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참 우울한 직업이다. 항상 아픈 사람들을 상대하고 그들의 부정적 감정이나 생각을 받아내야 하는 공공감정쓰레기통이랄까?
진료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그래도 아프니까, 아기가 아프니까라고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다. 아프면 누구나 힘들고 부정적이고 누군가를 향해 쏟아내고 싶어지는 것이니까.
하지만 요즘, 여기저기에서 그냥 의사라는 이유로 분노와 조롱의 대상이 되어가는 사회적 분위기가 너무 무섭다. 내가 처음 그것을 느낀 것은 COVID19 때. 의료진의 자식이란 이유로 학교에 오지 말라고, 유치원에 오지 말라고 하고 왕따가 되기도 했다는 도시전설 같은 이야기가 주위에서 들려올 때, 코로나 전담 병원에서 격리환자를 진료하던 나로서는 아직 아기가 없음에 감사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거기에 추가적으로 쏟아진 정치 사회적인 문제로 '돈만 보는 이기적인 의새' 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한번 크게 무너졌다. 내가 이 짓을 왜 하고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이 생겨버렸다. 이 사회는 과연 의사가 필요한 사회인가? 흔히 바이탈, 필수과, 기피과 라고 하는 아픈 사람들을 케어하는 사람이 이 나라엔 필요가 없는 걸까? 하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곤 했었다.
하지만 그런 폭풍도 시간이 지나 잠잠해지고 나는 다시 아픈 아기들을 진료하는 평범한 삶으로 돌아왔다. 그것이 내 천직이라 여기며, 그것이 내가 갈 길이라 여기며. 물론 그것이 내 가족의 행복을 최소로 보장할 수 있는 '돈벌이'의 수단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의사도 사람이다. 아내의 남편, 아기의 아빠, 누구의 아들, 동생 사위. 그냥 평범한 주위에 있는 동네 아저씨다. 그런 사람들에게 사회적 분노가 쏟아지는 이유는 모르겠다. 누가 내 밥그릇 깬다고 달려들면 싸워야지, 가만 앉아 깨지는 밥그릇 구경할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을까.
그런데 그런 일이 최근 또 생기고 있다. '돈만 밝히는 의새'인 나는 상황이 너무 답답하고 소수일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극단적인 비난을 들으며 몇 년 전 떠올랐단 의문들이 다시 머릿속을 채워가고 있다.
' 난 왜 아직도 이 짓을 하고 있는 건가?'
결론은 또 항상 같다. 난 내 가족과 나를 위해 일을 한다. 그것이 직업의 목적이니까. 돈 벌어야 하니까. 그래야 한 달 한 달 대출금도 갚고, 할부금도 갚으며 아기에게 좋은 것 먹이고 와이프한테 조그만 선물이라도 하나 할 수 있으니까. 그래도 '의새들 다 죽여버려'라든가 '평생 수능 한번 잘 본 걸로 떵떵거리며 사는 아무것도 모르는 의새' '히포크라테스선서는 어디다 버렸냐' 등등 내 직업을 조롱하는 몇몇 글들을 보며 다시 마음이 텅 비어버림은 어쩔 수가 없다.
과연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나조차도 모르겠다. 다만 오늘도 아픈 아기들은 병원을 찾았고, 나는 그들을 진료해야 한다. 그것이 아직은 나의 일이고 그것이 내가 월급을 받는 이유고, 그것이 내가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방법이니까.
의사도,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