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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화 Feb 05. 2024

시작 그전.

왜 도예였을까.


도예기를 시작하기 앞서, 한 가지 고백하고자 한다.


사실은 목공을 다시 시작해보려고 했다.


나무를 만지는 것은 꽤나 힘들었지만, 톱질할 때 퍼지는 은은한 나무향이 좋았다. 거칠었던 표면이 매끄럽게 바뀌어가는 감촉이 좋았다. 같은 나무에서 나왔지만 어느 하나 똑같지 않은, 각자의 모습이 있는 목재를 보는 것이 좋았다.

한 번 실수하면 돌이킬 수 없었기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워 오직 눈앞의 나무만을 바라봐야 했다. 그 결 하나하나 눈에 담고, 손 끝에 닿아야 했고 그렇게 나의 모든 것이 담긴 무언가가 만들어지는 것이 뿌듯했다.


그렇게 좋아하던 목공을 쉬게 된 이유는 바로 육체적 피로였다.


내 몸은 언제나 땀과 나무톱밥으로 범벅이었다. 서서 작업했기에 수업이 끝나면 발과 다리는 항상 퉁퉁 부어있었다. 나의 두 손은 언제 스쳤는지 알 수 없는 상처들이 늘어갔고 뻣뻣하고 건조해져 갔다.

주로 톱과 끌로 형태를 만들긴 했지만, 그 외의 작업을 할 때는 역시 기계를 사용해야 했다.

트리머를 할 때에는 귀마개와 보호안경이 필수였다. 엄청난 굉음은 나의 귀를 괴롭혔고 보호안경 틈으로 들어온 톱밥 때문에 흘린 눈물이 몇 방울이었는지.

테이블쏘를 사용할 때는 빠르게 돌아가는 날카롭고 큰 톱날을 보며 언제나 심장이 떨렸고 오늘도 무사히 붙어있는 손가락에 감사했다.


나는 어마무시한 겁쟁이였기에, 기계실에 들어가야 할 일이 생기면 언제나 마음 졸였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서는 몇 기계들을 사용하는데 문제가 없었지만 역시나 테이블쏘만큼은 친해지기가 어려웠다.

피, 땀, 눈물이 담긴 수납장.

마지막으로 꽤 오랜 기간에 걸쳐 수납장을 만들고 나는 완전히 녹다운되어 버렸다.

6개월을 목공에 빠졌었고 그렇게 6개월을 목공과 멀어졌다.


목공을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반이었고, 겁이 나는 마음이 반이었다.

다시 그 육체적 고됨을 견딜 수 있을까?

좋아하는 마음과 힘듬은 상반되면서도 늘 함께 붙어있는 것 같았다.



그러던 중 접하게 된 것이 바로 도예, 그중에서도 물레였다.

나에게 '물레'하면 떠오르는 모습은 '사랑과 영혼'. oh, my love이라는 가사의 노래가 나오는, 두 연인이 다정하게 물레를 하는 장면이었다. 겹쳐진 두 손, 오가는 눈빛, 피어나는 사랑. 뭐 이런 이미지.


그래서 크게 흥미가 없었는데,

어느 날 무서운 알고리즘의 손아귀에 걸린 나는 처음으로 제대로 된 물레영상을 접하게 된다.

물레는 생각보다 품이 많이 가는 작업이었고, 섬세하고 모든 신경과 감각을 담아내야 하는 작업이었다.


'멋있다.'


무언가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담아내는 모습은 참 눈부시고 아름다웠다.

그렇게 홀린 듯 영상들을 보았다. 나는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늘 예상을 빗나가고 다른 법 아니던가. 그래서 직접 해보고 싶었다.

이렇게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닌 실제로 내가 느낄 감각이 어떠할지 궁금했다.


원데이 클래스를 신청했다.

공방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기분 좋은 설렘과 두근거리는 심장의 떨림이 느껴졌다. 목공을 처음 배우러 간 날이 떠올랐다.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선생님의 도움으로 처음 점토를 만졌을 때의 감촉이란,

생각보다 차갑고 부드러웠는데 그럼에도 느껴지는 단단함이 있었다. 두터운 듯 연약했다.

선생님의 손길을 따라가다 보면 느껴지던 흙의 섬세함. 그 변화가 미세하지만 나에게도 전달이 되었다.

참 신기했다.

좀 더 그 손길을 따라 걸어보고 싶었다.



선생님과 함께 원하는 작품을 하나 만든 후, 남는 시간은 자유롭게 연습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

왼: 선생님 손길 10% 함유 / 오: 내 손길 100% 함유

느낌이 전혀 달랐다. 선생님과 함께 할 때 느껴지던 손가락 감각이 막상 혼자서 하니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언제 그랬냐는 듯, 마치 나의 착각이었던 것처럼.

그래서 오히려 더 불이 붙었다. 알고 싶었다. 그 손길, 그 감각을 다시 찾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울퉁불퉁, 돌아가는 기물이 나를 보며 웃는 것 같았다.

'어서 와, 물레는 처음이지?'



좌절에 빠져있는 내 모습을 보며 착하신 선생님은

'처음인데 이 정도면 아주 잘하신 거예요.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만드신 분들도 꽤 있어요.'

라며 위로해 주셨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선생님의 손길 90%, 나의 손길 10%로 탄생된 첫 도예작품

1시간.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는 듯 마음에 확신이 생겼다.

그렇게 '다시'가 아닌 '새로운' 나의 시작은 도예가 되었다.


손만 닿았다 떼는 것이 아닌, 좀 더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도예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저 결심했어요. 마음먹었어요.

그러니 부디 기대하길,

나의 도예기. 나의 물레. 나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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