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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화 Sep 26. 2024

독백, 나의 회고록. 16.

입덕 부정기.


나는 이걸 '당했다고' 표현하고 싶다.

그러니까 마치 자연재해를 맞닥뜨린 것과 같이. 그래, 순식간에 당해버렸다.

아니 순식간은 아닌가. 하지만 감히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었던. 

음 한편으론 그래. 가랑비에 옷 젖듯, 서서히 번지듯 스며들었던 듯하다.

명확한 이유도 어떠한 영문도 정확한 계기도 알지 못한 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입덕 당해있었다.



사건의 발단은 이러하다.


주변에서 추천을 받아 보게 된 뮤지컬에 생각지도 못하게 흠뻑 빠져 벗어날 수가 없었다. 처음으로 N차 관람이라는 것을 했다. 이미 그 뮤지컬은 거의 막공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어서 더 보고 싶어도 표를 구할 수가 없어 보지 못했다. 아쉬운 마음에 관련 영상들을 찾아보게 되었다. 


그 사람은 그 뮤지컬에 나오는 사람이었다. 사실 꽤나 놀라웠다. 왜냐하면 내 기억 속 그는 우선 꽤 유명한 아이돌이고 그 당시 예능계의 블루칩으로 본업보단 다른 분야에서 더 많이 접하고 알게 된 사람이었는데 의외로 뮤지컬배우로서 활동한 세월이 길었다. 뮤지컬배우를 할 정도였나? 노래를 잘하긴 했지만 뮤지컬을 할 정도는 아니지 않았나. 궁금한 마음에 그 사람의 영상을 접했다. 본업을 하는 그는 내 기억 속 그 사람이 아니었다. 조금 멋있네. 그 사람이 나오는 공연을 볼 수 없다는 게 아쉬워졌다.


알고리즘은 무서운 거였다.

그저 뮤지컬 때문에 어쩌다 같이 그 사람 영상을 조금 봤을 뿐인데 들어가기만 하면 그 사람의 영상들이 봐달라는 듯 촤라락 나열되었다.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흥미가 가는 영상들을 하나둘씩 볼 수밖에 없었다. 그건 불가항력이었다.



그 사람이 나온 예능, 무대, 인터뷰. 볼 수록 그는 생각보다 친숙한 사람이었다. 학창 시절 마주쳤을 법한, 그랬다면 친구가 되고 싶었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다. 재치가 있었고 비상한 면이 있으면서 방심하면 빙구미도 보이고 귀엽고, 안주하지 않고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뭐랄까 자기만의 가치관, 세계를 뚜렷하게 가지고 있는 단단한 사람 같았다.


그렇게 나 혼자만의 내적친밀감이 높아져 가던 중 나는 발견하고야 만 것이다.



'어? 눈 밑에 점이 있었네.'


이 발견은 생각보다 꽤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는데, 마치 신대륙을 발견한 기분이 이런 게 아니었을까? 싶었다.(오버하지 말라고 하겠지만 정말 그런 느낌이었다.)


여태까지 알고 있던 사람이 갑자기 전혀 모르는 새로운 사람이었던 것을 알게 된 느낌?


예전부터 그 사람이 나왔던 예능이나 방송들을 봐왔지만 눈 밑에 점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존재하고 있던 것이란 게 너무 신비롭고 새롭게 다가왔다.


그날을 기점으로 그 사람 얼굴을 보면 눈 밑 점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숨겨져 왔던 어마어마한 비밀을 알게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렇게 그 사람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 그러니까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발단은 뮤지컬이지만 난 그 사람이 나온 뮤지컬을 본 적이 없고, 그저 무서운 알고리즘에 의해 그 사람을 영상으로 접하던 중, 갑작스럽게 발견한 눈 밑 점에 나는 그 사람이 더욱 알고 싶어진 것이다.

심지어 나는 그런 얼굴상을 원래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그 순간을 기점으로 귀여워 보이기 시작하면 어쩌자는 거지.



여태까지 누군가에게 입덕을 해본 적이 없을뿐더러, 덕질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는 나에게 그 사람의 등장은 정말이지 자연재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먼저 그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어플에 가입을 해 처음으로 멤버십 구독이란 걸 했다. 처음으로 DM을 보냈을 때 손이 달달 떨렸다. 이게 뭐라고 긴장되는 거야. 그 사람이 읽을 가능성도 낮을 텐데.


그 사람은 원활하게 소통하진 않았지만 간간이 일상을 공유해 주었다. 나는 어플 알람설정을 안 해두는 편인데 그 사람의 일상은 빨리 공유받고 싶어서 알람설정도 해두었다.

말벌아저씨처럼 알람이 오면 득달같이 달려가 그 사람의 소식을 보았다.


그 사람의 사진을 저장하기 시작했다. 밈이나 짤, 귀여운 동물사진 아니면 저장 안 하는 내가 처음으로 저장한 사람사진. 어쩐지 수줍고 어쩐지 부끄러웠다.



그 사람이 나오는 페스티벌에 가고 싶어 동생에게 처음으로 덕밍아웃을 했다. 동생은 놀라하면서도 흔쾌히 나와 함께 가주기로 했다. 드디어 처음으로 그 사람의 노래를 라이브로 들어볼 수 있어. 가슴이 벅차올랐다.

지금까지와는 무언가 다른 색다른 행복함을 느꼈다.



 나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의 영상들을 발견하면 우선 누르고 봤을 때도, 그 사람의 사진을 저장하기 시작했을 때도, 어플을 다운받고 멤버십 구독을 했을 때도, 페스티벌 티켓을 샀을 때도 그냥 궁금하니까, 알고 싶어서, 큰 의미는 없어라고 한편으로 생각해 왔던 건 그저 입덕 부정기였을 뿐이라고. 성장통과 같은 잠깐 겪어가는 작은 일이었다고.



근데 사실 깨달았다고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나는 여전히 어떻게 덕질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고, 팬이란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 사람이 좋다. 그 사람에 대해 알고 싶고 그 사람의 활동을 기대하고 기다리고 응원하고 싶다.

그 사람이 부른 노래를 들으며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한다.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알아가보기도 한다. 같이 좋아지기도 한다.  


그렇게 나의 삶에 그 사람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무척이나 갑작스럽고 몹시나 당황스러웠던 입덕 부정기를 끝낸 나는 이제 오롯하게 이 순간을, 이 감정을 만끽하고 설레어하고 즐거워하고 그렇게 더욱 그 사람을 좋아할 거야. 


그래요, 당신. 나의 최애가 되셨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잘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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