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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림 Feb 18. 2024

한국인의 함정

독일에서 는 것은 외국어가 아니라 요리실력이었다.

 내가 갔던 교환지는 한국인이 많은 곳이었다. 수백 명의 교환학생 중 한국인만 200명이 넘었고, 오리엔테디션이나 애프터파티 등의 학교 행사에 가면 여기가 한국인지 외국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100명이 넘는 인원들이 작은 홀에 모인 그날은 교환학생들을 위한 오리엔테이션 날이었다. 파티란 이름이 무색하게도 행사에서 우리가 하는 일은 다분히 단순했다. 새로운 외국인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안녕, 이름이 뭐야? 어디서 왔어? 어디에 살아?"를 수십 번 반복하는 일이었다. 조를 짜 게임을 하며 전우애와 애교심을 키우는 한국의 전형적인 오티와는 달랐다. 이곳에서는 3유로짜리 맥주 하나를 보충제로 수십 번의 인사말과 리액션이 오고 갈 뿐이었다.


 다들 무슨 할 말이 그렇게도 많은지, 지쳐가는 기색 하나 없는 외국인 친구들을 보니 정말로 맥주가 이 친구들의 몬스터 음료는 아닌 지 의문스러웠다. 1시간쯤 지났을까, 말은 점점 꼬이고 다리도 슬슬 아파왔다. 곧장 파티장에 들어올 때 보았던 테이블과 의자를 떠올렸다. 아마 나 같은 사람을 위해 만들어 둔 거겠지.


 앉을 곳이 필요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테이블 앞 의자들에는 이미 무한 자기소개 토킹에 지칠 대로 지친 한국인들이 하나같이 텅 빈 눈으로 널려있었다. 그 모습은 흡사 영화 속 불 꺼진 뒤의 좀비들과도 같았다.


 그 공간에 들어가자 신기하게도 눈빛만으로 그들의 생각을 느낄 수 있었다. 누구는 시끄러운 음악소리를 언짢아했고, 누구는 처음 맛보는 독일 맥주에 생각보다 실망했으며, 누구는 영어로 대화하는 것에 심히 지쳐있었다.


 낯선 환경 속 알 수 없는 동질감을 느낀 이들은 자연스레 물꼬를 트기 마련이다. 처음 본 ‘한국인’ 사람과 공감대를 형성하기에 학연, 지연만큼 좋은 건 없었고, 그렇게 만난 사람들만 수십 명에 달았다. 학교를 다닐 때보다도 모교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난 하루였다.






 술도 좋아하고, 사람도 좋아했던 나는 빠르게 몇몇 사람들과 친해졌다. 학교에서 지속적으로 오티와 행사를 열어준 덕에 오며 가며 얼굴을 튼 사람들도 점점 많아졌다. 해외 생활에 대한 기대감으로 마음이 붕 떠있는 교환학생들에게 친목은 식은 죽 먹기보다도 쉬운 일이다. 아니 그냥 당연한 수순이었다. 더욱이 내가 갔던 교환지는 아주 작은 동네였다. 마을을 걷다가도 사람들을 마주치는 일이 빈번했다. 놀고 싶으면 30분 만에 만날 수 있는 사람이 못해도 10명은 되는 도시였다.


 그러니 어땠겠는가, 우리는 매일 만났다. 말 그대로 정말 매일. 그리고 매일 놀았다. 놀 것도 딱히 없어 만나면 한식을 해 먹기 일쑤였지만. 이건 좀 다른 얘긴데, 한국인들끼리 밥을 해 먹으면 외국인 친구와 놀 때와는  느낌이 아주 다르다.


 본인이 먹을 것을 가져오거나, 각자 알아서 먹을 만큼 덜어먹는 서양권 문화와는 달리, 한국은 '정'으로써 모든 것을 함께 하는 민족이었다. 요리도 같이 하고, 밥도 같은 대야에 먹고, 무엇보다 절대 남기는 일이 없었다. 김치찌개 한솥을 끓여도, 스파게티 한 대접을 만들어도, 김밥 20줄을 만들어도, 모두 먹었다. 술은 또 얼마나 마셔대는가. 한국에선 쉽게 구하기 어려운 와인, 위스키, 보드카에 더해 독일 맥주까지. 술 좋아하는 한국인들답게 매일이 파티고 부어라 마셔라였다. 덕분에 교환학생의 한 학기를 마친 뒤, 내 몸무게는 인생 최대 몸무게를 찍었다.


 놀 때는 좋았다. 매일같이 만나며 맛있는 밥을 해 먹으니 한국음식이 그리울 일도 없었다. 오히려 한국에 있을 때보다 더 잘 챙겨 먹었다. 우스갯소리로 독일에 와서 가장 많이 는 것은 외국어가 아니라 요리 실력이라고 할 정도였다. 놀기도 많이 놀았다. 그때 사귄 친구들과 여행도 가고, 피크닉도 하고, 수영장도 가면서 우리의 사이는 더욱 돈독해져 갔다.


행복했냐고?

행복했지.

예상치 못한 한국인의 함정을 느끼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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