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화 Feb 26. 2024

칭찬은 나를 춤추게 한다.

사실은 처음부터 그랬던 거야, 벗어날 수 없을걸.


천방지축 얼렁뚱땅 빙글빙글 돌아갔던 첫 수업. 그리고 아주 장렬하게 전사했던 나.

그 후 찾아온 설 연휴로 한 주를 쉬고, 2주 만에 다시 도예수업을 가게 된 날이었다.


첫 수업 때 물레한테 호되게 혼난 나는, (무려 3일 동안 몸살을 앓았다) 마음의 준비를 아주 단단하게 하고 다시 한번 공방문을 두드렸다.



오늘은 기필코 친해지리라.



저번에는 원장선생님이 계셨는데 오늘은 여자선생님이 계셨다.

여자선생님은 이전 물레원데이클래스 때 나에게 처음으로 물레를 알려주신, 내가 만든(?) 컵에 90%의 손길을 나눠주신 그 선생님이다. 사실 그분이 알려주시면 너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첫 수업 때 원장선생님이 계셔서 조금 아쉬웠었다. 그런데 오늘은 계시다니...! 정말 친절하고 잘 알려주셨던 분이어서 마음속으로 환호와 함께 기쁨의 댄스를 췄다.

오늘은 뭔가 더 잘 될 것만 같은 느낌.


선생님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이번에 새로 장만한 도예용 긴 앞치마를 매고 드디어 다시 물레판 앞에 앉았다.


아 그전에 먼저, 물레를 시작하기 전 기본세팅을 해주어야 한다.

나의 도(예)도(구)한 친구들을 소개합니다.

항상 기본적,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도구들.

-흙자름줄: 소지를 필요한 만큼 자를 때 사용하기도 하고, 성형을 마친 후 기물을 물레에서 잘라낼 때도 사용된다.

-밑가새: 성형된 기물을 물레에서 떼어내기 위한 작업으로 밑가새를 이용해 잘라낼 수 있게 틈(홈)을 만들어준다. 밑가새 끝에 달려있는 줄은 흙자름줄로 사용할 수 있다.

-창칼: 그릇의 높이를 조절하거나 균일하게 만들기 위해 기물의 입 부분을 절단할 때 사용한다.

-고무전대: 그릇, 컵의 형태가 완성된 후 입 부분을 부드럽게 정리하기 위해 사용한다.

-헤라: 그릇의 바닥 면과 바깥 형태를 다듬을 때 사용한다. (물레판의 잔여흙을 정리할 때도 유용하게 사용된다.)

-물통: 물이 없으면 물레를 할 수 없다. 꽤 많은 물을 사용하게 되니 크기가 어느 정도 있는 물통을 사용하는 게 좋다.

-스펀지: 흙에 물을 조절해서 줄 때 사용하기도 하고 성형 중간 기물의 물기를 닦아내거나 표면을 다듬을 때도 사용하는 만능도구이다.


추가로 완성된 기물을 올릴 수 있는 나무판도 앞에 하나 놔준다.

세팅이 완료되었다면 마지막으로 소지를 꺼낸다. 그러면 드디어 물레를 돌릴 모든 준비가 마무리된다.

도구 짝짝- 물레미레미 도레미

소지는 선생님이 꺼내주셨는데 흙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고 아무래도 연습이 많이 필요할 것 같아서 흙자름줄을 이용해 반으로 나눠서 사용했다.


저번에 배운 대로 몇 번 돌려가며 살짝 소지를 내려쳐준 후 가운데에 조금 세게 던져 부착시킨다. 이후 손바닥을 이용해 착착 돌려가며 가운데로 모아주었다.


소지가 떨어지지 않게 밑을 잘 고정시켜 준 후 심호흡 한 번을 하고 드디어 물레판을 돌렸다.


역시나 소지는 여전히 나의 손길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감각이 전혀 기억나지 않아 낑낑 거리며 중심 잡기에 고전하고 있는데 나의 구원자 선생님이 이전 수업정리를 하신 후 나타나 내가 헤매고 있는 모습을 보시고 다시 한번 자세를 고쳐 잡아주셨다. 

