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끔떠는 남자
나는 정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주변이 정리 되어야만 마음이 안정되고, 정리 되지 않으면 산만해지고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내 책상 위에는 필요한 물건만 있고 책상 서랍에는 물건들이 용도별로 분류 되어있다. 사무실 컴퓨터나 노트북도 바탕화면을 보면 파일이 거의 없고 목적에 맞게 정리해둔 폴더들이 대부분이다.
청소도 자주한다. 방 바닥은 거의 이틀에 한번씩 닦고, 어디든 눈에 보이는 곳이라면 먼지가 쌓여있지 못한다. 또 핸드폰은 꼭 하루에 한번씩 알코올 솜으로 닦아 소독하며, 케이스가 조금이라도 누렇게 변색되면 금방 새것으로 바꾼다.
땀을 흘리지 않는 날이라도 자기 전엔 무조건 매일 씻는다. 다 씻고나서도 손이나 어딘가에 조금이라도 이물질이 묻어있으면 찝찝해서 잠들지를 못한다. 옷은 그닥 잘입은 편은 아니지만 항상 단정하고 깨끗하게 입으려고 노력한다. 머리카락은 조금만 덥수룩해져도 미용실에 가고, 수염은 보이기도 전에 면도를 한다.
지금은 이렇게 지나치게 깔끔떠는 듯 하지만, 사실 나는 심각하게 너저분했던 시절이 있었다. 너저분하게 살던 그 시절에 비해 지금의 정돈된 삶이 너무나 좋기 때문, 내가 생각하는 정리가 무엇인지 글로 정리해보고 싶어 이렇게 글을 쓴다.
아픈 과거
난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기 때문에 형 누나들이 다 독립해서 나가기까지 내 방, 내 공간이 없었다. 물론 어릴 때부터 혼자서 한 방을 다 쓴다는 것은 드물게 축복받은 환경이기에 그들과 비교하며 불평하는 것은 아니다.
다같이 쓰는 공간이라도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면 괜찮았을텐데, 예전 우리집 거실과 부엌은 항상 복잡하고 물건이 많았다. 오죽하면 초등학생 때 우리집에 놀러왔던 친구가 '너네 집은 가면 발 디딜 틈이 없어'라고 얘기했던 기억이 있다. 또 오래된 아파트에 살아서 그랬는지 새벽에 일어나 물을 마시려고 부엌 불을 키면 열 마리는 족히 넘는 바퀴벌레들이 파스스 하며 제 위치로 숨던 순간들도 기억난다.
내 주변 환경이 어수선함은 물론, 잘 씻지 않고 옷도 맨날 꼬질꼬질하게 입고 다녔다. 초등학교 6학년 땐, 어떤 여자아이의 싸이월드에 들어갔다가 같은 반 남자아이들의 평을 올리는 게시글에서 '한요한은 항상 냄새 나서 별로'라는 글을 보아 상처 받았던 기억도 있다.
주변 환경이 어수선하고, 자기관리조차 안 되니 정서는 당연히 안정될리 없었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틱장애'라는 것이 생겼다. 입에 반복적으로 침을 묻히는 버릇이 생겨 입술이 빨갛게 트기도 했고, 입에 묻은 침을 옷소매로 닦다보니 옷소매에는 항상 침 냄새가 났다. 중학생 때는 눈을 쉴 새 없이 비비고 또 비벼 다래끼가 생겨 퉁퉁 부었던 기억도 있다. 이렇게 불안한 정서에, 반복적인 행동은 더 악이 되었다. 급기야 나는 낑낑거리는 듯 이상한 소리를 내는 음성 틱까지 생겼으며, 이는 중학교 반 친구들의 놀림거리가 되었다. 학교에서는 틱장애라 놀림 받고 맞으며, 집에서는 아버지에게 맞았던 기억이 있다.
하루는 방에서 낑낑대는 소리를 조금 크게 냈었는지, 아버지가 달려와 누워있던 나를 사정없이 걷어 찼던 기억이 있다. 하지 않으면 될 것을 왜 자꾸 하냐고, 니가 그러니까 친구들한테 무시 당하고 맞는거라고 가슴을 후벼파는 말을 하며.
새로운 나
고등학생이 되는 무렵, 기타라는 악기를 만나면서부터 꿈이 생겼고 나도 무언가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또 그때부터 자기관리라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고 나를 꾸미는 법도 알기 시작했다. 어느새 나는 반복적인 행동들을 최대한 억누르며, 남들과 똑같이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 되었다.
어쨌든 나는 정신병원이란 곳에 발도 들여본 적 없이 장애를 극복하여 재밌게 대학생활을 했고 장교로 임관해 군 생활도 잘 마쳤다. 내가 주변 정리와 자기관리를 잘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군 생활 덕분이었다.
나는 장교 임관 후 태어나서 처음으로 타지 생활을 해보았다. 오랜 세월 쌓인 가족들의 짐이 없는, 오직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 군대 간부들에게 주는 숙소는 대부분 열악하기로 유명하고 내가 배정 받은 숙소도 마찬가지였지만 그저 나만의 공간이 생긴 것이 기뻐 꾸미기에 바빴다. 그리고 거의 매일 청소하고 매일 정리했는데, 그게 나에겐 행복한 일이었다.
이때부터 정리라는 것이 습관으로 자리잡았다. 주변 정리가 항상 잘 되어 있으니 자기관리는 당연히 따라올 수 밖에 없었다.
