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화 Feb 12. 2024

노동... 좋아하세요...?

내가 간과한 것들.


자, 내가 간과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그 첫 번째, 숙련자들의 도예영상만을 본 것.

그 두 번째, 원데이클래스는 다 차린 밥상에 숟가락만 올리면 되는 것이란 걸 잊었던 것.

그 세 번째, '물레 힘들어요.'라는 말을 흘려들은 것. (그는 5년 넘게 도예를 하고 있다.)

그 네 번째, 고작 헬스 1년 조금 했으면서 힘에 대한 허세를 부렸던 것.


그렇다. 알고리즘에 홀려, 터져버린 도파민에 흐린 눈이 되어버린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던 것이다.

나는 그저 빛나는 단편만을 본 것이었다는 걸. 마치, 먹음직스럽게 반짝반짝 빛나는 빨간 딸기를 한 팩 샀는데 막상 열어보니 아래에는 흐물흐물하게 짓무른 딸기가 깔려있는 것과 같은.


하지만 억울해할 수도 없다. 보고 싶은 모습만 본 것은 나였다.

그러니 물레를 쉽게 생각해 시작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위의 사항을 체크해 보길 바란다.

모두 해당되는 당신, 나는 다시 한번 고려해 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그렇다고 물레를 배우기로 한 것을 후회하는가,라고 묻는다면 또 모순적이게도

내 대답은 'NO'이다.


인생이란 원래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는 법이었다.

그래서 인생이 재미있는 것 아니겠는가.


서두가 길어질 수밖에 없었던 나의 첫 도예수업날로 이제, 돌아가보려 한다.




이토록 기다려지던 주말이 있었던가.

도예를 배울 생각에 한껏 들뜬 나는 이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렇게, 드디어. 그날이 왔다.

이때까지만 해도 몰랐지, 소지 그 무서움을.

공방 앞에 놓여있던 소지들을 보며 '나, 오늘 드디어 물레를 하는구나' 실감이 났다.

쿵쾅쿵쾅 요동치는 심장이 목구멍을 뚫고 나와 공방문을 두드릴 것만 같았다.

물론 그러지 못했고 진정의 심호흡을 한 번한 후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선생님과 수줍은 인사 후 간단한 안내를 받고 바로 물레를 돌릴 준비를 했다.

떨리는 손으로 앞치마를 매는 순간 드디어 도예의, 물레의 첫 수업이 시작되었다.


물레를 시작할 때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것, 바로 중심 잡기이다.

(도예도구에 대한 설명은 이후 차차 자세히 다뤄보고자 한다.)


중심 잡기가 중요한 이유는,

처음에 중심이 제대로 잡혀있지 않으면 물레 회전에 따른 원심력 때문에 더욱 균형을 잡기가 어려워지고 그만큼 시간과 힘을 더 들이게 된다. 중심을 잡아주는 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 소지를 균일하고 부드럽게 풀어주어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기물을 성형할 수 있게 된다.

중심 잡기만 한 달 이상 배워야 할 수 있다고 선생님은 덧붙여 말했다.


기본적인 세팅과 물레의 자세에 대해 먼저 알려주며 몇 번이나 반복하신 말이 있었다.


'물레는 운동과 같아요.'


'아~ 운동.'

사실 듣고 보기만 했을 때는 크게 와닿지 않았다. (앞서 말했다시피 나는 헬스 1년-ing에 대한 허세가 있었다.)

그저 선생님의 맞은편에 앉아 선생님이 해주시는 설명과 자세, 동작 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그렇게 멋지게 중심을 잡는 나의 모습을 그려보며.

수업의 흔적, 선생님이 넘겨준 바통.

몇 번의 반복설명을 끝으로 드디어 나의 차례가 왔다. 이제는 진짜 나의 시간.

우리는 초면이었고 그래서 데면데면했기에 우선 친해질 필요가 있었다. 이미 선생님과 돈독하게 친분을 다져 부드럽게 풀어진 소지를 내가 그대로 이어받아 중심 잡기, 즉 친해질 연습을 해보기로 했다.


나에게 편한 자세를 찾는 것이 먼저. 사람의 몸구조는 제각각이기 때문에 각자의 편한 자세가 조금씩 다르다. 그러니 선생님의 자세는 참고만 하고 나에게 편한 자세와 위치가 어디인지는 직접 돌려보면서 느끼고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오른발을 올려 페달을 밟기 편한 위치를 찾아 자리 잡았다. 왼발은 편하게 두고, 몸은 최대한 물레판과 가깝게 하는 것이 좋다. 멀어질수록 힘이 분산되기 때문인데 나처럼 체구가 작은 사람은 최대한 바싹 붙어야 힘을 모을 수 있다.