형편없는 실력에 괜스레 부끄러워진 나는 핑계 아닌 핑계를 대었다.


'선생님, 사실 2주 만이라 기억이 조금 가물가물해요...'


나의 말에 선생님은 그럴 수 있다며 다시 한번 섬세하게 설명과 함께 시범을 보여주셨다. 원장선생님도 잘 알려주시긴 했지만 역시 이 선생님이 더 쉽게 알려주셨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는데.


'어때요? 조금 감이 오시나요?'


'선생님. 그게요, 보면 알겠는데 막상 하면 제 몸이 안 따라줘요.'


그렇다. 나는 몸치였다.

아무리 열심히 보고 따라 해도 도와주지 않는 나의 이 한스러운 몸뚱이. 그게 이 모든 것의 문제였다.


나의 말에 착한 선생님은 처음엔 그럴 수밖에 없다며 연습하다 보면 점점 감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하셨다.

앞서 말했다시피 자신에게 편하고 맞는 감각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걸 찾아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 가지, 선생님이 도예를 시작했을 때 좀 더 쉽게 할 수 있었던 팁을 알려주셨다.



바로 삼각형.



오른손 밑부분을 이용해 중심을 먼저 조금 잡아준 뒤 살짝 끌어올린 다음에 왼손으로 감싸주는데,

이때 오른손과 왼손 엄지 아래 넓은 부분과 왼손 검지 부분 이 세 부분이 삼각형처럼 꼭지의 역할을 하듯 모양을 만들어 주면 좀 더 중심을 잡기 쉬워진다고 해주셨다. 흙기둥도 좀 더 잘 끌어올릴 수 있을 거라며 그 부분을 잘 염두해서 연습을 해보라고 하셨다.


그 말을 하는 선생님의 모습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날개 달린 천사와 같이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빛나보였다. 역시 나의 구원자.


하지만 앞서 말했듯 나는 '몸치'였고 해본다고 해봤지만 선생님처럼 쉽게 자세가 잡히지 않았다.


그래, 나에겐 그저 연습만이 살 길. 

하지만 연습을 할수록 알 것 같으면서 잘 모르겠고,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 감각에 안달이 났다.



그래도 선생님이 알려준 팁 때문이었을까, 선생님의 아낌없는 칭찬 때문이었을까,

첫 수업 때보단 힘이 덜 들었고 자세에 안정감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다른 수업을 봐주면서도 중간중간 와서 아낌없이, 어린 새싹에게 물을 주듯, 칭찬을 한 바가지씩 해주고 가셨다.



'우아~ 잘하시는데요?'

'처음인데 이 정도면 정말 잘하시는 거예요. 역시 손재주가 있으신가 보다.'

'볼 때마다 실력이 쑥쑥 늘고 계신데요?'

'오늘 원형컵 만드는 거 배우셔도 될 것 같아요.'



선생님의 무한 칭찬과 '잘한다 잘한다'를 한껏 받은 나는 점점 자신감이 생겼다. 

나도 안다. 이것은 근거 없는 자신감. 그럼에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칭찬은 나를 춤추게 만들었다.


그것도 아주 열정적으로!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연습 삼매경에 빠졌다. 좀 더 중심 잡기 감각을 느끼고 알아서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선생님이 느끼고 계신 감각을 나도 조금이나마 느껴보고 싶었다.



한 시간 정도 중심 잡기 연습을 했더니 아무래도 소지가 물을 많이 먹은 게 보였다. 이대로 소지를 버리는 건 아깝기도 해서 마지막으로 작은 컵모양을 만들어 본 후 잠깐의 휴식을 취했다.


첫 수업 때는 1시간 연습하고 완전 녹초가 되었었는데 이번에는 그렇게 힘이 들지 않았다.


그게 참 기분이 좋았다. 선생님의 칭찬 덕분도 있지만 선생님이 알려주신 팁도 무척이나 도움이 되었다.



