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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질고개 Mar 12. 2024

10. 화양연화(花樣年華) 1985

1985년 11월 14일 오후 4시 32분, 그녀를 처음 만났다.

대학 1학년 가을이었다. 커플로 초대받은 친구를 따라 교대 가을 축제에 갔다. 그 친구에게 생떼를 써서 우리 여덟 명의 남자는 운동장에 둘러앉아 즉석에서 그룹 미팅을 할 수 있었다. 축제는 여느 대학과는 다르게 특별 이벤트로 진행되었고, 그중 운동장에서의 캠프파이어가 멋있었다. 당시 미팅은 남자 소지품을 모아서 건네면 여자들이 하나씩 골라 파트너를 선택하는 방식이었다. 시계나 만년필 등 특별한 것이 없었던 나는 망설이다가 피우던 담배 성냥갑을 건넸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선배와 친구에게 빌려 입고 다니던 결핍의 시절이었다.


그녀는 부족한 인원을 채우는 깍두기로 뒤늦게 그룹 미팅에 합류했다. 소지품 상자에 남겨진 그 무성의한 성냥갑이 우리의 운명적 만남을 매개했다. 성냥개비의 패러독스, 서울 여자를 드디어 만났다. 얼굴이 예쁘고 작은 몸에서 들려오는 매력적인 서울 말씨는 시골 청년을 순식간에 순수하고 선하게 만들었다.

“이번 방학 때 시골 내려가면 서울 여자 사귄다고 친구 녀석들에게 자랑 좀 해야겠다.”

여전히 그녀의 무표정한 얼굴에서 실망과 무관심이 느껴졌다. 그러나 혐오는 없었다. 그녀의 관심을 끌 만한 이야기와 유치한 농담으로 미팅 분위기를 주도하려 마구 떠들어댔다. 나만의 그 대단했던 첫 만남은 그렇게 끝나버렸다.


그녀의 관심을 끌 만한 뭔가를 찾아야 했다. 진정성이다. 첫 만남이 내게 얼마나 소중한지를 정확히 기억하여 그녀에게 특별한 감정을 전했다. 함께 했던 친구, 차갑던 바람과 기온, 그리고 캠프파이어 등 스냅숏과 같이 기록했다. 그날의 세세한 기억, 지나친 관심과 친구 커플의 공조 덕택에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매번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미리 준비하고 진심으로 최선을 다했다.


우리는 만날 때마다 참 많이도 걸었다. 아주머니에게 빌린 만원으로 종로에서 동대문, 제기동까지 오후 내내 걸었다. 길가에 앉을 곳 찾아 잠시 머물고, 분식점에서 그녀가 좋아하는 쫄면을 먹었다. 중계동 10번 버스 타기가 편한 제기동역 앞, 미도파 백화점 계단에 앉아 한참을 보냈다. 가끔 늦은 시간이 되면 중계동 버스 정류장으로부터 가로등이 부족한 밤길에 그녀를 바래다주고자 버스를 함께 탔다. 그곳에서 다시 시내로 돌아오는 막차가 떠난 상황이 되면, 나는 중계본동에서 보문동까지 약 20킬로의 심야 밤거리를 혼자 걸었다. 

어느 날은 폭우가 억수같이 내리고 추워져 도저히 더 걸을 수가 없었다.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타고, 기사님께 용서를 구하고 책가방을 맡겼다. 다음날 내게 택시비를 빌려주고 수유동 화계사 부근 택시회사까지 함께 갔던 친구가 어렴풋이 생각난다. 오랫동안 잠들었던 기억을 깨운다.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이미 가난을 들켜버렸지만, 차츰 그녀는 내게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나는 생활비를 줄이고자 학교 앞 구두닦이 부부의 산꼭대기 슬래브집에 방 한 칸을 얻어 살았다. 아마도 그녀의 사랑은 그렇게 막연한 연민 때문에 비롯된 것 같다. 졸업 후 이듬해 25살 동갑내기 우리는 결혼했다. 같은 과 친구 모두의 축하 메시지가 담긴 녹음테이프를 들으며 친구 형의 기아 프라이드를 탔다. 제주행 김포공항으로 향하던 신혼여행길, 올림픽대로의 푸른 가로수와 한강의 물빛이 생각난다.

