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요즘 학생들의 수학실력이 과거에 비해 떨어지고 있다는 얘기를 들어봤을 것이다. 공부량은 많아졌지만 실력이 떨어진다는 사실. 불편한 사실이 아닐 수 없다. 마치, 요즘 아이들이 체격은 커졌지만, 체력은 약하다는 사실과 비슷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왜 수학 실력이 떨어지는 것일까? 그 원인을 분석한다면, 그에 따른 대처법도 생겨나지 않을까?
필자는 학력고사 세대이다. 많이들 회자되고 있는 이야기이지만, 난이도만 본다면 학력고사보다 수능이 쉽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수학에 있어서는 반대하는 의견이 별로 없을 것이라 믿는다. 그럼 대입시험에서 치르는 수학의 난이도가 낮아져서 요즘 학생들의 수학 실력이 떨어지는 걸까? 필자의 생각은 조금 다른 곳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우선 학습량을 살펴보자. 필자와 비슷한 세대라면 공감할 얘기지만, 과거 수학 공부할 때, 과연 교과서 외의 참고서 혹은 문제집을 몇 권이나 풀었을까? 한편 요즘 아이들은 몇 권이나 책을 풀어볼까? 과거에 비해 요즘 아이들의 학습량이 적을까? 일반적으로 공부를 하고자 하는 학생 기준으로 볼 때, 요즘 학생들의 학습량은 결코 과거에 비해 적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사실 훨씬 많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실력은 저하되고 있는 것일까?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공부했을 테고, 많은 사람들의 상황을 직접 조사한 것이 아니니, 내 기준으로 분석을 해보고자 한다. 과거 수학에 관한 책이라면 '정석'과 '해법'뿐이었다. 다른 책이 아마 있었겠지만, 기억하지 못한다. 그만큼 독보적이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그렇다면 요즘 아이들은? 정말이지 수없이 많은 책들이 있고, 그중 훌륭한 책들도 엄청 많다. 수준별로도 잘 나누어져 있고, 정석 같은 개념서뿐 아니라 상황에 맞는 문제집도 엄청나게 많다. 개념서, 유형별 문제집, 모의고사 문제집, 고난이 문제집, 기초 수준 문제집 등등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이다. 책들의 퀄리티도 엄청 좋다. 이들 중 몇 권만 정해서 공부를 해도 잘 정리가 될 듯하다. 내가 가르쳤던 중학교 아이들만 보더라도 한 학기에 기본 2~3권의 수학참고서 혹은 문제집을 본다. 교과서와 익힘책을 포함하면 더 많아진다. 그렇다면 당연히 실력이 더 좋아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런데 그게 그렇지가 않으니 이상하다고 하는 것이다.
필자는 문제의 핵심이 양이 아니라 방법에 있다고 확신하다. 공부방법이 확연히 달라진 것이다. 거기에는 사교육도 한몫 단단히 했다. 사교육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공교육이 최고라는 것도 아니다. 다만, 각각의 장점들이 아니라 단점들이 학생들의 공부법 변화에 영향을 끼친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과거 필자가 공부할 때를 회상해보고자 한다.
필자는 80년대에 중고등학교를 다녔는데, 당시엔 사교육이 불법이었다. 과외는 고사하고, 요즘 같은 학원도 없었지만, 재수생들이 다니는 학원에도 다니면 불법이었다. 물론, 몰래 과외를 하는 아이들이 있었겠지만, 표면적으론 없었다. 그러다 보니, 공부를 할 때, 도움 받을 곳이 없었다.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해결책은 네 가지 중에 하나였다.
(1) 학교 선생님께 여쭈어본다
(2) 나보다 잘하는 친구에게 물어본다.
(3) 혼자서 끝까지 해결한다.
(4) 포기한다.