역시 물레는 너무 재미있어.


알 것 같으면서도 다시 알 수 없게 되는 매혹적이고도 신비로운 물레의 매력에 나는 아주 질척하게 빠져들어버린 것 같았다.

2라운드 시작.

아까 반 남긴 소지를 이용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 보았다. 첫 수업에 비하면 갯벌의 양도 줄어든 게 보였다.

신기하게도 이때부턴 정말 삼각형 감각을 조금 알게 되었다. 이제까지 했던 중심 잡기 중 제일 소지가 쑥 올라오고 쑥 내려갔다.

내가 봐도 점점 안정적으로 중심이 잡혀가는 모습이 보였다.



'중심 잡기 이 정도면 되신 것 같은데요? 이제 원형컵 만들어볼까요?'


선생님의 말과 함께 드디어 원형컵을 만드는 법을 배웠다. 원형컵은 기물을 만들 때 가장 처음 배우는 기초적인 작업이다.



중심 잡기가 되었다면 컵을 만들기 전 소지 윗부분을 꽤 평평하게 잡아주어야 한다. 평평하게 잡은 그 넓이가 바로 컵의 밑부분의 크기가 되기 때문에 고려해서 원하는 만큼 잡아준다.


엄지를 이용해 어느 정도 평평하게 소지윗부분을 펼쳐주었다면 이제 엄지를 세워 구멍을 뚫듯 파 내려간다.

여기서도 잊지 말아야 할 점. 물레를 돌리는 속도와 손의 속도는 항상 맞아야 한다. 속도가 엇나가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아주 가슴 아픈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

그렇기에 흙의 감각을 손에 익히는 연습을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다.

어느 정도 파내려 갔다면 속도에 맞춰 점점 구멍이 넓어지게 엄지를 양쪽으로 당겨주며 바닥을 만든다.


여기서 소지를 평평하게 펼쳐주었던 크기보다 더 큰 바닥을 만들면 기물을 만들면서 벽이 힘을 잃어 무너질 수 있으니 처음에 펼친 소지의 크기를 고려한 넓이만큼의 바닥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오른손의 검지와 중지를 이용해 바닥을 평평하게 만들어준다. 안쪽에서 바깥쪽,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살살 문지르며 평평하게 만들어주면 되는데, 이 작업은 오로지 손가락의 감각에 의지해야 하기 때문에 연습을 많이 해보면서 감을 찾는 방법 밖에 없다.


바닥을 평평하게 만들었다면, 드디어 컵의 모양이 나오게 옆면을 끌어올려주어야 한다.


오른손 엄지는 바깥면을 나머지 검지, 중지, 약지는 안쪽 변에 닿게 하여 흙의 움직임과 물레의 속도를 읽어가며 그에 맞춰 끌어올려주면 된다. 이때는 물레를 너무 빨리 안 돌리는 게 좋다. 본인에게 맞는 적당한 속도를 찾아 거기에 맞게 돌리며 손 끝으로 벽을 끌어올려주면 된다.


이때 위로 끌어올린다는 느낌으로. 옆으로 잡아당기듯 끌어올리다 보면 원통형이 아닌 점점 밥공기처럼 옆으로 퍼지면서 올라오게 된다. 그럼 벽면이 울퉁불퉁 얇아지거나 중심을 잃어 무너질 수도 있다.


어느 정도 올라오면 한 손으로 하기 힘들어지는데 그때부터는 왼손 검지, 중지를 바깥면에 대고 오른손 검지, 중지를 안쪽면에 대어서 균형을 맞춰가며 올려주면 된다. 이때 오른손 검지를 왼손검지에 걸어주면 고정이 되어 좀 더 흔들리지 않고 끌어올릴 수 있다.


여기서 다들 잊지 말아야 하는 점 또 하나. 사실 모든 작업과정이 그렇지만, 그렇기에 그만큼 중요한 점.

양손 팔꿈치는 항상 허벅지나, 골반 등 어딘가에 고정을 시켜놔야 한다는 점이다.

