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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림 Mar 03. 2024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관절

흥과 고통이 공존하는 줌바 클래스

 한국에서 평생을 마른 몸으로 살아왔던 내가 교환학생에 온 뒤로는 인생 최대 몸무게를 찍기 직전이었다. 매일 친구들과 야식과 음주가무를 즐긴 탓이었다. 그맘때 즈음 난생처음 헬스를 시작했다. 일주일에 6번씩 헬스장에 나간 지도 벌써 3개월째, 반복적인 러닝머신과 근력 운동은 슬슬 지루해져갔다.


 그러다 스페인 친구들에게 우연히 '줌바 댄스'에 대해 듣게 되었다. 라티노 음악에 따라 춤을 추는 댄스스포츠로 유산소 효과가 제대로라고 했다. 내가 다니는 헬스장에서도 마침 줌바 클래스가 열리고 있었다. 댄스 스포츠는 해본 적 없었지만 친구들의 권유에 한 번 해보기로 했다. 이럴 때 해보는 거지 뭐.


 수업에는 이미 강의를 추천해 준 친구들이 많이 와있었다. 클럽에서 자주 들어 귀에 익은 라틴 계의 리듬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강사 선생님은 푸근한 인상과 상반되는 강렬한 눈빛을 가진 분이었다. 


 순간 파노라마처럼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어렸을 때 아빠가 보여준 유치원 학예회 영상 속 나는 새빨간 색의 털 장식을 두르며 탱고를 추고 있었다. 강렬한 리듬에 맞춰 화려한 몸짓을 뽐내던 5살 남짓의 아이는 무척이나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허나 지금은 어떠한가. 낡은 테이프 속 무대를 씹어먹던 그 소녀는 온데간데없었다. 워밍 업을 지나 격렬한 하이라이트 동작에 도달할 때까지도 내 몸은 나름대로 열심히 삐그덕 대고 있었다. 그러나 근 15년간 춤과 멀어져 있던 내 몸은 뻣뻣하다 못해 뻑뻑했다. 선생님의 현란한 몸짓과는 달리 거울에 비친 내 몸은 어딘가 고장 난 관절인형과도 같았다. 밝게 웃고 계신 선생님과 눈이 마주칠 때면 어딘가 죄송스러웠다. 도무지 수를 못 쓰는 내 몸뚱이보다 쉴 새 없이 둠칫대는 라틴 음악이 더 열일 중이었다.

 

 다행인 건 친구들의 상태 또한 나와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였다는 것이다. 몸으로 이해를 못 하는 것은 당연하거니와, 머리로도 이해하지 못하는 동작이 나올 때면 하나같이 머릿속에 물음표가 난발해 보였다. 혼란스러운 눈빛들을 마주할 때면 나만 그런 건 아니구나라는 생각에 동질감을 느꼈다.


 관절이란 게 존재하는지 의심되는 선생님의 엄청난 바디 컨트롤에 정신이 혼미해질 때쯤, 폭풍과도 같았던 첫 번째 클래스가 끝이 났다. 듣던 대로 유산소 효과는 제대로였다. 한참을 삐그덕 대던 나조차도 이마에서 땀방울이 우수수 떨어지고 있었다.




 연습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게 사실인지 그래도 두세 번 해봤다고 처음보다 꽤나 수월하게 동작들을 해낼 수 있었다. 늘 첫 줄을 사수하는 고인물 회원들만큼은 아니었지만 강사 선생님의 동작을 따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겐 만족스러운 성과였다.


 줌바 클래스를 시작한 지 다섯 손가락이 넘어갔을 때에는 선생님의 다음 동작을 예측할 수 있는 지경까지 다다랐다. 골반과 엉덩이를 적극 활용하는 탓에 자칫 우스꽝스럽게도 보이는 동작들에 대한 거리낌도 거의 없어지고 있었다. 다이어트가 시급했던 내게 체면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 몸의 가능한 많은 근육을 움직여 최대한의 땀을 빼내는 것이었다.


 줌바 클래스를 시작하며 춤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 댄스스포츠에 대한 고정관념도 사라졌다. 무엇보다 즐거웠다. 익숙하지 않았던 움직임이 익숙해지고 부담스러웠던 동작들은 어느새 재미있어졌다. 남의 눈치를 보며 소극적으로 동작하는 일도 없어졌다.


 새로운 도전은 늘 자신감을 준다. 그것이 비단 댄스스포츠와같이 사소한 일에 대한 도전이라도 말이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탱고으 소울은 여전히 내 안에 잔재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오늘도 신나게 줌바 클래스를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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