팔꿈치는 몸의 어딘가에 단단히 부착하는 것이 좋다. 배, 골반, 허벅지 등 본인이 고정시키기 편한 곳을 찾으면 된다. 이것도 중요한 이유가 팔꿈치를 몸에서 떼는 순간 고정되는 힘이 사라져 분산되면서 중심을 잡기 위해 팔에 힘이 더욱 들어가게 되는데 평소 안 쓰는 근육까지 쓰게 되는 고된 작업이라 그렇게 하면 다음 날 팔을 못 쓰게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이처럼 중심 잡기는 그저 팔힘이 아니라 온몸의 힘으로 작업해야 하는 고된 과정이다.

말 그대로 노동인 것이다.


보기에는 정말 쉬워 보였지. 엿가락처럼 쭉쭉 늘어나고 줄어들어 보였으니까. (앞서 말했듯 숙련자들의 도예영상만을 보고 이렇게 생각했는데, 나는 숙련자가 아닌 도예의 ㄷ자도 모르는 초초초심자였다는 걸 망각했다. 참고로 원데이클래스 때 중심 잡기는 선생님이 해주셨다.)


그렇다. 세상은 녹록지 않았고, 현실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인 법이었다.


왼: 선생님의 중심 잡기 / 오: 나의 사라진 중심에 대하여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힘과 기술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오른발로 페달을 밟아 물레를 시계방향으로 회전시키며 물에 적신 손을 사용해 소지를 부드럽게 만든 후 오른 손바닥 밑부분(칼날 부분이라고 해야 하나)에 힘을 주어 회전판에서부터 소지를 적당히 감싼 후 끌어올린다.


그래, 끌어올려야 했다. 끌어 올라와야 했다. 근데 왜... 왜 올라오지 않는 거야.

절박한 마음에 속으로 김호영 님의 '끌어~올려~~~'를 연신 외쳐보았지만 그 효과는 미미했다.

그래도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엉금엉금 올라오긴 했는데 더 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어느 정도 중심을 잡아가며 멱살 잡고 끌어올린 소지를 다시 넓고 낮은 상태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게 정말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왼손은 소지의 밑동을 감싸듯 대고 오른손은 소지의 상단 부분을 앞으로 밀어주며 소지를 기울여 서서히 낮아지게 해야 하는데, 도통 쉽게 낮아질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마음처럼 되지 않자 나도 모르게 힘으로 누르게 되었는데 그럴수록 흙은 더욱 뒤틀리고 단단해지고 내 손을 떠나갔다.



'물레는 운동과 같아요.'


선생님의 말이 떠올랐다.

선생님. 저에게 지금 물레는... 노동이에요.

 

몸은 점점 녹초가 되어가는데 힘은 더욱 쓰게 되었다. 요령도 없었을뿐더러 내 뜻대로 되지 않자 마음이 초조해졌다. 그렇게 점점 불필요한 힘이 들어가게 된 것이다. 다시 멱살 잡고 소지를 끌어올릴 때 무언가 잘못됐음을 느꼈다.

결국 두 동강 나버린 소지

결국 두 동강 나버린 소지를 끝으로 휴식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시계를 보니 시간은 벌써 1시간이 넘게 흘러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니 온몸이 울부짖기 시작했다.


'물레 힘들어요.'


사람은 왜 직접 겪어보고 나서야 그 의미와 감정을 절절하게 알 수 있게 되는 것일까.

페달을 밟던 오른발은 달달 떨렸고, 양쪽 손목과 팔은 벌써부터 근육통이 느껴졌다. 온몸을 앞으로 기울이기도 하고 미는 힘도 필요했기 때문에 어깨랑 등까지 무거운 뻐근함이 느껴졌다.

다른 듯 익숙한 고됨. 상상이상의 육체적 노동. 목공을 할 때가 잠시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정말 힘든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재미있었다.

저 사람 변태인가 봐, 라 한다면 그렇다. 나는 변태일지도 모른다.


몸을 최대한 물레판에 가깝게 하다 보니 소지가 돌아가고 형태가 바뀌는 모습이 정말 세세하게 보이는데, 내 손길에 따라 형태가 변하고 무늬가 남는 소지의 모습을 보는 게 신기하고 즐거웠다. 빙글빙글, 흔들리지 않고 점점 중심을 잡아가는 모습이 어쩐지 대견하기도 하고 꽤나 아름다웠다.


지금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지만 열심히 해서 나도 엿가락같이 소지를 다를 수 있게 된다면.

그 얼마나 새롭고 짜릿할까.


그렇게 생각하니 무거웠던 뻐근함이 조금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다시 노동할 준비가 되었다.

시계를 보았다. 15분이 지나있었다.


Phase 2를 시작할 시간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