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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키 Aug 18. 2024

일곱.

어르신, 어르신? 어르신 일어나세요


오후 낮잠 시간이 끝났는데도 부자 어르신은 여전히 잠에서 깨지 않고 있다.

선옥과 팀장인 미경이 부자 어르신의 팔을 흔들어 깨어도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미경은 혹시나 싶어 누워있는 부자어르신의 코에 자신의 귀를 대어 본다. 다행히 숨은 잘 쉬고 있기에 선옥에게 10분 후에 다시 깨워 보자 하고 둘은 생활실로 향했다.


미경은 사소한 일이라도 센터장에게 보고 해야 함을 잊지 않고 사무실 문을 열고 부자 어르신이 낮잠 시간이 끝났음에도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고 하였다.

사무실에는 센터장은 자리를 비운 상태이고, 사회복지사 아로와, 사무원 세리, 간호조무사 선자가 각자의 업무에 집중하며 동시에 "네"라고 답을 하였다.


어르신? 일어나 보세요. 어르신 어르신


10분 후가 지나 미경이 다시 부자 어르신이 잠들어 있는 곳으로 가서 깨워 보았으나 여전히 일어나지 않는다.

미경은 서서히 심각한 상황을 맞닥뜨리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몰려왔다.

때마침, 주변에 사무원 세리가 눈에 들어온 미경은 사무원을 불러본다.

사무원이 "아직도 안 일어나셨어요?"라고 말을 하며 부자 어르신 곁으로 다가갔다.

다시 한번 미경이 팔을 흔들고, 배를 쓰다듬어 보아도 움직임이 없자, 사무원이 한 번만 더 깨워 보고 안 일어나면 119에 신고해야겠다는 심산으로 부자 어르신의 양쪽 어깨를 잡고 흔들며 깨운다.


할머니! 일어나세요! 할머니!


그러자 부자 어르신은 "흐흐" 신음소리를 내기 시작 하자, 미경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금 부자 어르신의 팔과 양쪽 다리를 주무르며 일어나라고 달래듯 말하였다.


부자 어르신은 얼굴을 찌푸리며 감고 있던 눈을 살짝 뜨기 시작하더니, 한참을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고 누운 자리에서 일어나 앉으며 5살 아이가 낮잠을 자고 일어나 잠투정을 하듯이 사무원 세리의 팔을 치며 울부짖기 시작하였다.


왜 깨웠어어! 나 왜 깨웠어어!


세리에게 온갖 짜증을 내며 우는 부자 어르신을 미경이 달래기 시작한다.


아이고, 어르신 좋은 꿈 꾸고 있었구나. 꿈에서 깨기 싫었어요?
그런데 어르신이 너무 안 일어나서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데요.
어르신 물 드실까? 물 드시고, 우리 색칠하러 가요


그렇게 미경이 달래 주어도 어르신의 투정은 끝나지 않았고, 잠깐의 투정의 시간을 허용하고, 미경과 세리는 그 모습을 그저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나 저 기분 알 것 같아요


세리가 미경에게 진심에서 우러난 목소리를 내자 미경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한다.


근데 저 어르신은 꿈에서 현실로 돌아왔다는 것을 인지는 하고 저러는 걸까?


미경의 말을 듣고 세리는 저렇게 잠에서 깨 현실로 돌아온 걸 괴로워하는 거 보면 지금 부자 어르신은 잠시 [현실 인지 중]인 것 같다고 말을 하였다.


현실의 세계로 다시 불러낸 세리를 원망하고 있는 부자 어르신의 투정을 보며 세리의 마음에는 뭉클함이 느껴졌다. '그 당시의 내 마음도 저러했으리라'. '그들을 봐야 한다는 것 만으로 저러했으리라'.








너무 마른 사람들한테는 비린내가 나. 그런 거 같지 않니?


4년 전, 모 중소기업 경리부에 근무하던 시절, 깡 마른 세리가 앉아 있는 사무실에서 실장 박 씨가 업무시간에 다른 직원들과 잡담을 하다가 내뱉은 말이었다.


어우 실장님, 너무 신박하잖아. 비린내라니요


사원 김 씨가 웃으며 맞장구를 쳐주자, 박 씨 실장이 계속 말을 이어 간다.


아니 그렇지 않니? 너무 마른 애들한테는 비린내가 나.
정말 비릿한 냄새가 난다니까







부자 어르신의 투정 시간이 끝나자, 세리의 회상도 끝이 났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일어나 신발을 신고, 뒷짐을 지고 생활실로 가는 어르신을 선옥이 붙잡고 기저귀 체크를 위해 화장실로 데려간다.


투정을 부리다가 힘조절을 못했는지, 점심을 많이 드셔서 그런지, 강렬한 냄새가 공간을 채웠다.

어르신은 강한 똥냄새의 여운을 남기고 가셨다.

세리는 코로 숨을 안 쉰 채, 창문을 하나씩 열기 시작하였다.








며늘아 나 좀 살려줘라. 며늘아 나 좀 살려 줘라


오늘 결석 하겠다던 화숙 어르신은 점심 시간에 맞추어 센터로 입소 하였고, 낮잠도 안 자고 걸음 보조기를 끌고 다니면서 며느리만 불러대고 있다.


소망반 담임인 미경은 자신이 팀장이라는 직책을 맡아서 그런 건지 케어하기 힘든 어르신들을 자신의 반에 모아 놓은게 아닌가 의구심이 들때가 많다.


화숙 어르신, 부자 어르신, 봉자 어르신, 복만 어르신...

보통 4등급에서 3등급까지 케어하기 쉽지 않은 어르신들이 모여 있는 소망반이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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