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만남은 빙글빙글 돌고.
Phase 2. 그 막이 올랐다.
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아 자리에 앉았다.
조금 더 편한 자세를 찾기 위해 괜히 의자를 옮겨가며 들썩 거려도 보았다.
아까 소지가 두 동강이 났기 때문에 이번에는 새로운 흙반죽을 올려야 했다.
수업 초반, 중심 잡기에 대해 설명해 주시기 전에 먼저 반죽이 완료된 긴 소지(공방 문 앞에 있었던 것과 같은)를 꺼내보여 주셨다. 이 소지를 필요한 만큼 잘라 사용하면 되는데 초심자는 보통 3등분 정도로 나눠 사용하고 숙련자일수록 더 많은 양의 소지를 사용해 작업을 한다고 하셨다.
왜냐하면 양이 많을수록 중심 잡기를 할 때 힘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초심자는 처음에는 작은 양으로 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어차피 한 번에 많은 양의 기물을 만들 수 없기도 하고.)
선생님은 설명을 위해 2/3 정도의 소지를 사용하셨고 남은 1/3은 다시 보관하였는데 그걸 다시 꺼내 사용했다. (참고로 반죽은 외부에 오래 꺼내두면 수분이 사라져 굳기 때문에 비닐을 덮어 보관해야 한다.)
여기서 바로 물레를 돌리는 것이 아니다. 물레를 돌릴 때 날아가지 않도록 소지를 회전판에 잘 고정시켜 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준비된 소지를 물레 위에서 살살 돌려가며 가볍게 내려쳐준다. 몇 번 반복하다 보면 긴 원통형이었던 소지의 밑부분이 모자 혹은 팽이 같은 모양으로 점점 널찍하게 펼쳐진다.
얼추 펼쳐졌다면 이번에는 물레판 중심 위에 조금 힘을 주어 소지를 내려친다. 그러면 소지가 물레판에 착 달라붙는다.
소지가 물레 위에 잘 붙었다면 천천히 느릿하게 물레판을 회전시키면서 양 손바닥으로 골고루, 소지가 가운데로 모일 수 있게 두드리며 다져준다.
회전판에 원형 모양이 있기 때문에 그걸 보며 가운데에 잘 모이도록, 약간 동산 같은 모양이 나오도록 잘 두드려 모아준다. 모양이 잡혔다면 마지막으로 소지 밑부분을 손가락으로 문질러 더 잘 붙도록 펼쳐준다.
(많이 문지를 필요는 없고 그냥 조금 더 펼쳐서 고정시켜 준다는 느낌 정도면 되는 듯하다.)
그럼 이제 끌어올릴 준비가 끝났다.
손에 물을 적셔준다. 물은 일종의 윤활제 같은 역할로 소지에 수분을 주어 성형하기 좋게 부드러운 상태로 만들어준다. 흙을 만지다 보면 손에 있는 수분을 흙이 쏙쏙 빨아먹기 때문에 꽤 자주 손에 물을 적셔주어야 한다. 물이 부족할수록 흙이 점점 거칠게 느껴져 모양을 잡기 힘들어진다. 그렇다고 물을 너무 듬뿍 머금게 하면 소지가 점점 진흙의 형태로 변하기 때문에 오히려 성형하기 어려워진다. 그러니 수시로, 적절하게 물을 적셔주어야 한다.
하지만 저 상태의 소지는 꽤나 단단하기 때문에 초심자들은 오히려 물을 많이 적셔주는 게 좋다. 잊지 말아야 한다. 도예의 ㄷ자도 모르는 초초초심자에게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 기물을 만드는 것이 아닌 흙과 먼저 친해져야 한다는 것을.
물에 적신 손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쓸어내려주며 소지에 수분을 나눠준다. 위에서 아래로 내리는 이유는 그래야 골고루 수분이 전달되기 때문이다. 아랫부분에 수분이 많으면 오히려 흔들리기 쉽다. 건물과 같은 원리. 아랫부분이 단단하게 중심이 잘 잡혀야 쉽게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충분히 물을 적셔주었다면 이제 정말 끌어올릴 시간이다.
양 손바닥으로 소지의 밑 부분을 감싸준다.
왼손은 보조한다는 느낌으로 대면되고 힘은 주로 오른손에 주면 된다. 여기서도 잊지 말아야 한다. 양 팔꿈치는 꼭 몸의 어딘가에 붙여 고정시켜야 한다. 그래야 팔이 흙의 힘에 밀리지 않는다. 나는 허벅지에 팔꿈치를 고정시켰다.
처음부터 너무 힘을 주어 끌어올리면 성냥개비처럼 되니 적당히 힘을 주어 올려야 한다. 한 번에 많이 올릴 필요 없다. 가능한 만큼 올리고 그 행동을 몇 번 반복해 주면 된다. 흙을 잡고 올린다는 느낌이 아니다. 그렇게 되면 물레의 돌아가는 힘에 반해 내가 흙을 쥐고 있는 것처럼 되어 흙이 비틀려 아까와 같은 두 동강 사태가 일어나게 된다.
물레의 회전속도는 빠르게 하는 편이 좋다. 끌어올리는 손의 속도와 물레의 회전속도가 잘 맞아야 하는데 속도가 느릴수록 끌어올리는 손의 속도도 느려지기 때문에 힘이 더 들어가게 된다. 그때 잘못해서 힘을 세게 주면 바로 두 동강 엔딩을 맞이하게 된다.