결혼은 내 모든 것을 변화시켰다. 고향을 떠나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혼자서 보낸 도시의 방황과 외로움, 나를 짓누르는 불안과 우울의 시간이 끝났다. 계획하며 준비하는 습관이 생기고 삶의 열정과 의지가 굳세졌다. 항상 혼자였던 내 인생길에 조용히 다가와 나란히 함께 걷는 동행인이 생겼다. 중화동 전지하, 상계동 13평 아파트 전세로 시작하여 우리는 열심히 살았다. 크고 작은 시련은 많았지만, 아내의 헌신으로 아이들 잘 키우고 지금의 안정을 이룰 수 있었다.


지난 주말에 결혼 후 둘만의 제주도 여행을 처음 다녀왔다. 33년 전 신혼여행에서 숙박했던 그 모텔은 찾을 수 없었다. 그 대신 ‘산굼부리’, 신혼여행 첫 사진 장소에서 한나절을 보냈다. 정확히 인생 33년 한 바퀴를 돌고 원점으로 온 것 같다. 참 인생 빠르다. 

일장춘몽(一場春夢)이란다. 힘들었지만 많은 일이 있었다. 저장할 수 없는 시간은 관리되지 않고 흘러간다. 그렇게 속절없이 흘러간 시간이 아쉽다. 이제부터는 존재하지도 않는 이 시간에 모든 걸 맡겨서는 안 되겠다.

 

처음 만난 기념일


2011년 11월, 해마다 11월 14일이면 아내와 나는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을 기념하고 있다. 오늘은 대학로에서 아내와 시간을 맞추어 청춘 로맨스 뮤지컬 ‘여우비’를 관람했다. 소극장에서만 느끼는 감동인지 4명의 배우가 온 힘을 다해 공연하는 그 열정이 가슴 뭉클했다. 특히 외화 번역 아르바이트를 하며 소설가의 꿈을 키우고 있는 발랄 처녀 ‘나광년’의 직설적인 연기가 압권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특별 이벤트로 한 쌍의 커플을 무대로 초대하는 생일 파티 코너가 있었다. 우리는 공연장 밖으로 먼저 나가려다가 호기심으로 그들을 봤다. 볼품없는 차림새의 한 남자가 무대에 올라와 편지지를 손에 쥐고 덜덜 떨고 있었다. 여자 친구 앞에서 장문의 사랑 편지를 읽어가는 모습이 스포트라이트에 극명하게 비쳤다. 

“지금까지 신림동 고시원에 들어가 허리 한 번 제대로 펴보지 못하고 공부했다. 계속해서 사법고시 1차 시험에 떨어지기만 했다. 최근에 신경성 위장염으로 인한 급성 통증으로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 중에 그녀를 만났다. 지금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지만 그래도 여자 친구가 곁에 있어 행복하다.”


그들의 이야기와 순수한 남자의 편지는 불확실한 지금 상황에서도 진실한 사랑이 느껴졌다. 그 연인들을 위한 짧은 뒤풀이 이벤트는 뮤지컬만큼이나 감동적이었다. 나는 아내와 함께 무대 앞으로 걸어가서 그들과 인사를 나눴다. 

“오늘은 우리가 만난 지 26년이 되는 기념일입니다. 서로 연애할 당시는 산꼭대기 좁은 벽돌 방에서 서로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우리는 25살 젊은 나이에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함께 여기까지 왔습니다. 두 사람도 끝까지 용기 잃지 마세요. 두 분이 행복하길 바랍니다.”

나는 그들의 두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인생 선배로서 뭔가 그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다. 

그들과 함께 지금도 부족하고 어려운 환경에서 서로 사랑하고 꿈을 꾸는 청춘들의 미래가 행복하기를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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