어머니의 냉장고
군 전역 후 다시 부모님이 살고계시는 본가로 돌아왔다. 어머니가 집안 살림에 점점 관심을 많이 가지셔서 예전에 비해 깔끔해져 있었다. 물론 내 기준에 만족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크게 불편할 정도까진 아니었다.
본가에 살고있던 어느 날, 어머니는 혈관이 막히는 뇌경색 증상으로 오랜 병원 신세를 지게 되셨다. 어머니가 없는 집에서 지내던 나는 문득 냉장고를 볼 때마다 어머니의 혈관처럼 막혀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집은 식당도 아니면서 냉장고가 세 개나 있는데, 내가 가끔 음료수 같은 걸 사와서 냉장고에 넣으려 보면 공간이 없는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날을 잡고 가장 큰 냉장고 하나를 정신없이 정리하기 시작했다.
냉장고 깊은 곳엔 오랜 기간 숨어있던 곰팡이 핀 음식물들이 있었고, 된장은 이 용기 저 용기 나뉘어 여러 곳에서 발견 되었다. 그러니까, 된장을 덜어놓고서는 어디다 뒀는지 기억을 못해 덜어놓고 또 덜어놓고 하다보니 된장이 담겨있는 용기만 대여섯개 발견된 것이다.
정신없이 냉장고를 비우며 못먹는 음식물들을 버리다보니 거의 반나절이 흘렸고, 어머니의 막힌 혈관을 청소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머니와 닮았던 아들
어느날 악보 한 장을 찾기 위해 내 방을 마구 뒤졌다. 음악노트만 대여섯개 발견 했는데, 입시생 시절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공부했던 흔적들이 가득했다. 그런데 진도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내용들이 이 노트 저 노트에 뒤섞여 있었다. 그 노트들로는 복습이라곤 엄두 조차 못낼 것 같았다.
만약 그때 배운 것들을 잘 정리 해두었다면 나의 지식적 자산이 되었을 것이고, 다른 사람을 가르치게 될 경우 참고자료로도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비싼 등록금을 내고 많은 걸 배웠어도 정리를 하지 못해 온전한 내 것이 되지 못했다.
과거에 정리를 잘 하지 못했던 내 모습이 어머니와 닮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편으론 불과 몇년 사이에 많이 달라진 내 모습을 더욱 실감했다.
정돈된 삶
돌이켜 보면 너저분한 환경에서 불안한 정서로 살았던 힘든 과거가, 지금의 정돈된 삶을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이젠 어머니의 냉장고도 더이상 곰팡이를 품고있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도 한 번 크게 아프신 뒤로, 언제 떠날지 모르는 세상에 불필요한 짐들을 남기지 말아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으셨기 때문이다. 아직도 냉장고가 세 개인 건 의문이긴 하지만..
정리는 버리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언젠간 사용할 거라며 버리지 않는 물건에 대해선 책임이 있다. 잘 정리해두었다 진짜 필요할 때 사용하거나, 대충 아무데나 두어 복잡하게 쌓아놨다가 언젠가 한꺼번에 버려야 하는 책임이다.
어떤 물건이든 오랜 기간 사용한 적이 없는 물건이라면 언젠가 사용하겠지 하는 게 아니라 과감히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그 자리에 또 다른 물건이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버릴수록 얻는다.
정리하는 것은 나를 부유하게 하는 일이다. 아무리 좋은 물건이 많이 있다 한들 정리가 안 되고 너저분히 있으면 필요할 때 바로 찾지 못한다.
열 가지를 소유하고도 다 어디 있는지 몰라 세 가지만 사용하는 사람보다, 다섯 가지를 소유하고 다섯 가지를 사용하는 사람이 훨씬 지혜롭고 부유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정리는 나를 사랑하는 일이다. 공간은 사람이 만들면서도, 공간이 사람을 움직이기도 한다. 내가 자리한 공간을 더럽게 만드는 것은 나를 더러운 공간 속에 방치하는 것이며, 내가 자리한 공간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나를 행복하게 하기 위한 일이다.
또 가끔씩 밀려오는 복잡한 생각도 사색의 시간을 통해. 취미생활을 통해, 글을 쓰는 것을 통해 정리해주는 것이 좋다. 지금 나도 생각을 글로 정리하고 있지 않은가.
글을 쓰다보니 과거 힘들었던 나의 모습을 더욱 생동감 있게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그 어디에도 기댈 곳 없이 혼자 흐느껴 울던 어린 시절의 나를 잠시나마 만날 수 있었고, 꼭 안아줄 수 있었다. 더 성숙해진 멋진 어른으로서, 상처입은 어린 나를.
어릴적부터 어수선한 환경에 나를 방치한 어머니도, 불안한 정서의 나를 가혹하게 혼내기만 했던 아버지도 모두 지금은 용서했다. 그 시절 부모님도 지금의 나처럼 계속 성숙해가는 사람이었으며, 어떤 상처 깊은 일들이 있었던 간에 지금껏 단 한번도 먹을 것, 잘 곳 걱정하지 않고 이렇게 자라온 것만 해도 너무나 큰 은혜이기 때문이다. 또 이 글에는 자라오며 겪었던 수많은 일들 중 좋지 않았던 일부만 담겨있고, 감사했던 일들이 더더욱 많다.
오늘 나는 입었던 옷을 가지런히 정리해 두었다. 내일은 또 가지런히 정리된 옷을 꺼내 입고 새로운 하루를 맞이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행복하고 감사한 순간들을 내 마음의 서랍에 고이 간직하는 정리를 계속 해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