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을 길러 본 적이 있는가? 식물이라 하니 뭔가 거창한 느낌이다. 그러지 말고, 그냥 작은 화분에 상추나 깻잎이나 고추나 그런 작은 먹거리를 길러 본 경험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크고 멋진 화분이 아니더라도 그냥 동네 슈퍼나 시장에 가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흔하디 흔한 별로 크지도 않은 사이즈의 스티로폼 박스 안에 흙을 채우고 씨를 뿌린다. 그러면 신기하고 기특하게도 떡잎이 올라오고 그에 맞추어 새로운 잎들이 쑥쑥 자란다. 줄기가 자라고 잎도 무성해지며 꽃도 피고 어느샌가 열매를 맺는다. 잘 보이지도 않는 깨알 같은 씨앗 안 어디에 그런 힘이 있는 건지, 도저히 이 씨앗이 저 길쭉한 식물이라는 것이 믿기 어렵기까지 하다.
식물이 자라 뿌리를 내린 곳은 흙이다. 어찌 이 작은 스티로폼 상자 안의 그리 많지도 않은 흙속에서 고추가 주렁주렁 열리는지, 또 어떻게 상추잎들은 끝없이 자란 나오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요 녀석들이 자라고 열매 맺는 과정을 보면서 우리는 많은 흙이 있어야만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다시 한번 스티로폼 상자를 보자. 이 상자는 그리 크지도 않고 많은 흙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씨앗을 세상에서 자신의 몫을 당당히 하는 고추로, 상추로 깻잎으로 키워냈다. 무작정 많은 흙을 필요로 할 것 같지만, 사실은 적당한 양의 흙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부모의 사랑은 하늘과 바다와 비교된다. 그 하해와 같은 측량할 수 없는 사랑 덕분에 옷 한 벌 쥐어지지도 않고 맨손으로 태어난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아이가 사람구실을 하고 마침내 세상에서 자기 몫을 하는 순간이 오는 것은 오직 하늘보다 넓고 바다보다 깊은 부모의 사랑 덕분이다라는 생각을 주입당하고서 살아온 사람들이 많다. 더 나아가, 그 큰 사랑을 갚지 않으면 천벌이라도 받아야 하는 불효막심한 인간 말종이 되는 것이 당연한 효도라이팅을 당하기까지도 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정말 가늠할 수 없는 그 큰 사랑 덕분인 걸까? 작은 스티로폼 상자 안에 있는 적은 양의 흙이 티 끌만큼 작은 씨앗을 세상에 도움을 주는 식물로 길러내는 것처럼, 부모의 사랑도 그런 것이 아닐까?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큰 사랑이 아니라, 어느 정도 필요한 만큼의 적당한 양의 사랑이 있다면 그래도 세상에서 제 구실을 하고 살 수 있는 사람으로 길러낼 수 있지 않을까?
허탈한 웃음이 나오는 사실은 그 적당량의 사랑조차 주지 못하는 부모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이다. 그 적당량도 채우지 못하면서 마치 자신의 사랑은 세상 그 무엇보다 숭고하고 위대한 것으로 과대 포장하고 확신하여 자신이 준 사랑을 보답하라고 자식에게 강요한다.
나 역시 한 아이의 엄마이다. 낳고 기른 엄마로서 이 아이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은 세상 그 누구보다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누가 나에게 “아이를 향한 당신의 사랑이 하늘보다 넓고 바다보다 깊나요?”라고 묻는다면 난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사랑은 넓디넓은 하늘과 바다에 비교하면 그저 아무것도 아닌 하나의 점 일뿐이다. 나는 거대한 양의 흙을 주지 못한다. 하지만 작은 스티로폼에 담긴 흙처럼 내 사랑은 오늘도 아이를 길러내기에 충분하다. 중요한 것은 흙의 양이 아니라 그 흙 속에 담긴 진심과 꾸준함, 그것이 효도라이팅과는 다른 진짜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