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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아과아빠 Mar 12. 2024

의사가 된 이유

그냥 그때는 그게 멋져 보였어.

 다니던 초등학교가 폐교되고 통폐합될 정도로 아이들이 적게 태어나는 시골에서 태어났어. 어릴 때는 항상 모자란 아이처럼 받아쓰기도 다 맞아본 적이 없었고, 구구단을 외우지 못해서 나머지 공부를 하는 그런 늦된 아이 었지. 노는 것만 좋아하고 사고만 치고 다니는 아이.


 그런 아이가 어떻게 의사가 될 수 있었을까? 왜 의사가 되고 싶어 졌을까?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


 항상 모지리로 살았지만 시간이 지나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어. 작은 누나는 항상 그런 날 걱정했고 호되게 야단도 쳤었지. 막 고등학교에 진학한 누나는 주말에 시골에 올 때면 항상 '반편성고사문제지'를 가지고 왔어.


'내 동생이 중학교 가서도 모지리인 건 내가 못 참겠다.'


 누나는 공부도 잘하고 똑 부러진 사람이었거든. 그렇게 사온 문제지를 나에게 던져주고 답안지를 부악 찢어서 다시 시내로 올라가 버렸어. 혼자 남겨진 아이는 그 문제지를 다음 누나가 내려올 때까지 다 풀어놔야 했고, 그렇게 중학교 입학 전에 나는 하드트레이닝을 통해 겨울방학 동안 개과천선을 하고 공부하는 아이가 되어 있었지. 시골 학교였지만 무려 반편성고사에서 3등을 해버리는 기적이 일어났지. 진짜 안 해서 못하는 경우였던 걸까? 아니면 누나의 하드트레이닝의 결과였을까?


 그렇게 중학교에서 공부로 제법 승승장구하게 된 나에게 하나의 시련이 닥쳤어. 파일럿을 꿈꾸던 나는 점점 나빠지는 시력, 심해지는 난시 때문에 꿈을 잃어가고 있었거든. 방황은 아니었지만, 뚜렷한 꿈이 있던 나에게 그건 좀 힘든 일이었어. 게다가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나에게 공부라는 것을 해보게 해 줬던 작은 누나, 의사를 꿈꾸었던 누나에게 중증혈소판감소증이라는 질환이 찾아온 거야. 그때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도 몰랐지만, 혈소판이 9천 개라 누나가 갑자기 출혈을 일으켜 사망할 수도 있단 이야기를 들었어. 어린 나에게 그건 꽤나 큰 충격이었고, 마음속으로 많이 기도 했던 거 같아. 믿는 신이 없다는 것이 원망스러웠어.


 그런데 항상 기적은 우리 곁에 있더라. 누나가 그런 상황에 지역에 있는 대학병원을 찾았는데, 우연히 1주일에 한번 서울대 혈액종양내과 교수님이 외래진료를 해주시는 날이었던 거야. 무슨 시스템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에겐 그건 기적이었어. 20년도 훨씬 훌쩍 넘은 옛날이야기지만, 그 교수님을 만나서 누나가 살았다고 생각해.


'살고 싶으면, 내가 하자는 대로 하자.'


 누나와 엄마에게 전해 들은 교수님의 한마디였어. 누나는 당장 입원도 하고 골수검사도 하고 등등 힘든 검사들을 해냈고, 힘든 치료를 견뎌냈고, 살았어. 지금은 애 셋 엄마, 슈퍼우먼으로 살고 있지. 하지만 힘든 그 치료를 겪으며 제대로 공부를 할 수도 없었고, 재수나 다른 길을 열어줄 수도 없었던 집안 사정 때문에 지역국립대 간호학과에 입학하게 된 누나, 그래도 수석입학이라며 웃던 누나에게 난 갑자기 약속하나를 해. 아직도 그때 나의 생각을 잘 모르겠어. 그냥 그러고 싶더라.


'누나, 내가 누나 대신 의사 해볼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교수님이 꽤나 멋졌던 것 같아 중3짜리 꼬마에게. 사람의 목숨에 대해 얼마나 자신감이 있으면 저런 멋진 말을 할 수 있을까? 얼마나 자기 능력에 대해 자신이 있다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우와. 진짜 멋지다.


 그렇게 나는 의사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어. 그러고 나서 알게 되었지. 보통의 노력으론 의대에 갈 수 없고, 우리 집안 사정으론 많은 서포트가 힘들단 것을. 이제 방법은 날 갈아 넣어야 한단 것. 그리고 만약 의사가 될 수 있다면 내 아들은 이렇게 키우지 않아도 된단 것을. 그렇게 내 첫 번째 꿈을 향한 한 걸음이 시작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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