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적인 이유들로 마음이 매우 힘든 상황에서도 진료를 계속할 수밖에 없는 날이 있다. 많은 스트레스와 박탈감, 혹은 정신적 허기짐이 버무려져 나를 갉아먹고 있을 때에도 아픈 아기들은 있고, 나는 그들을 진료하고 약을 처방하고, 입원을 시켜 경과를 봐야 한다. 이럴 때 가장 힘든 것은 그런 내 감정이나 생각이 진료에 끼어드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평소라면 그렇지 않았을 행동을 그런 시기에 한다는 것은 내가 그 감정에 휘둘렸음이라.
그것이 긍정적인 감정의 상태라도 너무 개입되게 되면 힘이 들 수 있는데 부정적인 감정이라면 환자나 보호자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 항상 고요한 순간의 나를 떠올리며 그때의 나라면 어떻게 말할지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진료를 한다. 그러다 보면 더 피곤한 하루가 될 수밖에. 그래도 나는 계속 환자를 볼 수밖에 없다. 그것이 의사인 내가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이고 그것을 통해 우리 가족은 삶을 유지하고 행복에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의사들의 삶이 밖에서 보면 도대체 어떻게 보이는지 너무 궁금하다. 때론 대중에게 그저 의사라는 이유만으로 비난받고 돈벌레로 매도당하기도 하지만, 내가 아는 의사 중 그 누구도 남들에게 해악을 끼치며 돈을 벌지 않는다. 사업적 마인드로 똘똘 뭉쳐 돈만 아는 의사라도 기본적으로는 환자를 생각한다. 절대 할 수 없는 짓을 하는 의사는 적어도 내 주위에는 없다. 나도 그런 인간들은 그저 뉴스로만 본다. 어떤 집단이든 그런 저열한 인간들이 없을 수는 없지만, 그런 인간들 몇몇이 한 집단을 대표하는 이미지가 되어 전체 집단을 조롱하고 비하하는 것은 참으로 참기가 힘들었다. 최근 나를 갉아먹는 생각은 바로 이것이었다.
'나에게 진료를 보는 누군가도 뒤에서는 우리를 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보호자는 나에게 적대감을 갖고 있진 않을까?'
'이 진료 후에 어떻게 변할까?'
이런 생각들이 진료실에서 나를 괴롭히는 생각들이다. 물론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모든 사람이 의사들을 적대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런 사람들은 소수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이 감정이 내 진료에 끼어들지 않았으면 한다. 그렇게 나를 지켜내야, 이 시간이 자나 가도 내가 이 자리를 지킬 수 있을 것 같아서. 힘든 시간을 지켜온 자리를 내가 아닌 다른 이유로 포기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래서 나는 오늘도 힘내서 진료하고 힘내서 쉬고 힘내서 살아간다. 그래야 날 지키고, 내 꿈을 지킬 수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