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부족한 자들에게

by 스캇아빠

인턴이랑 일을 하게 됐다. 내가 그렇게 거의 사정하듯이, 인턴하고 하는 일이 아니라면 다른 어떤 어려운 일도 다 괜찮다고 이야기를 했음에도, 끝내 나는 “인턴에게 설명하기”라는 하기 정말 싫은 일을 떠넘겨 받게 되었다. 그런데, 다시 말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당장 회사를 그만두면 이번에 맞춘 돋보기안경의 보험도 날아가고, 여름에 한국으로 2달 동안 놀러 가면서 받을 월급도 날아가기에, 이를 악물고 몬트리올에 있다는 인턴, 루벤에게 채팅 메시지를 보냈다.


“안녕 루벤, 네가 코드를 이해 못 하겠다고 했다면서, 뭘 모르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도와줄게. 시간 괜찮을 때 핑해 “


2분 후…


”안녕 마크. 내가 다음 주 화요일 약속을 잡아도 될까? 나는 이게 정말 처음이야. 그래서 이해하기 위한 도움이 필요해. 나는 겟.도시어의 구조와 그 후에 풋.도시어와 딜리트.도시어의 구조도 알고 싶어. 구글 캘린더로 약속시간 잡아도 될까? “


루벤은 누가 봐도 영어를 잘하게 생긴, 앵글로섹슨족 20대 남자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나보다 영어를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렇게나 이어 붙인 단어들의 연속으로 보아,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게 분명해 보였다.


“응? 뭘 모르겠다고? 네가 모르는 게 전체적인 구조야? 아니면 코드를 모르겠단 거야? 아니면, 네가 할 일을 모르겠다는 거야? 아니. 아니다. 그냥 여기 지금 조인해 봐 “


나는 곧바로 화상통화를 열고 루벤을 초청했다. 그리고 곧 들어온 루벤의 얼굴은 이미 현실 프로젝트를 보고 허둥지둥 데며, 어쩔 줄 모르는, 불쌍한 신입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25년 전 첫 출근 했을 때의 내 얼굴이자. 경력신입이든 대졸신입이든 누구나 첫날에는 짓게 되는 그 얼굴 말이다.


”뭘 모르겠다고? 네가 모르는 부분을 화면공유로 보여줘 봐 “


”응? 아.. 그게.. 음… 아.. 맞다. 이거 응. 맞아 이거“


당황한 루벤의 공유한 화면은 정말 깨알 같은 글자가 가득한 화면이었고, 여기저기 인터넷 검색의 흔적이 가득했다. 곧 불쌍한 인턴은 열심히 여기저기 자신이 모르는 부분을 설명하려고 했지만, 나는 말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


“부탁인데, 정말 부탁인데! 글자 좀 키워줄래? 제발?!”


“응? 뭐라고?”


“폰트 사이즈 좀 키워 달라고…”


“응? 아.. 이게.. 어떻게..”


“커맨드 플러스!”


“아!!”


루벤은 마치 그런 요청을 받아 본 적 없다는 듯이, 아니 어쩌면, 이게 어떻게 안 보여?라는 듯한 눈치였고, 나는 천천히 화가 쌓이고 있었다. 그리고 루벤은 눈꼽만한 글자를 딱 코딱지만큼만 키워주며, 이젠 읽을 수 있지?라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설명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나는 이게.. 이런 문자를 처음 봐.. 이게 그리고 이거 async는 뭐야?”


“응? 너 이 파이썬 문법을 모르겠다고 나한테 이야기하는 거야?”


“응? 이게 파이썬 문법이야?”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지금 생각해도 열받아!), 루벤 인턴님께서는, 전체적인 구조를 모르겠다고 한 것도, 코드를 이해 못 하겠다고 한 것도, 자신이 할 일이 뭔지를 모르겠다고 한 것도, 아닌 기본 컴퓨터 언어를 모르겠다고 나한테 이야기하고 있었던 거였다. 뭐 그다음 대화는 상상에 맡기겠지만, 절대 부드러운 분위기는 아니었다. 좀 험한 이야기가 오고 갔지만 요약하자면 이렇다.


