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늘한 겨울철, 내 피부는 끔찍해진다. 어릴 적 피부과 의사는 아토피 때문에 정상인보다 피부 노화가 빨리 진행될 수 있다고 내게 경고했다. 그토록 섬뜩한 말을 들었던 탓에 이제껏 나는 피부 관리에 상당히 신경을 써왔다. 민감성 피부는 까칠한 소나무 껍질처럼 조금만 소홀히 해도 쉽게 건조해졌다. 그래서 바디로션은 사시사철 피부 보습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아이템이다. 겨울바람이 세차게 불기 시작하면 성난 피부가 자극받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가 더더욱 필요하다. 소슬한 나뭇가지가 겨울바람에 흔들릴 땐, 내게도 나뭇가지처럼 양팔이 길게 붙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몸 뒤에 위치한 등은 손이 거의 닿지 않는 부위지만, 샤워타월로 비누칠을 할 수 있고, 샤워기로 비눗물을 헹구는 것도 가능하다. 문제는샤워를 끝낸직후에 발생한다. 바디로션을 듬뿍 발라줘야 하는 날갯죽지는 난공불락이어서,바디로션 바르기가 숫제묘기에 가깝다.팔을 뒤로 뻗어위로 올리거나, 어깨너머손으로 등을 긁는 동작은 관절이 빠질 것같이 아프다. 물론 이해하지 못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경험한 사람은 안다. 고로,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사각지대가 생기는 걸 막기 위해 아이들에게 SOS를 타전하여 위급한 상황을 모면한다.
그렇게 누구에게나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란 게 있다. 그래서 인간은 다른 사람과 덩굴처럼 엮어져 산다. 홀로 감당할 수 있는 일도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면 훨씬수월해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많은 일을 혼자가 아닌 다른 누군가와 기꺼이 함께 하려고 한다. 심지어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거나,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이 사소한 경우에도 항상 누군가옆에 있어 주길 바란다. 구체적으로 어떠한 도움을 받지 않더라도 마찬가지다. 그저 내 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의지가 된다. 그것은 아마도 심리적인 영향이 클 테다.
한데, 우리는 각자 혼자서 감당해야만 하는 일도 있다. 그것은 캄캄한 물속에서 허우적대며 숨 쉬려는 것과 비슷하다. 가뭇해서 잘 보이지 않는 건 무섭고 무겁다. 그것은 자신에게 가해지는 무언의 압력이고부담이다. 누구도 대신해서 자신의 무게를 덜어줄 수는 없다. 마치 뱃속에 들어있는 달걀과 같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구도 섣불리 도와줄 수 없고, 보이지 않는 걸 아는 척할 수도 없다. 달걀이 세상 밖으로 나올 때까지는 오롯이 자기 스스로 간직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것은 처음부터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내 속에 있는 고통스러운 달걀에 대해 과연 나는 제대로 알고 있었을까. 혼자서 힘겹지 않았다면 언제부터 그런 게 생겼는지도 모른 채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고통스럽다. 만약 그 존재를 아프기 전에 먼저 알았더라면 지금 상황은 나아졌을까, 그렇지 않다. 분명 나는 더 지쳐있었을 테고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의 무게 때문에 항상 참담한 기분에 빠졌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 얇은 껍질이 깨질까 봐 언제나 긴장된 상태로 불안했을 것이다. 도대체, 왜, 내가 이런 삶의 고통스러운 짐을 떠안고 살아야 하는지 따져 물었을 것이다. 그리고 정말 큰일이 난 것처럼 굴었을 것이다.
그러나 고통은 다른 쪽에서 보면 새로운 생명을 잉태한다. 그것이 어떤 생명으로 이어질지 모르지만, 무한한 세포분열을 할 수도 있다. 염색체 증식이 일단 시작되었다면 똑같은염기서열이라도, 누군가 설계한 것처럼 다양한 조직과 기능이 발달한다. 그것의 궁극적인 목적은 나와 같은방식으로 감정과 생각을 공유하는 존재일 테다. 그러한 존재는 자판기로 컨트롤 C와 V를 누르는 것보다 훨씬 더복잡한 과정을 거쳐 발생한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작고 동그란 모양의 껍질을 지니고 있다.
그렇게 삶의 무게를 견디며 산다는 건 고통 그 자체다. 하지만 그런 고통을 참고서야 삶을 지탱할 수 있고 새로운 삶을 탄생시킨다. 어쩌면 삶이란 태어나면서부터 아픈 것일 테다.그것은 참으로 인생이 쉽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그러하기에 인간은 누구나 탯줄을 자를 때부터 울기시작하는지 모른다. 기쁨과 슬픔은 서로 다른 차원을 가진 게 아니고, 삶의 서로 다른 양면일 것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삶의 모순에 관한 신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그것은 당신의 삶만 힘들었던 게 아니라고 말한다. 살아가면서 나 자신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게 있고, 때로는 혼자서 감당해야한다는 걸 말이다.
누구나 고통스러운 달걀을 품고 산다. 그건 도대체 어떻게 할 수 없다. 무거운 알은 어차피 내 삶이 짊어져야 할 몫이다. 그러니 더 이상 눈을 감고 피하지 말자. 우리는 무덤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그 무게를 버티면서 살것이다. 그것이 우리 현실을 포기하게 만들지 않도록, 오히려 그것을 통해 삶의 희망을 찾을 수 있도록 품고 사는 것이다. 그렇게 생의 끝자락까지 내 속의 달걀을 포기하지 않고,불안감 속에서도 자신만의 방향을 찾아내고, 그 무엇도 당신을 더 이상 떨지 못하도록,혼자서도 당당하게 감당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