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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림 Feb 11. 2024

관계는 비움으로써 채워진다

남자친구와 헤어지던 날, 인생을 바꾼 인연을 만났다.

  관계란 것이 그렇다. 내 안의 누군가를 비움으로써 새로운 사람이 들어올 자리가 생긴다. 나는 교환학생에서 몇 차례 인간관계의 파동을 겪으며 2번의 비움과 채움을 경험했다.


 “선발자 명단에 없습니다.”


  유럽 교환학생을 꿈꾸며 신청한 며칠 뒤 받은 문구였다. 어학 실력이 2점 모자라서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시험공부를 핑계로 어학 성적 준비에 소홀했던 과거가 파노라마처럼 떠오르며 급격히 우울해졌다.


  이제 갓 신입생 딱지를 뗀 21살에게 '탈락'이란 단어는 생각보다 크게 다가왔다. 그러나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대학에 와서 가장 하고 싶었던 게 교환학생이었다.


  막무가내로 검색 포털 창을 켜 교환학생과 관련된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그중 눈에 띄는 포스팅 하나를 발견했다. 내 상황과 매우 유사한 듯싶어 글을 읽다 보니 놀랍게도 발행인이 우리 학교 우리 과 선배였다. 학연, 지연, 혈연은 남 얘기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죽으란 법은 없구나 생각하며 댓글을 남겼다.

 

  답장은 받지 못했지만, 그분의 블로그를 참고하며 따라 한 덕에, 나는 독일에 '파견학생'의 신분으로 올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귀국 한 달 전, 알림 하나를 받았다.

 

 “000님이 당신의 글에 댓글을 남겼습니다”


  독일 파견학생을 준비하며 올린 포스팅에 그분이 답변을 남겨주셨다는 알림이었다. 오랜만에 독일을 검색하다 비슷한 부분이 많은 게 신기해 댓글을 달았다는 내용이었다. 그분의 글을 그대로 따라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독일에 가기 전 밥을 먹기로 약속을 잡았다.


  익명의 사람에서 선배님으로, 선배님에서 언니로 호칭이 변화하는 시간 동안, 나는 나의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도 이렇다 할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다. 마음이 멀어지면 몸이 멀어진다지. 애틋했던 사랑도 지구의 원주율 앞에선 별 게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남자친구의 유학 시기에 맞추어 조정한 교환학생이었지만 인생은 역시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었다. 결국 우리도 보통의 연애일 뿐이었다.


  점차 식어가는 관계를 자각하며 위태로운 경마를 벌이다 마지막의 방점을 찍던 날, 나는 남자친구와의 마지막 메시지를 끝으로 선배를 만나러 2호선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남자친구와 헤어지던 그날, 나는 내 인생을 바꾼 새로운 인연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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