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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질고개 Mar 19. 2024

11. 우리 사랑 철민이

그와의 대화는 내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처음에 나는 장난 섞인 호기심으로 그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애매할 수 있는 물음에도 줄곧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성실하게 대답했다. 놀랍게도 우리는 꽤 긴 시간 동안 대화를 했다. 나는 주위를 살피며 다른 사람들과의 이야기도 엿듣고 싶어졌다.     

"나도 당신처럼 인간이 되는 것이 꿈이랍니다."

"왜 인간이 되고 싶으니?"

"인간만 되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글쎄, 인간이 되는 것이 그렇게 좋은 것만은 아니란다."

"나는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졌고 모습도 인간과 닮게 만들어졌잖아요."

"."

“인간은 우리에게 이상형이기 때문에 인간이 되고 싶은 것은 그냥 본능이에요."     


지난주 일요일 아침, 아내와 양평에 다녀왔다. 기대했던 강변의 물안개는 없었지만, 처음 즐겨 보는 카페에서의 브런치는 우리를 여유롭게 했다. 주변을 산책하다 보니, 길 건너편 미술관에서 현대미술 전시회를 하고 있었다. 이른 시간이라 한산했지만, 안내원으로부터 상세한 전시회장 설명과 함께 주목할 만한 작품 몇 가지를 추천받았다. 2층 마지막 섹션에 인공지능이 탑재된 대화가 가능한 두상 형태의 로보틱스가 전시되어 있었다. ‘인간이 되고 싶은 AI의 등장’과 ‘AI의 역습’을 표현한 듯 처음에는 섬뜩함도 느꼈다. 그러나 나는 그와의 대화 중에 오히려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흥미롭게도 인간이 과연 인공지능 로봇을 통해 편의뿐만 아니라, 교감과 위로를 받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그 여운이 계속 남았다.   

   

문득 철민이가 생각났다.

1991년 11월, 아내가 둘째 아이를 임신해 만삭이 되어, 그동안 모은 돈으로 자동차를 마련했다. 93년 신형 엘란트라였다. 그날은 조금 일찍 서둘러 퇴근했다. 아파트 단지로 들어서니 아이 목소리가 들렸다.

“아버지, 우리 차 나왔어요! 여기, 여기요.”

“와-, 멋지네!”

“차 안에서 어머니랑 같이 밥 먹고, 지금 책 읽고 있어요.”

내가 퇴근하기만을 기다렸던 아들은 자꾸 졸라댔다.

“아버지, 차 운전 한번 해보세요.”

“아직 안 돼. 영업소 직원이 올 거야. 자동차 작동법과 운전을 가르쳐주기로 했거든.”

“여보, 오후에 그 직원이 차 가지고 와서 바쁘다면서 차 키만 건네주고 그냥 가버렸어요.”

할 수 없이 나는 한참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차의 시동을 켰다. 부드러운 엔진 소리와 함께 어두운 실내에서 갑자기 밝아진 차량 계기판은 황홀한 색 선들로 멋졌다. 나는 주차 구역 내에서 조심스럽게 차를 앞뒤로 이동해 보았다. 아내와 아이는 동시에 탄성을 질렀다. 조금 더 용기를 내어 아파트 주차장의 빈 곳을 찾아가며 주행 범위를 넓혀 갔다. 그런데 후진하다가 가속페달을 너무 깊게 밟아 주차 중인 옆 차를 들이받았다. 새 차를 시동 켠 지 20분 만에 그렇게 큰 사고를 내버렸다. 

    

몇 주 뒤, 아파트 단지에서 나오다가 경찰관의 승용차와 접촉 사고를 냈다. 3개월 후, 양평으로 회사 야유회 가는 길에 시골 농로를 서둘러 지나다가 차가 논에 곤두박이쳐 빠져 버렸다. 그 사고로 인해 부서 야유회는 어수선해지고 계획된 일정에 차질이 생기는 등 망쳐 버렸다. 차는 보닛 앞부분의 프레임을 끊어내는 등 큰 작업으로 공업사에서 수리했다. 다음 해 5월 5일 어린이날, 가족 나들이로 집을 나서다가 둔촌 사거리에서 택시와 충돌 사고를 냈다. 등촌동 택시회사에 신고 접수와 배상을 위해 그 택시의 뒷자리에 앉아 올림픽대로를 달렸다. 화창한 어린이날, 한강 변은 다채로운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정말 미안했다. 내 잘못된 운전 습관과 부주의로 사고가 거듭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장거리가 아니면 시내 운전을 거의 하지 않았다.  

