레의 <만종>과 <이삭 줍는 사람들> 같은 익숙한 그림들과 더불어 플랫폼을 연상시키는 미술관 내부는 인상적인 볼거리였다. 특히 5층에 있는 시계 앞은 지나칠 수 없는 포토 스팟이라 사람들 틈에 한참을 서있다 사진을 남겨주었다. 미술관 안에서 무려 3시간 정도의 탐험을 마친 후에야 우리는 식당에 입성할 수 있었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식당 안은 상상했던 것보다 사람들로 가득했다. 한식을 앞에 두고 식사하는 외국인들의 모습이 묘하게 낯설었지만 이내 그 마음은 휘발되어 사라졌다. 우리의 곁눈에 포착된 옆 테이블의 젊은 커플이 떡볶이를 너무나도 맛있게(매워하는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새빨간 국물까지 숟가락으로 남김없이 전부. 덕분인지 몰라도 우리는 김치찌개와 제육볶음에 떡볶이까지 주문했고, 음식들은 금세 자취를 감추었다.
한국에서는 3만 원 정도면 거뜬할 식사에 10만 원을 내며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랑 가까이에는 다음 행선지, 몽마르트르 언덕이 있으니까. 동선마저 이렇게나 완벽할 일인가. 요 며칠과는 확연히 다른 배부른 느낌이 좋았는지 나는 조금 신이 났다. 기분 좋은 태양 아래 각자 달큰한 젤라토 한 컵씩을 들고 몽마르트르 언덕을 오른다. 언덕 꼭대기에 자리하고 있는 샤크레쾨르 성당 앞 계단에 자리를 잡고는 사람들 틈에 섞여 한참을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 구경이 제일 재미있다.
술을 알지도 즐기지도 못하는 타고난 술알못 둘.(한잔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진다.) 여행 분위기 한번 내보겠다고 숙소 근처 식당에서 맥주를 마셔보기로 한다. 그것도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맥주에 간단한 안주를 주문하는 우리의 영어가 꽤나 어설펐는지 친절한(?) 종업원은 영어 문장까지 고쳐주었다. 취기 때문인지 민망함 때문인지 알 수 없는 벌게진 얼굴을 가리기엔 바깥은 눈치 없이 밝기만 했다.
괜찮다. 우리는 당당한 한국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