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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아파도 쉴 수 없는 사람.

by 부자형아

어느덧 수호가 반찬가게를 시작한 지 8개월째.

시간 참 빠르다.


‘자영업이라는 게 이렇게 힘든 것이었다니...’

‘업종을 잘못 선택한 것일까...’


수호는 쓸데없는 후회를 해본다.

그냥 반찬만 만들어서 팔면 되는 줄 알았는데 실상은 전혀 달랐다.

누가 실무적인 이야기를 해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만 해본다.


성공을 위한 이야기, 어떻게 하면 잘 된다는 그런 이야기 말고.

제품을 만들기 전에 재료를 손질해야 하고...

팔고 나면 산더미 같은 설거지도 해야 하며...

밤늦게 남아 청소까지 해야 한다는...

그런 당연한 듯하면서도 쉽게 알지 못하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그걸 먼저 알았다면 아마 수호는 지금 여기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철저하게 긴장하면서 마스크를 하고 다녔기에 수호도 감기에 걸리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추운 겨울이 되고, 슬슬 매장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긴장이 풀렸는지 감기가 찾아왔다.

병원을 방문했더니 코로나와 독감 검사를 받으라고 한다.

코로나 검사도 음성이고, 독감 검사도 음성이다.

확진자 수가 역대 최고를 기록하는 상황이었지만 다행스럽게 일반 감기였다.


문제는 수호가 주방장이다 보니 아무리 아파도 쉴 수 없다는 것이다.

수호가 출근을 못 하면 매장이 돌아가지 않는다.

반찬을 만들 수 없으니, 직원들도 일이 반으로 줄고, 매출도 반토막 날 수밖에 없다.

40도까지 올라가는 고열에 시달렸지만, 아침에 일어나 시장으로 향할 수밖에 없는 수호.

정말 서럽고 너무 힘들지만 어쩔 수 없다.


직장인이었을 땐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하더라도 연차나 병가를 사용하면 되었다.

하지만 자영업이라는 것은 그런 게 존재하지 않는다.


수호가 나가지 않으면 그날 장사는 그냥 날리는 것이다.

자영업자는 아파도 쉴 수 없다.

본인 몸이 아픈 것보다 하루 매출이 떨어지는 것이 더 가슴 아프기 때문이다.

시장에 도착한 수호.

감기보다 더 힘들게 하는 것이 있다.

천정부지로 솟은 식자재 가격이다.

1,000원이었던 무는 2,000원이고, 15,000원이던 양파 한 망은 30,000원이 넘어갔다.

거의 대부분의 식자재들이 두 배씩 올랐다.

식자재 값이 이렇게 많이 오르면 수호의 순이익이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원가가 오를 때마다 반찬 가격을 올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지금도 일부 고객분들은 반찬이 비싸다고 한다.

다른 곳은 3팩, 4팩 만 원이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수호는 그렇게 묶어서 팔지 않는다.

정성껏 만든 반찬을 듬뿍 담아서 하나씩 파는 것이 더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수호의 그런 뜻을 알아주시는 고객들이 더 많이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반찬이 맛있다고 해주시거나, 다른 곳에 비해 양이 많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을 만나면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아픈 몸을 이끌고 매장에 힘들게 도착한다.

연말이라 그런지 확실히 찾아주시는 손님들이 줄어든 느낌이다.

실장님께서 원래 연말연시에는 장사가 안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동안은 많이 남지 않아서 집에 가져가거나 직원들을 주곤 했는데, 연말이 다가오면서 아까울 정도로 남기 시작했다.

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워서 주변 가게에 나눠주기로 한다.

가장 먼저 누수 때문에 고생했던 부동산 사장님을 찾아가는 수호.


“사장님, 안녕하세요! 연말이라 그런지 반찬이 좀 남아서 가져왔습니다”

“오, 고마워. 연말이라 장사 안되지?”

“그렇네요. 연말이니까 어쩔 수 없죠. 뭐.”

