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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연 May 28. 2024

여름 지나 가을

등산 일기 4

등산에 제철이 있다면 단연 가을이라 말할 수 있겠다. 계절산행 중 내가 꼽는 으뜸은 봄도 겨울도 아닌 억새가 일렁이는 바로, 가을산행이다. 청명한 하늘 아래 산산한 바람이 부는 이 계절만큼 등산객들의 오감을 자극하는 때는 없지 않을까. 가을은 참으로 무엇이든 하기 좋은 시기, 유난히도 등산의 계절이다.



가을은 체감상 2개월 남짓한 계절임에도 불구하고 무더운 날씨와 살을 에는 추위 사이에서 존재감을 확실히 보여준다. 가을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금세 사그라들고 마는 단풍잎처럼 우리에게 찰나같이 찾아들기 때문이다. 이토록 짧은 시간을 충만히 만끽하려면 산을 찾는 수밖에 없다. 단풍은 높은 곳에서 먼저 물드는 법이니까.



타오르는 단풍만큼이나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억새다. 우리나라 5대 억새군락지 중 하나인 포천의 명성산은 울산 신불산, 정선 민둥산 등과 함께 억새 명소로 알려져 있다. 억새는 보통 10월 중순부터 말까지 절정에 이르지만, 10월 초의 명성산은 이미 충분히 아름다웠다. 나는 무리지은 억새가 바람에 몸을 맡긴 채 바스락 소리를 내며 흩날리는 가운데 있었던 것이다.



명성산 정상까지 가는 대신 억새바람길에서 걸음을 돌렸지만 결코 아쉽지 않았다. 가을산행이 여행과 같다면 여름의 산은 부지런함을 요구한다. 장마철이나 한여름에는 등산하기 쉽지 않아 그나마 6월이 산에 가기에는 최적의 시기라 할 수 있다. 왕복 3-4시간 정도의 코스로 새벽부터 부산하게 움직이면 여름에도 등산을 즐길 수 있다.



여름 등산은 새벽을 울리는 모닝콜과 더불어 많은 것들과의 사투다. 가장 만만치 않은 상대는 역시나 더위다. 찐득한 더위 속에 멈출 줄 모르고 흐르는 땀과 함께 온갖 벌레까지 달려든다. 소스라치게 놀랐던 벌레들을 산에서 만나면 신기하게도 평정심을 유지하게 된다.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 그것들이 있기에 예측이 가능한 탓일까.



계절과 상관없이 중요한 것은 체온조절이다. 여름이라 하더라도 얇은 겉옷은 하나 챙기는 것이 좋다. 땀에 흠뻑 젖은 채로 그늘진 곳을 지나거나 강한 바람을 만나면 체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가을에도 땀은 나기 마련이라 겹겹이 입어주는 것이 좋다. 날이 추워질수록 용량이 큰 등산가방이 필요한 이유다. 만일에 대비하는 겸손함은 체력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가 된다.



밤이 갈수록 짧아진다. 길어진 하루만큼 짙어가는 여름의 생명력 그 일부는 분명 가을에 대한 기대에서 오는 것이다. 마치 다가올 여행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마음과도 같다. 등산의 계절, 가을을 고대하며 6월은 지리산 종주에 도전하려고 한다. 산이든 바다든 각자의 피서를 즐기다 보면 가을은 오기 마련이다.



명성산의 억새바람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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