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도 먼 역지사지의 길
독일은 대체로 흐린 날들이 많다. 우기 때가 되면 한 달에 해를 보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다. 간혹 햇살을 내려주는 커튼 덕에 기분 좋게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게는 서늘한 회색빛 공기를 처방받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독일에서 해를 못 보는 탓에 몇 가지 루틴을 시작했다. 관심도 없던 영양제를 챙겨 먹는 것 (특히 비타민 D가 중요하다), 그리고 눈 뜨자마자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스트레칭을 하는 것. 스피커에서 나오는 경쾌한 음정들과 함께라면 비가 오더라도, 하늘이 우중충하더라도 기분만은 상쾌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분 좋은 아침을 위한 노력에도 변수는 존재했다. 예를 들면 겨울의 끝자락에 나무를 베는 전기톱 소리라든지, 혹은 아래층 커플의 싸우는 소리라든지. 두 가지 모두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굳이 해결책을 찾자면 학교 담당자에게 찾아가 "나무를 자르지 마세요!"라고 말하거나, 아래층에게 "제발 그만 좀 싸워!"라고 말하는 게 되려나.
사실 나는 본디 청각에 매우 예민한 사람이다. 한국에 있을 때는 집에서 공부를 하고 있으면 거실에서 들리는 티브이 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곤 했다. 창문으로 들리는 지하철 소리를 참지 못해 이사 간 첫날부터 오빠와 방을 바꿨다. 새벽에 주방에서 설거지하는 소리가 들리기라도 하면 그날 잠은 거의 설칠 정도였다. 이런 내가 교환학생에 온 뒤로는 감각과 관련해 별문제가 없었다. 환경이 잘 맞아서인지, 마음이 너그러워지며 덩달아 감각도 유순해진 건지 아랫집의 싸우는 소리에 눈을 떠도 그냥 웃어넘길 수 있었다.
그런데 며칠 전, 갑자기 누군가 내 방에 찾아왔다. 아래층 사람이었다. 여자는 화가 잔뜩 난 상태였고, 내게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요약하자면, 지금까지 계속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고, 나는 지금 시험공부 중인데 너의 방에서 나는 소리 때문에 집중을 할 수가 없다. 계속 이런 식이면 경찰을 부르거나 기숙사 직원에게 항의하겠다는 말이었다.
다소 극단적인 단어들에 잠시 벙쪘지만, 이내 먼저 사과를 하고 상황을 설명했다. 아마도 네가 들었다는 남자 목소리는 내가 평소에 스피커로 팟캐스트를 들어서일 것이고, 소리가 아래층까지 들릴지는 몰랐으나 앞으로는 주의하겠다고 말했다. 따지지도 않고 바로 미안하다고 말한 내가 예상 밖이었는지 졸지에는 그녀도 머쓱하게 웃으며 돌아갔다.
이건 좀 다른 얘기인데, 이때 감사 일기의 효능을 느꼈다. 어느 유튜버의 영상을 보고 감사일기를 시작한 지 정확이 사흘이 되었을 때다. ‘기분 좋은 아침을 위한 루틴’에 하나가 추가된 셈이었다. 평소의 나라면 짜증부터 났을 텐데, 아래층의 항의를 받고 내 방으로 돌아왔을 때 첫 번째로 든 감정은 놀랍게도 완전히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고마움'.
나는 진심으로 그녀가 내게 말해준 것이 고마웠다. 그 사람의 입장을 헤아리는 것이 오히려 내 기분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니! 온몸에 미약한 전율이 돋았다.
일상에서 감사한 점을 찾는 노력을 지속하다 보면, 기억을 복기하는 과정에서 나쁜 기억을 감사한 기억으로 치환할 수 있다. 그러나 감사일기를 쓰며 내가 느낀 궁극의 장점은 평소의 생각과 관점을 그때그때마다 긍정적으로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날 저녁 감사 일기에는 이렇게 적었다.
"그동안 나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을까. 말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계속 시끄럽게 지내며 이웃에게 피해를 줬겠지? 이제라도 알게 돼서 다행이다."
이렇게 긍정적으로만 생각하다 보면, 인생에 행복한 일만 가득할 것 같았다. 하지만 긍정적인 생각은 다른 습관들과 같이 무수한 연습과 숙련을 필요로 하기 마련이다. 결코 쉬운 게 아니라는 소리다.
사실 지금도 아래층의 싸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현재 시간은 새벽 2시, 그리고 나는 감사일기를 못 쓴 지 일주일이 넘어가고 있다. 고로 내가 지금 드는 생각은 …
짜증
오늘은 감사일기를 꼭 써야겠다 다짐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