안 그러면 돌아가는 물레의 속도와 힘에 손이 사정없이 흔들리게 되고 열심히 고생고생해서 만든 기물은 처참히 무너지고 만다.


그런데 알면서도 안 되는 게 바로 내 몸이었다. 몸치에게 이런 감각적 움직임은 아주 크나큰 시련이었다.

하지만 일곱 번, 아니 그 이상 넘어진대도 일어나야지.


최대한 감각을 익히기 위해 손 끝에 신경을 집중했다. 어찌어찌해 보면서 그나마 나쁘지 않은 것들은 연습 겸 고무전대를 이용해 입부분을 부드럽게 만들어주어 마무리를 한다.


이제는 기물을 떼어낼 차례.

밑바닥을 고려해 그보다 아랫부분을 떼어내야 하는데 밑가새를 이용해 떼어낼 부분을 체크하여 물레를 천천히 돌려 홈을 만들어준다. 이때도 밑가새가 흔들리지 않게 팔을 잘 고정시켜야 한다. 원하는 선이 생겼다면 좀 더 깊숙이 밑가새를 넣어 모양을 만들어준다.

마지막으로 흙자름줄을 이용해 완벽하게 소지와 기물을 분리시켜 준다. 옮기는 방법은 양손을 손바닥이 보이는 쪽으로 뒤집어 검지와 중지를 v자로 만들어 준 후 틈에 살짝 끼어 넣어주어 조심히 들어 올리면 된다.


우여곡절 끝, 그렇게 탄생된 나의 원형(?) 컵들.

삐뚤이 삼총사

모양이 엉망진창이지만 그럼에도 뿌듯했다.

입부분이 평평하지 않아 쓸 순 없어서 다시 반죽행이 되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만들어봤다는 거에 의의를 두었다. 해본 게 어디야.


원래 두 개째 만들었을 때 그만하고 정리하려고 했다. 그런데 우리의 착한 선생님이 시간 괜찮으면 하나만 더 해봐도 된다고 해서 뭔가 기쁜 마음으로 해봤는데, 이때 정말 신기하게도 흙의 움직임이 조금 읽혔다.

그렇다고 모양이 완벽하게 나온 건 아니긴 했지만 선생님이 말하신 게 이 감각인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감각이 있으신가 봐요. 두 번째 수업인데 이렇게 하실 수 있다니, 너무 잘하시는 거예요. 이 정도면 금방 느실 거 같아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천사 같은 선생님의 무한칭찬이 계속되었고, 첫 수업 때 두 동강 박살 났던 내 자신감은 그렇게 우쭐우쭐 솟아올랐다.



나 알고 보니 물레 천재...?


물론 이 생각은 1분도 가진 않긴 했다. 나는 나를 안다.

나는 어쩔 수 없는 몸치이니까.


'선생님... 저, 아마 다음 수업 때 오면 다시 감각 잃어버릴 수도 있어요...'


'아니에요~ 그래도 손재주가 있어서 금방 찾으실 것 같아요.'


창과 방패의 싸움이 이런 걸까. 근데 그냥 내가 지고 싶어질 정도로 선생님은 칭찬봇이었다.

선생님 자꾸 이러시면 저 또 춤춰요.

오늘도 남은 수업의 흔적

첫 수업 때보다 정말 많이 수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선생님들이 말하셨던 감각이 무엇인지 아주 어렴풋하고 희미하지만 손에 닿은 느낌이었다.


살짝 손에 닿은 그 감각을 잊고 싶지 않다. 그 감각을 도망가지 못하게 꽉 부여잡아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

나는 아직 물레와 더욱더 친해지고 싶다. 물레에 대해, 도예에 대해 더 알고 싶다.



갯벌에 빠진 손을 누군가가 잡아 더욱 깊숙한 곳으로 나를 끌어당기고 있다.

이대로 더욱 잠겨도 좋을 것 같다.

나는 지금 완전히 푹 빠져버렸다. 사실 처음부터 그랬다.

나는 물레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






이전 03화 그저 바라만 보고 있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