손바닥 밑 면을 이용해 아래에서부터 흙을 밀어 끌어올렸다면 이제는 손바닥 가운데 부분에 힘을 모아 중심을 잡아준다. 길고 높은 탑 모양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물론 이 때도 끌어올려보겠다고 흙을 잡듯이 쥐면 안 된다. 그럼 바로 두 동강 엔딩. 손은 댄다는 느낌으로 절대 돌아가는 힘에 반하면 안 된다.
잘 끌어올려 윗부분까지 손바닥이 올라왔다면 엄지를 이용하여 윗부분을 평평하게 만들어 준다. 이때 엄지 끝에 힘을 주는 것이 아닌 아랫부분, 살짝 튀어나와 있는 뼈마디 부분을 이용하여 평평하게 만든다.
그렇게 소지를 어느 정도 끌어올리고 중심이 잡혔다면, 이제 다시 밑으로 내려준다.
역시 왼손은 거들뿐. 오른손을 이용하여 소지의 상단 부분을 앞으로 밀어준다. 이때 오른손 팔꿈치를 몸에 고정시킨 상태에서 그대로 몸을 앞으로 기울여주면 된다. 그러면 팔도 앞으로 가면서 자연스럽게 힘이 실리게 된다. 팔힘으로만 소지를 앞으로 밀게 되면 생각만큼 잘 낮아지지 않을뿐더러 팔에 엄청난 무리가 가게 된다.
그렇게 낮아진 소지를 다시 한번 자연스럽게 감싸면서 중심을 잡아준다. 그리고 다시 끌어올리고 내려주는 과정을 반복하면 되는데 소지의 상태와 양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보통은 한 세트에 10번은 반복해준다고 한다.
물론 소지의 양을 처음부터 많이 해서 기물을 한 번 만들고 이후 이어서 진행할 때는 2~3번 정도만 해도 된다고 한다.
'어느 정도 중심이 잡혔다면 기물 한 번 만들어보세요.'
중심 잡기만 하기에는 지루하고 힘드니 재미 삼아 원하는 데로 만들어본 후 떼어내라고 하셨다. 지금은 흙과 친해지고 감각을 느끼는 것이 제일 중요하니 망쳐도 상관없다고, 오히려 당연한 거라고 하셨다.
'즐기세요. 그래야 돼요. 안 그러면 너무 힘들어요.'
네, 선생님. 저도 만들어보고 싶어요. 근데 중심이 안 잡혀서 만들 수가 없어요.
라는 말은 목구멍 안으로 삼키고 그저 아련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던 건 그저 바라만 보고 있기.
빙글빙글 돌아가는 물레판 위에 굳건히 자리 잡고 있는 내 손길을 완강하게 거부하는 이 소지를.
두 동강 엔딩을 피하기 위해 어르고 달래 가며 깨짝깨짝 끌어올리고, 끌어올리고, 끌어올리기의 반복을 나는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무한의 중심 잡기를 어느 정도 반복하고 나서야 드디어 기물을 만들어 볼 수 있었다.
(사실 너무 지쳐서 그냥 막무가내로 만들었다.)
2시간 만에 드디어 첫 기물을 만들 수 있었다. 모양은 아무 상관없었다. 그저 만들어 볼 수 있음에 기뻤다. 이렇게 존재해 줘서 감사했다.
'즐기세요.'
다 이유가 있던 거였어. 이거 하나 만들었다고 그저 바라보기만 했던 무력감에서 벗어나 다시 한번 빙글빙글 돌아가는 물레판에 뛰어들 의욕이 빼꼼 고개를 들었다.
기물을 떼어내고도 소지가 조금 남았기 때문에 다시 한번 중심 잡기 연습을 하며 감각을 되새겨본 후 마지막으로 기물을 만들어보았다. 물론 대차게 망했고 그렇게 장장 2시간 반에 걸친 나의 첫 물레 수업이 끝이 났다.
이제 남은 건 뒷정리인데 이것도 꽤나 시간이 걸렸다. 사용한 도구들을 물과 스펀지를 이용해 다 닦아내어야 했고, 자리에 묻은 흙자국도 닦아내야 했다. 무엇보다 물레판의 뒷정리가 제일 손이 많이 갔는데 회전판에 붙은 흙들은 도구를 이용해 어느 정도 떼어낸 후 남은 자국들은 스펀지를 이용해 거둬낸다. 그러고 나서 손걸레를 이용해 깨끗하게 닦아준다. 물레받침대는 물레를 돌릴 때 나오는 물이나 진흙들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데 나는 무슨 인천 앞바다 갯벌 마냥 모여있었다. 그만큼 소지를 낭비하고 물을 많이 사용했다는 거겠지.
덩어리들은 버리는 곳이 따로 있었기 때문에 거기에 모아 버리고 물로 깨끗이 헹구는데 꽤 시간이 걸렸다.
선생님과 짧은 대화와 소감을 나눈 후 다음 수업을 기약하며 공방을 나오는데, 정말 온몸이 아팠다.
바지와 옷, 심지어 앞머리까지 곳곳에 진흙이 튄 흔적이 보였다.
사실 목공했을 때보다 몸이 더 힘들었다. 오늘 흙이 아니라 내 몸이 비틀린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것마저 너무 다 좋았다.
물레를 배우기로 한 것이 후회가 되지 않았다. 그저 다음 수업이 벌써 너무 기다려지고 이 감각을 더욱 알고 느끼고 다루고 싶었다.
나는 초초초심자다. 그렇기에 많이 어설프고 그렇기에 얼렁뚱땅 부딪혀볼 수밖에 없다.
'즐기세요.'
나는 앞으로도 내 손길을 격렬하게 거부하는 이 완강한 소지를 바라볼 것이다.
우리의 만남은 여전히 빙글빙글 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