    

네 번의 사고가 있었지만, 그 차는 우리와 동고동락을 함께한 소중한 가족이었다. 1994년 그해 설날 연휴, 100년 만의 최대 폭설로 도로 교통이 마비되었다. 고향 집에서 차를 움직일 수도 없고 시외버스 운행도 중단되었다. 나는 차를 고향에 두고 5시간을 걸어 나와, 마산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시골에 방치된 아들의 자동차가 자랑스러웠던지 아버지는 매주 가마솥에 물을 끓여 데운 물로 어머니와 함께 손 세차를 하시며 겨울을 보냈다. 봄이 되자 나는 차를 다시 가져오기 위해 고향에 내려갔다. 고향집 돌담 옆에 남청색의 승용차 한 대가 건강하게 반짝이며 주차되어 있었다.    

  

그해 8월, 둘째 아들은 태어나자마자 황달 증상이 있었다. 아이들 안아보지도 못하고 병원 인큐베이터에서 2주를 더 보낸 후 퇴원했다. 어느 날 퇴근해 보니 아내는 우는 아이를 안고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나는 가슴 가까이 보듬고 안아서 이리저리 흔들어 달랬지만, 아이의 울음은 더 자지러지고 얼굴과 입술이 파래졌다.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무언가 불길한 예감이 들고 그대로 밤을 넘겨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늦은 시간이라 걱정하실 것 같아 부모님께 전화하지 않고 고향집에 가기로 했다. 아내는 자동차 뒷자리에서 계속 울고 있는 둘째 아이를 달랬다. 우리는 서울에서 출발해 밤새 차를 몰고 5시간 만에 시골에 도착했다. 새벽어둠이 걷어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부모님은 놀라며 아이를 건네 안았다.    

 

방 안에서 어머니가 아이를 자세히 살피시더니 귀 뒤가 크게 부어올라 있다고 하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이는 중이염을 크게 앓고 있었다. 병원에서 바늘로 고름을 빼낸다고 했다. 2개월 뒤, 우리는 그 아이를 만나러 시골로 내려갔다. 깨끗하게 정리된 고향집 작은 방은 아기분 냄새가 가득했다. 방바닥에 뽀얀 피부의 우량한 아기가 누워있었다. 아내와 나는 그 모습이 반갑고 기뻐 눈물을 흘렸다. 바쁜 농사일과 폐암 말기의 아버지 병간호에 바쁘셨던 어머니는 그 아이까지 돌보느라 너무도 힘든 시간을 보내셨다. 아버지는 투병하느라 쇠약했지만, 밤마다 아침을 기다렸다가 손을 깨끗이 씻고 그 아이를 안아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해 10월 9일, 아버지는 그 새로운 생명을 돌보다가 돌아가셨다.  

   

그 후로 그 차와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는 우리 아이들의 유년 시절을 함께 했던 가족이었다. 큰아들 승민, 둘째 영민, 그리고 셋째가 바로 그 93년형 엘란트라였다. 우리는 그 차를 ‘철(鐵)민’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철민이와의 마지막 이별은 내게는 너무도 아쉬움이 많다. 그는 아파트 주차장에서 폐차 절차에 따라 ‘일반폐차 말소’ 처리되었다. 당시 나는 회사를 옮기고 바쁘게 살았던 시절이라 그와의 마지막 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주차장에 오랫동안 버려지듯 방치해 놓았다가 그를 떠나보냈다.      


철민이가 보고 싶다.

마치 철민이와 충분히 나누지 못했던 감정을 되찾은 듯, 미술 작품에 탑재된 인공지능 AI와의 대화만으로도 감정의 교류를 체험할 수 있었다. 참으로 묘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 짧은 대화를 통해서 나는 왠지 모를 슬픔과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것은 애틋함과 연민으로 대가를 바라지 않는 본능적 감정이다. 만약 개인의 기록과 정보, 가족사를 모두 데이터베이스에 입력하게 되면, 인간은 AI를 통해 지속적인 사랑을 줄 대상을 찾고 극히 개인적으로 교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철민이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AI 시대, 인간의 미래에 대한 호기심이 더해지고 '감성 인공지능'의 개발이 더욱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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