“그거 알아? 저기 반대편 반찬가게 있잖아. 어제 권리금 500만 원 주고 팔았데. 500만 원이 뭐냐. 여기 바닥 권리만 해도 2,000만 원씩 하던 곳인데. 그래도 뭐 연말에 정리하려고 했다는데 그거라도 받았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사장님네는 이제 여기 완전 독점이라 좋겠네?”

“독점이라고 할 수 있나요. 여기 주변에 먹는 장사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제가 보니까 요식업은 다 경쟁상대더라고요. 그나저나 누가 들어오길래 한 달을 못 참고 굳이 500만 원을 주고 들어온대요? 연말에 정리한다고 했으니까 기다렸다가 들어오면 되잖아요.”

“연말에 그 집이 철거한다는 걸 쉽게 알 수 없지. 저 반찬가게가 연말까지 할 거라는 걸 새로 들어오는 사람이 어떻게 알 수 있겠어. 부동산에서 그런 얘기 해줄 것 같아? 그러다가 손님이 마음 변하면 자기들 손해인데? 나 같아도 안 할걸? 하하”

“아... 이제 며칠 안 남았는데 그것도 안 알려줘요? 아깝네요. 그냥 생돈 날아가는 것 같아서...”

“이봐 젊은 사장, 이 바닥은 다 그런 거야. 지금 자네가 어려서 그렇지. 사실 따지고 보면 사장님도 손해 보고 들어 온 거야.”

“저는 권리금 안 주고 들어왔는데요? 손해 본 거 없어요.”

“이 사람아, 거기 원래 월세가 180만 원이에요. 어디서 계약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건물주가 사장님 어리고 잘 모르는 것 같으니까 다짜고짜 200만 원이라고 부른 거 같은데, 나랑 거래했어야지. 그럼 알려줬을 텐데.”

“인터넷에도 200만 원으로 되어 있고, 같은 건물 1층 장사하시는 분들도 200만 원이라고 하던데요??”

“인터넷에는 당연히 200만 원으로 올려놓은 거지, 사장님 같은 사람들 덥석 물라고. 그리고 벌써 건물주가 옆집에 다 말하고 다녔을걸? 누가 물어보면 200만 원이라고 하라고.., 자네, 그렇게 물러터져서 장사하겠어?”

몸도 아파죽겠는데 한 방 얻어맞은 기분이다.

매달 20만 원씩이나 아낄 수 있었는데...

수호는 신도시 쪽 월세를 알아보다가 여기 구도심으로 왔기 때문에 훨씬 싸다고 생각했다.

신도시는 같은 평수의 월세가 300만 원을 넘어갔는데 여긴 200만 원이라고 하니...

싸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깎아달라고도 했지만, 시세대로 한다는 건물 주인의 말에 그냥 계약을 했던 것이다.

이제 와서 되돌릴 수도 없고...

수호는 괜히 속은 느낌이다.


같은 반찬가게가 권리금을 500만 원밖에 못 받았다고 하니 괜히 불쌍하게 느껴진다.

투자금은 다 회수하고 그만두는 건지 궁금했지만 확인할 길은 없다.


그 자리에 프랜차이즈 카페가 들어온다고 한다.

그것도 엄청 유명한.


보름만 기다렸다면 500만 원을 아낄 수 있는 프랜차이즈 카페 사장님.

세상 물정 모르고 매달 20만 원씩 덤탱이 맞고 있는 수호.

누가 더 바보일까?


부동산 사장님들도 참 나빴다.

조금만 생각해 주면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일인데...


‘내가 바보 같은 건지... 세상이 삭막한 건지...’


수호는 생각에 잠긴다.

근데 잠깐.

거기 프랜차이즈 카페가 들어오면 맞은편에 있는 개인 카페 사장님 쫄딱 망할 텐데?

건너편에는 커피가 정말 맛있는 개인 카페가 있다.

수호와 직원들도 자주 이용하는 곳이다.

아메리카노가 3,000원이지만 정말 괜찮다.

하지만 그 프랜차이즈를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개인 카페 사장님... 얼마나 힘들고 가슴 아파하실지...

조만간 들러야겠다고 생각하는 수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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