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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키 Sep 07. 2024

여덟.

오랜만에 할머니가 있는 집에서 하룻밤을 보낸 다운은 출근을 하기 전에  할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나가기 위해 화숙의 방문을 열었다. 화숙은 곤히 잠들어 있는데 다운은 깨울까 그냥 갈까 잠깐 고민을 하다 후자를 선택하고 조용히 문을 닫는다.


그리고 여행을 떠난 아빠를 대신해서  할머니를 돌봐주러 온 막내 고모에게도 인사를 하러 작은방의 문을 열었는데, 그녀는 통화 중이었다.


오늘 엄마랑 은행을 가야 해서요.
엄마 센터에 못 간다고 전화드렸어요.


다운의 막내 고모가 통화를 마치고 조카에게 인사를 하러 거실로 나오자, 다운은 재킷을 입고 있었다.


할머니가 은행 가서 뭐 할거 있대?


다운의 물음에 막내 고모는 거실의 소파에 앉아 TV리모컨의 전원을 누르며,


요양원 들어가기 전에 통장 정리를 해 놔야지, 그러지 않으면 나중에 골치 아파진다 얘


재킷을 입고 가방을 챙기고 있는 다운과 눈이 마주치자 중요한 얘기는 지금부터라는 식의 자신 만만한 눈빛으로 말을 덧붙이다.


여태 할머니 통장 관리는 내가 해왔으니까!


화숙의 막내딸 태은이가 지어미의 통장을 관리한답시고 가져간 돈이 몇 천이다.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형제들이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는 것은 가정을 이루지 못한 태은을 측은히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근데 할머니 요양원 가?
요양원 가기엔 이른 거 아니야?


 말에 막내고모인 태은은 다운의 얼굴로 다급히 고개를 돌리더니, 화숙의 방을 향해 손가락 표시를 하며, 할머니가 들으면 안 된다는 듯 검지손가락을 세워 자신의 입으로 가져댄다.


그런 막내 고모를 보고 다운은 할머니가 본인의 집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다고 줄곧 말해 왔던 것을 잊지 말라고 말을 하려는 찰나에 스마트폰의 벨소리가 울렸다.


발신자 번호를 보고 얼굴색이 밝아지며 전화를 받는 다운의 모습은 해맑은 열 살 어린이와 같다.


엄마아아!


해맑아진 다운의 모습을 보고 태은은 어디 숨을 쥐구멍이라도 찾듯이 바닥을 한번 두리번거리더니 화숙의 아침을 준비한다는 핑계로 주방으로 향한다.








이그! 그 집에 우환 덩어리가 들어왔네!
그 집 아들 순적하게 살게 하고 싶으면 그 우환덩어리 내보내!


화숙과 그녀의 막내딸 태은, 금쪽같은 늦둥이 태산은 서울에서 대구의 팔공산까지 올라와 우환덩어리를 내보내라는 점쟁이 앞에 온 맘 다해 앉아 그 우환덩어리가 누구인가를 물어보고 있다.


누구긴 누구야!
쯧쯧쯧.
우리 신령님을 노하게 한 그 집안의 우환덩어리!
교회 다니는 애 내보내!


화숙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신의 집안에 교회 다니는 사람이 없는데 누굴 말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했고, 태은은 둘째 언니인 태금그녀의 아들이 다니는 교회에 최근에 등록을 했다는 이야기를 꺼내자 화숙은 [딸은 남의 집 사람이다]라고 말을 하고 자신의 딸은 제외시켰다.


다운 애미 친정네가 기독교 집안이긴 한데...
다운 애미가 처녀 때까지 지 부모님 따라서 일요일마다 교회를 다녔대.
나랑 결혼하고 나서 교회 안 나갔지만 원래 다운 애미 교회 다니는 사람이야


화숙과 태은은 자기 부인을 그 [교회 다니는 애]로 만들고 있는 태산의 행동에 놀라워하며 인생 잘 풀리게 해주는 팁(Tip)을 알려주는 점쟁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점쟁이가 써준 부적을 소중히 간직하고 팔공산을 내려온 화숙과 두 남매는 버스터미널 대합실 안의 대형 텔레비전에 나오는 시드니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하키 선수들이 은메달을 획득했다는 뉴스를 보며 서울로 올라가는 버스의 출발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올림픽에서 하키 선수들의 은메달 획득이 기쁜 건지, 교회 다니는 애를 처리할 방법이 생겨서 기쁜 건지 알 수 없는 기분 좋음에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태산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친모와 통화 중인 조카 다운의 얼굴을 본 태은은 20여 년 전 그 터미널에서 본 막둥이 태산의 미소 띤 얼굴이 떠 올랐다.






태은은 미리 준비해 둔 필요 서류들을 구비하고 자신의 엄마인 화숙과 함께 은행으로 가서 예금주가 치매로 인해 통장의 비밀번호를 기억할 수 없음을 확인시킨 후 화숙의 통장에 있은 잔고를 모두 자신의 계좌로 옮기는데 성공을 하였다.


시간을 보니 11시가 조금 넘었고, 자신의 엄마를 센터로 보내면 점심 식사는 해결할 수 있겠다 싶어 화숙이 다니는 데이케어 센터로 전화를 한다.


오늘 은행 업무가 생각보다 일찍 끝나서요.
엄마가 센터에 가고 싶다고 해서 지금 가려고요.


그렇게 태은은 화숙을 데리고 센터로 왔고, 요양 보호사가 화숙에게 걸음 보조기를 펴 주며 사무적인 미소로 인사를 건넨다.


어르신 오셨어요.
이제 점심 먹으려고 준비 중이었는데 시간 잘 맞춰 오셨네. 어르신 자리로 가실게요.


화숙을 들여보낸 태은은 센터 사무실로 가서 센터장에게 상담을 요청하였고, 센터장은 기꺼이 요청을 받아들였다.


센터장님.
괜찮은 요양원 있음 우리 엄마 소개 좀 시켜 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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