“너는 파이썬을 몰라. 하지만 너는 네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네가 모르는 게 특별한 경우라고 생각해. 또 너는 네가 오늘 이 코드를 처음 봤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고, 그게 변명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 네가 할 일은 공부하는 거야. 처음 맡은 일에 모르는 것이 나쁘다는 게 아니야. 그런데, 너는 그냥 모른다는 말만 하면서, 가르쳐 달라고만 하잖아. 너는 나에게 묻기 전에 적어도 너는 1주일, 아니 2~3일 정도는 공부를 하고 물어봤어야 했어. 네가 전기공학과라 코드를 잘 이해 못 한다는 말은 전혀 변명거리가 되지 않아.
우리는 너를 뽑았고, 그 말은 우리는 네가 공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야. 우리도 네게 처음부터 모든 것을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하지만 너는 공부해야 해. 공부해. 그렇게 보다 보면 분명 길이 보일 거야.”

루벤은 연신 고맙다는 말과 함께, 공부하겠다는 말을 했지만, 어떻게 할지 자신이 없어 보였다. 나는 그렇게 “즐거운” 금요일 오후를 새로 온 인턴님과 보내며 한주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사랑하는 나의 부인이자, 제일 친한 친구이자, 캐나다의 유일한 말동무인, 간호사 선생님께 이 이야기를 전했는데, 나는 곧 당황스러울 정도로 비슷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몇 주 전,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간호사 선생님께서는 직장을 옮겼고, 새로운 시설과 시스템 전반적인 것에 관한 교육을 받고 계셨는데, 그게 꽤 힘든 교육이었던 듯싶다. 그래서 그런지, 간호사 선생님께서는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 계셨다.


“모르는 게 너무 많아. 간호사도 전공의처럼 수련기간이 있으면 좋겠어.”


참고로 우리 간호사님은 이미 6년 차 간호사셨고, 결국 나는 다시 잔소리 모드로 전환해야만 했다.


“간호사 선생님께서는 이미 수련기간이 진작에 끝나셨어요. 이미 전문 간호사 선생님이신 거고, 그게 그 자격증 아닌가요. 어떤 의사가 직장을 옮긴다고, 전공의를 또 합니까. 이미 잘하고 계시잖아요. 새 직장에 취직했다는 뜻은 이미 그 직장이 선생님의 능력을 그 돈만큼 지불해서 사용하겠다는 거잖아요. 선생님이 캐나다에 혼자 와서, 혼자힘으로 대학도 들어가고, 졸업도 하고, 혼자힘으로 실습하고, 혼자 힘으로 자격증도 따신 거잖아요. 그런데 왜 그리 약한 소리를 하십니까.”

뭐 예상했다시피, 좋은 피드백은 받을 수 없었고, 나는 잔소리의 결과로 꼰대라는 새로운 칭호를 얻어야 했다. 사실 나도 직장을 옮길 때마다 이번이 나의 은퇴자리인가 보다 하는 생각을 한다. 새로운 시스템에 새로운 코드, 새로운 환경에서 나는 너무나 부족한 존재로 느껴진다. 나 외에 다른 이들은 모두가 척척척 일을 해나가고, 그들에게는 너무 간단한 일이 내게는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로 여겨진다.


그런데, 반박하자면 어떤 사람이 부족하냐 안 하냐의 기준이 현재 지금 가진 것 이어서는 안 돼 보인다. 어떤 일이든 시작은 있고, 시작하는 일에 모르는 게 당연한 거니까 말이다. 만약 노력 중이고 계속 성장 중이라면 부족한 게 아니라, 채워지는 중이라고 부르는 게 더 맞지 않을까?


그런데, 그래도 어쩌랴, 뭐 별수 있어? 그동안은 욕 좀 먹겠지 뭐. 그래도 우리 선생님은 오이영보다 이쁘니… 쿨럭..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