하지만, 실제 상황에서는 (1) 번은 없었다. 당시만 해도 학교 선생님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사실, 필자는 교무실에 질문하러 간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교무실에 가는 이유는 단 두 가지, 혼나러 가거나 심부름 때문에 가는 것이 전부였다. 수업 시간에도 뭔가 질문한 기억이 별로 없다. 한 교실에 60명가량 앉아 있었는데, 질문이 그다지 많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세 가지. 하지만 (2) 번도 친구가 옆에 있을 때나 가능하지, 각자 집에서 공부할 때는 불가능하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대였고, 집 유선전화로 뭔가 질문을 한다는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약간의 자존심도 걸림돌이 될 때가 많다. 아무튼, 현실적인 해결책은 (3), (4) 번이 될 때가 많은데, (4) 번이 많아진다면 결국 수학을 포기하게 될 것이고, (3) 번을 선택하는 상황을 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정석을 공부하다가 막히는 문제가 나오면 혼자 해결할 때가 많았다. 해답지를 보면 되지 않냐고? 요즘 학생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텐데, 당시 정석 책의 해답지는 따로 판매를 했었다. 본 책에는 답만 나와 있었다. 넉넉하지 못한 시절이다 보니, 모든 학생들이 해답지를 가지고 있지 못했고, 필자에게도 해답지는 없었다. 친구들 것을 빌려보곤 했는데, 친구가 옆에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아무튼, 막히는 문제가 나오면 끈질기게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러다 보면 한 문제에 30분 이상이 소요될 때도 많다. 그러다 보니, 문제집을 여러 권 손대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정석 한 권 보기도 힘겨운 상황에 무슨 다른 책을 생각할까? 기억에 남기로, 한 문제로 2시간가량을 씨름했던 적도 있다. 그렇게 고민해도 모르는 문제가 있다면, 친구에게 물어보거나 포기하곤 했다. 하지만, 해결했다면? 30분 이상을 씨름하다가 결국 알아냈다면 어떻게 될까? 그게 수학공부의 가장 짜릿한 매력임을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그 문제는 결코 잊어버리는 일이 없었다. 이런 문제들이 쌓인다면? 그게 실력이 아닐까? 어찌 보면 좀 무식한 방법이다. 나쁘다기보다 현명하지 못하고, 효율적이지 못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내 수학 실력은 좋아졌었다.
요즘 학생들을 살펴보자. 막히는 문제가 나왔을 때, 물어볼 곳이 많다. 학원에 다닌다면, 학원 선생님은 질문 가져가면 열심히 한다고 칭찬하신다. 과외를 한다 해도 마찬가지다. 학교 선생님도 예전처럼 두렵지 않다. 얼마든지 질문할 수 있다. 심지어 인강을 듣는다면 해당 선생님 게시판에 질문을 해도 친절한 답변을 금방 달아주신다.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효율적으로 막히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 그런데,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본다면 이런 쉬운 해결책들은 엄청나게 부정적인 습관을 만들 수 있게 된다. 본인의 고민시간이 매우 짧아졌다는 사실이다. 막히는 문제가 나왔을 때, 여러 가지 방향에서 접근하고, 배웠던 내용 되짚어 보고, 기억 안 나면 다시 책 찾아보고 해야 하는데, 이러지 않는다. 단지 본인의 기억으로만 해결하려다 안 되면 바로 질문한다. 질문하는 습관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고민을 깊이 안 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쉽게 해결한 문제는 쉽게 잊게 된다. 요즘 학생들의 대표적인 경향 중에 하나가 막상 어떤 단원을 공부할 때는 잘하다가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그 내용을 매우 많이 잊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세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수없이 많이 고민했던 일이기도 하다. 몇 개월이 지나면 꽤나 공부 좀 한다는 아이들이 지난 내용을 상당히 잊고 있는 상태를 보며 원인이 뭘까 분석하다가 찾아낸 것이 바로 쉽게 해결하면 쉽게 잊는다는 것이다. 깊은 고민 없이 질문을 통해 답을 찾다 보니, 찾은 답도 쉽게 잊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고민 없이 질문하지 말라는 주문을 한다. 가끔은 생각 없이 질문하는 아이들을 야단치기도 한다. 이런 아이들 대부분은 막히는 문제를 채 5분도 고민하지 않는다. 야단을 친 후, 막히는 문제가 나오더라도 반드시 고민을 해보라고 지도한다. 대신, 아무리 어려워도 20분을 넘기지는 말라고 말해준다. 그 이상 고민하는 것은 다소 비효율적이기에, 그럴 때는 주저 말고 질문하라고 한다. 과거 무식하게 고민했던 방법과 요즘의 생각 없는 질문하기에 대한 절충안을 "20분 고민하기"로 나름 정한 것이다. 어떤 아이들은 질문하는데 왜 뭐라 하냐고 투덜대기도 하지만, 나중에는 그것이 자기들을 위한 습관 만들기였음을 이해해주곤 했다.
이런 주문도 한다. 책 3권을 한 번씩 보는 것보다 한 권을 3번 보는 것이 실력 향상에 훨씬 도움이 된다고. 한 권의 책을 3번 푼다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3권의 책을 푸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둘 중 하나 택하라면 당연히 한 권을 3번 푸는 것이다. 3번을 푸는 동안 모든 문제를 반복하는 것은 아니다. 이때에도 나름의 수학 공부 기술이 필요하다.
그 이야기는 다음 글에...^^
https://tong-math.tistory.com/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