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솔림 Feb 07. 2024

나는 다를 거라 착각하는 당신에게

교환학생, 정말 그냥 '놀러' 가는 걸까?

"교환학생에 가면 외국인 친구도 많이 사귀고, 외국어도 늘려서 와야지!"



 모두가 교환학생에 떠나기 전, 이렇게 생각하곤 한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유럽에서 한 학기를 보낸 뒤 발견한 건 외국인 친구들도, 유창한 영어실력도 아니었다. 매일같이 한국인들과 어울려 와인과 위스키를 마셔댄 탓에 위장은 상해있었고, 쉴 틈 없이 다닌 여행 덕에 통장 잔고는 텅 비어버렸다. 어학 실력은 두말하고 여행 때문에 빠진 수업 출석률 때문에 제대로 학점을 채울 수 있을지조차 미지수였다.


 이건 비단 나와 주변 친구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보고 들은 90% 이상의 한국인들은 교환학생에 가서 한국인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 바빴고, 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어학 실력조차 미미한 수준이거나 그마저도 한국에서 영어 회화 아카데미를 다니는 게 차라리 더 나은 수준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교환학생이 다 놀러 가는 거지 뭐, 꼭 외국인 친구 만들러 가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누군가는 꼭 어학 실력이나 스펙 때문이 아니라 여행을 하기 위해, 혹은 해외 경험을 쌓기 위해 교환학생을 다짐한다.

    

 나도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교환학생에 왔다. 외국이라곤 초등학교 때 가본 동남아 여행이 전부였던 내게 유럽은 여행지만으로도 충분한 기대치를 가졌다. 외국 살이를 해보며 새로운 문화도 경험하고, 외국인 친구들과 놀다 보면 저절로 어학 실력도 늘 터이니 말 그대로 일석이조였다.   

   

 교환학생에서 한 학기를 보내며 외국인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다. 그러나 그 친구들과 깊은 사이로 발전하기는 어려웠다. 학교 행사에서 만난 외국인 친구들과 초반에는 몇 번 놀기도 하고, 그중 몇 명은 꽤 자주 보기도 했지만 그게 끝이었다. 단순히 만나는 횟수가 적어서가 아니다. 나에게 그 친구들은, 그리고 그 친구들에게 나는, ‘그냥 가끔 한 번씩 만나는 외국인 친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정도로도 만족한다면 문제는 없다. 그러나 나는 ‘여행만 즐겨도 충분할 것 같다’라고 말했던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학기가 끝날 때 즈음에는 하나같이 비슷한 이유로 후회하는 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여름 학기가 끝나던 어느 밤, 친구들과 송별회를 하러 오랜만에 칵테일 바에 들렀다. 학기 말이라 그런지 가게 안은 한눈에 봐도 북적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정말 많은 '외국인' 학생들이 있었다. 외국이니까 당연하겠지먼 적어도 나에겐 아니었다. 그때의 나는 이미 수개월동안 한국인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한국인들로 꽉 찬 우리 테이블과는 달리 다른 테이블들은 다양한 국가의 친구들로 차 있었다. 내 앞의 친구들과 눈을 마주치는 중에도 옆 테이블의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담배 냄새와 시끄러운 소리가 싫다며 빨리 나가자는 친구들의 목소리는 옆 테이블의 게임 소리에 묻힌 지 오래였다. 순간 여러 감정이 들었다. 이게 정말로 내가 원했던 모습인가?


 집에 돌아와서도 생각은 계속됐다. 지금의 상태를 규정하자면, 일단 지난 2년간 모은 돈을 모두 술과 여행에 탕진했다. 매일 한국인들과 어울려 논 탓에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외국인 친구들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성장했다 말하기도 민망한 수준의 그저 그런 어학 실력으로 얼마 뒤에 있을 귀국행 비행기에 오르게 될 터였다. 초반의 결심과는 너무나 멀어진 모습이었다.     


 곧장 교환학생에서만 할 수 있는 것들을 미처 누리지 못하고 물 흐르듯 6개월을 보내버렸다는 생각에 깊은 '현타'가 찾아왔다. 이대로 한국에 돌아간다면 후회가 남을 것 같았다. 온갖 감정들로 혼란스러운 머릿속에는 아까 들은 옆 테이블의 웃음소리가 계속해서 재생되고 있었다.      

  



 교환학생에 있어 재미와 실력, 두 가지는 사실 분리된 요소가 아니다. 놀기도 놀고, 어학실력과 스펙도 쌓는 것. 교환학생에선 두 가지 모두 가능하다. ‘해외여행’ 대신에 ‘교환학생’을 가는 이유이다.      


 그러나 막연하게 놀 생각만 하거나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인드로 생각 없이 교환학생에 오면, 모두가 바라는 ‘재미’와 ‘실력’을 동시에 잡기는 매우 힘들다는 걸 깨닫게 된다.      


바에 갔던 그날 새벽, 나는 한국행 비행기를 타는 대신 학기 연장을 하리라 결심했다. 그리고 그날의 다짐 이후, 나는 180도 달라진 일상으로 유럽에서의 두 번째 학기를 보냈다. 이 과정에서 단순히 몇 가지의 다짐과 실천만으로 남들보다 2배, 3배는 더 유익하고 즐거운 교환학생을 보낼 수 있음을 깨달았다.

 

 어쩌면 나와 같은 후회를 할 사람들을 위해 내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즐길건 다 즐기면서도 좀 더 후회 없고 알찬 교환 생활을 보내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글을 전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