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리스트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훨씬 전. 그러니까 제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제게는 일종의 버킷리스트가 있었습니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가져 온 꿈이니 거의 20년이 넘은 꿈입니다. 20년이라고 하니 어느 정도인지 감이 잘 오지 않지만, 국민학교라고 부르던 시절이 지금으로부터 30년이 채 되지 않았더군요.
그러니까 그 때는 PC로 인터넷을 한다는 것도 어색하고, 스타크래프트가 막 보급되었고, 검색엔진은 야후, 다음, 엠파스, 네이버 등등이 각축장을 벌이고 있을 시절이었습니다.
그 때부터, 제 꿈은 파리에서의 멋진 정찬을 제대로 즐기는 것이었습니다.
이 꿈을 가지게 된 것은 어린 시절, 아버지께 선물받은 한권의 책 때문이었습니다. 흔히 책 한권이 인생을 바꾼다고 하는데요. 인생을 바꾼다는 의미는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거창하지 않더라도 말이죠.
아직도 출간되는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가 바로 그 책이었습니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데요, 2편인 프랑스 편의 첫머리는 프랑스식 식사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어린 나이에도 맛난 것 먹는 것을 좋아했던 제게 프랑스식 식사는 그야말로 꿈에서나 나올 법 한 이야기였습니다. 메인으로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를 각각 먹고, 때로는 다른 요리를 또 준다니요. 심지어 나오는 음식의 양이 너무 많아 사양하면 결례이니 양을 조절해 가며 먹어야 한다는 겁니다. 늘 밥이 부족하게 느껴지던 제게는 신세계나 다름없는 이야기였습니다.
맞습니다. 인터넷이 보급되고, 프랑스 뿐 아니라 서울에서도 어렵지 않게 프랑스 식 정찬을 즐길 수 있게 된 지금 보면, 여러모로 맞지 않아 보이는 내용도 많이 있습니다. 실제로 제가 파리에서 먹어본 정찬 식사들은 저 정도로 많은 음식을 내어 오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코스를 짜는 사람 마음이니 책 내용이 반드시 틀렸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저자인 이원복 교수는 독일에 유학간 학생으로서 겪은 일들을 바탕으로 썼을 테니, 요즘처럼 인터넷이 있는 시대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대한 자세하게 쓰려고 했을 것입니다. 이맘 때 중학교 '가정' 교과서에 보면, 양식의 소스는 남기지 말고 모두 긁어 먹는 것이 예의라는 내용이 있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정확한 서양식 정찬에 대한 정보가 없던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책의 내용은 완벽히 현재의 프랑스식 정찬과 부합하지 않았지만, 제 파리 여행에 대항 강력한 원동력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라면 가 볼 생각도 하지 않았을 비싼 미슐랭 레스토랑들을 방문하면서, 점점 더 세상의 맛있는 음식에 대한 흥미를 가지게 되었구요.
그래서 이번 제 두 번째 브런치북, '나의 유럽 미식 여행기' 는 아주 오래 전 파리의 맛있는 정찬을 동경했던 어린 아이가 꿈을 이루어 가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파리에서의 멋진 정찬 이후, 단순히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음식에 대한 다른 의미의 흥미가 새롭게 생겼기 때문입니다. 버킷리스트가 업그레이드 되었다고 해야 할까요. 단순히 혀에 맛있는 음식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지만 이 음식이 다른 감각, 나아가 감정까지 채워줄 수 있다면 그야말로 더할 나위 없을 것입니다.
이 글 또한 과거 느꼈던 즐거움을 되새기며 그 때의 감정을 다시한번 불러오고, 때로는 그 때의 감상을 넘어서는 새로운 즐거움을 주는 글이 된다면 더욱 즐거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