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최 근 10년 전후로. 나를 사랑하는 방법 중에 하나로 “나를 위한 음식을 차리고 예쁜 그릇에 담아서 먹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책과 영상들이 쏟아졌다.
손님이나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음식을 아무렇게나 담아서 대충 줄 거냐 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예쁜 접시에 음식을 담고 천천히 음미하지 않으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말한다. 맞는 말이다. 손님을 맞이할 때는 신경을 쓰게 된다. 정성스레 음식을 준비하고 꽃이라도 그려진 예쁜 접시에 내놓는 것은 손님을 소중히 여기는 나의 태도를 보여준다.
누가 손님에게 사과를 깎아서 대충 아무 밥그릇이나 스뎅반찬 그릇에 툭 내어놓겠나, 그것은 손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실로 그렇게 누군가를 대접한다면 보고 들은 바 없는 예의 없는 사람으로 찍혀 한동안 뒷담화를 들을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결국 이는 소중함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은 어떻게 사는 거다라는 최소한의 예의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밥을 대충 아무 그릇에나 차려 먹는 사람은 자신을 소중히 대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과 글을 보면 불편함이 남는다. 나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도 굳이 꽃이 그려진 예쁜 접시를 찾기보다는 가까이 있고 기능을 충실히 하는 그릇에 담아 맛있게 먹는다 재미있는 드라마 한 편 보며 먹는 그 시간이 내겐 훨씬 더 편하고 좋다. 밥을 먹고 나서는 배부르고 등따땃하게 침대에 널브러져 누워 핸드폰으로 재미있는 동영상을 볼 때도 세상 편하고 ‘이게 바로 천국이지’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가끔 불현듯 이런 생각이 스친다 ‘아. 나 예쁜 그릇에 신경 써서 플레이팅하고 천천히 음미하면서 먹어야 나를 사랑하는 건데 나는 지금 나를 하대하는 중인가? ‘. 밥그릇과 접시가 자기 사랑을 증명하는 시험대가 되어버렸다.
푸디젠이라는 유튜버가 있다. 그녀는 동영상 138개로 어느새 54만 명의 구독자를 가지고 있는 잘 나가는 크리에이터이다. 그녀는 영상에서 구겨진 티셔츠와 후줄근한 해 보이는 파자마를 입은 채로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뚝딱 만들어내서, 때로는 스뎅 볼에 쓱쓱 비벼먹기도 하고 아무 접시에나 툭 담아 시원한 맥주와 좋아하는 영상을 보면서 먹는다. 그녀의 시그니쳐인 다리 떨기와 함께 “이게 인생이지 이게 천국이야”라는 말은 나를 포함한 많은 시청자에게 해방감을 준다
나는 이미 그녀가 떡상할 것이라는 직감 했다. 그녀의 영상은 나 같은 사람에게 자유를 준다. 꼭 북유럽풍 베이지색 앞치마를 입지 않아도, 재료를 일일이 측량하지 않고 대충 넣어도 색색이 아름다운 식기에 음식을 넣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냉장고에 있는 재료로 대충 금세 요리를 만들어 컴퓨터 앞에서 맥주 한잔 쭉 들이키며 먹는 모습은 우리의 실제 삶과 비슷하다.
미디어는 내가 나를 사랑하는 방법까지 정해놓았다. 그것을 따르지 않으면 나는 뭔가 잘못되었나 라는 생각이 들어 자책한다.
사람마다 자기를 소중히 여기고 행복을 느끼는 포인트는 분명히 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정갈하게 예쁜 접시에 차린 밥에서 자기 돌봄을 느끼고 또 어떤 사람은 설거지 조차 하지 않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과자봉지를 뜯어먹으면서도 “지금 이게 내게 필요한 휴식이야”라고 말할 수 있다. 결국 본질은 형식이 아니라 태도인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까지 세상이 정해주는 많은 기준들에 맞추어 살아갈 필요는 없다. 어는 날은 되는대로, 어느 날은 조금은 신경 쓴 채로, 어느 날은 다 필요 없다 배달음식! 이렇게 살아도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것은 예쁜 접시에 밥을 담아먹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편안한 대로 살고 있는가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