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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몽커피 Oct 02. 2024

생활이라는 생각

이현승/창비

              생활이라는 생각

                                                      -이현승


꿈이 현실이 되려면 상상은 얼마나 아파야 하는가.

상상이 현실이 되려면 절망은 얼마나 깊어야 하는가.


참으로 이기지 못할 것은 생활이라는 생각이다.

그럭저럭 살아지고 그럭저럭 살아가면서

우리는 도피 중이고, 유배 중이고, 망명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뭘 해야 한다면


이런 질문,

한날한시에 한 친구가 결혼을 하고

다른 친구의 혈육이 돌아가셨다면,

나는 슬픔의 손을 먼저 잡고 나중

사과의 말로 축하를 전하는 입이 될 것이다.


회복실의 얇은 잠 사이로 들치는 통증처럼

그렇게 잠깐 현실이 보이고

거기서 기도까지 가면 또

얼마나 깊이 절망해야 하는가


고독이 수면유도제밖에 안되는 이 삶에서

정말 필요한 건 잠이겠지만

술도 안 마셨는데 해장국이 필요한 아침처럼 다들

그래서 버스에서 전철에서 방에서 의자에서 자고 있지만

참으로 모자란 것은 생활이다.  p.36



가을이 오면~

우리 독서모임은 밖으로 나간다. 시 모임을 하기 위해서.

연일 30도가 넘는 날씨에 과연 가을이 올까 싶더니 아침 기온이 11도까지 떨어졌다.

산 중간에 있는 카페에서 할 수 있을지 살짝 걱정이 되었다. 내부에는 자리가 몇 자리 없어서 실외에서 해야 하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하는 독서모임은 사실 날씨가 관건이긴 하다. 바람이 불어 쌀쌀하긴 했지만 은은히 들려오는 클래식 음악과 따스해지는 햇살에 마음이 몽골몽골 해졌다.

누가 어떤 시를 가져오는지 현장에 가서야 알 수 있는데 재미있는 점은 주제가 일맥상통할 때가 많다는 점이다.  인생사 거기서 거기 아니야?라고 하면 사실 할말은 없지만 나는 그냥 크게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가 보다.

특별할 것 없는 이런 이벤트가 나는 더 좋다.^^


 평범한 일상에 감사함을 느낀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나는 권태로운 일상보다는 사건, 사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물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상태이겠지만 말이다.

가족 중 아픈 분 얘기가 나오면 너도 나도 이야기들이 얹어진다. 한집 걸러 아픈 분, 아팠던 분들이 왜 이리 많은지...

대학 때 엄마의 수술을 시작으로 가족이 아프다는 건 나의 생활이 없어진다는 걸, 누군가를 책임져야 한다는 걸 배웠다. 내가 누군가의 생활을 훔치는 이가 될까 봐 두려움을 느꼈다는 게 더 맞는 표현 같다.


                        


나는 가치가 있다

                        -엘라 월러 윌콕스


내가 추구하는 이상에 이르지 못할지 모른다

아직 확실하지 않은 내 힘은 나를 저버릴지 모른다

아니면, 산중턱쯤 올랐을 때

사나운 비바람이 불어닥칠지 모른다

그곳에 이르지 못할지라도

나의 고통에 대한 위안은 바로 이 말일 것이다

나는 가치가 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성공의 환희를 맛보지 못할지 모른다

내 이웃의 노력에는 베풀어지는 열매를

나는 가지지 못할지 모른다

하지만 내 목표에 도달하지 못할지라고

이 생각은 항상 나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가치가 있다


사랑의 빛이 발하는 금빛 영광은

내가 가는 길을 비추지 않을지 모른다

인적 끊긴 골목길을 

밤에만 다녀야 할 지 모른다

하지만 인생의 낙을 놓칠지라도

이 말에는 형언할 수 없는 힘이 있다

나는 가치가 있다





우울증은 이제 감기가 된 것 같다. 한집 걸러 우울증이다. 그것도 엄마가. 

아침에 이 시를 엄마에게 카톡으로 보냈는데 좋아하셨다는 J쌤의 말에 살짝 울컥했다. 당신들은 모두 가치가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물론 나에게도 말해주고 싶은 시다.



좋은 말

         -나태주


사랑합니다


그보다 좋은 말은

지금도 생각합니다


더 좋은 말은

우리 오래 만나요



얼마 전 김연수 작가의 북토크에 다녀왔다. 말의 힘을 믿는다는 작가는 만나는 사람마다 축복의 말을 하고 다닌다고... 마지막에 프린트된 이 시를 보고 눈물이 찔끔 맺혔다. 

나! 가을 타나봐~

시는 계절을 타는 장르가 맞는 것 같다. 일 년에 한두 번이지만 위로의 농도가 짙다.

우리는 계속 이렇게 시를 읽을 테니까 오래오래 만나도록 합시다. ^^


그 외 낭독한 시들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사랑하게 될까 _ 김용택

나무에 대하여 _ 정호승

거울 _이상



#생활이라는생각 #이현승 #시모임 #독서모임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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