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24일.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
노란 가방을 멘 아이들이 사슴 머리띠를 하고 빵집에 들어간다.
수호 가게 앞에 있는 어린이집 아이들이다.
엄마와 케이크를 사 가는 모습을 보니 너무 귀여웠다.
은채도 오늘 아이들과 케이크를 사서 들어간다고 했다.
조금 있다가 영상통화 한다고 하면서 말이다.
매장을 일찍 닫고 들어갈 수는 있다.
하지만 아직 1년도 안 된 가게가 배불렀다는 소리 듣기 싫어서 정상영업을 하기로 했다.
은채에게도 미안하고 나혜와 승원이에게도 너무 미안했다.
반찬가게 해보겠다고 오기와 객기를 부리는 바람에 온 가족을 고생시키고 있었으니 말이다.
수호는 이럴 때마다 죄책감이 들었다.
비록 직장인일 때보다 수입은 더 많았지만...
따져보면 그것도 아니다.
시간과 월급을 계산해 보면 직장인일 때가 훨씬 효율적이었다.
직장생활에서 출퇴근 포함 10시간을 노동시간으로 계산한다면, 지금은 잠자는 시간 빼고 전부 일을 하고 있으니 노동시간이 평균 18시간 정도다.
직장 다닐 때는 빨리 때려치우고 사업을 해보는 게 꿈이었는데...
직접 이렇게 해보니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승승장구하고 성공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부류에 속한다는 것이 절대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사업이든 장사든, 자신감 하나로 시작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다.
시작하고 나서야 세상은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수호도 마찬가지다.
‘나는 대단한 존재야’, ‘나는 잘될 거야’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시작한 반찬가게였다.
결국 에고라는 것에 휘둘린 것이다.
에고란 자신이 가장 중요하고, 대단한 존재라고 믿는 잘못된 마음가짐이다.
너무 늦게 깨달은 것 같지만 말이다.
매장을 정리하고 있는데 은채에게서 영상통화가 왔다.
집에서 아이들과 저녁을 먹으며 케이크에 촛불을 불려고 준비 중이었다.
“우리 딸, 아빠가 아직 일이 안 끝나서 미안해. 엄마랑 동생이랑 촛불 후~ 하고 있어!”
“아빠, 언제 와?”
“이따가 나혜자면 갈 거 같은데? 엄마랑 코 자고 있어.”
“엄마랑 후~ 하고 승원이랑 자고 있을게요”
“응응, 역시 우리 딸 최고네. 내년엔 아빠랑도 촛불 후~ 하자!”
“네요~!”
수호 딸은 대답할 때 ‘네’와 ‘요’를 붙여서 쓴다.
‘안녕하세요‘할 때의 ‘요’를 붙여야 된다고 생각해서 그러는 것 같았다.
참 귀엽다.
손님이 들어오자 수호는 다급히 전화를 끊는다.
가족손님이었다.
아빠가 돌도 안돼 보이는 아이를 안고 있었고, 엄마는 딸아이 손을 잡고 들어왔다.
보자마자 데자뷔처럼 가족이 떠오르는 수호.
내일부터 주말이라 집에서 같이 먹을 반찬을 사러 들른 것 같았다.
“엄마, 우리 내일 집에서 다 같이 밥 먹을 거야?”
“응! 내일은 아빠도 회사 안 가시니까 다 같이 하루 종일 집에 있을 거야. 그리고 다음 주에는 우리 딸 방학이라 아빠가 회사도 안간다고 그랬데.”
“우와, 아빠 회사 안 가도 돼?”
“그럼. 우리 딸내미 방학인데 아빠랑 놀이터도 가고 눈사람도 만들고 그래야지. 동생은 아직 추워서 밖에 못 나가니까 우리가 집에서 잘 놀아주자.”
“그래! 엄마 나 이거 사줘.”
메추리알을 잡는 아이였다.
대화 내용을 듣다 보니 갑자기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수호다.
‘우리 딸내미도 다음 주에 방학인데...’
‘나는 하루도 아이와 놀아주지 못하는데...’
아이들이 일어나기 전에 나와야 하고 잠들면 들어갈 수밖에 없는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였다.
손님 앞에서 울 수 없었기에 모자를 더욱 눌러쓰고 허벅지는 있는 힘껏 꼬집는다.
그렇게 겨우겨우 참으며 계산을 하고, 아이가 잡았던 메추리알은 서비스로 주었다.
“아저씨, 감사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참고 있던 눈물이 터질 것만 같았다.
엄마 손을 잡고 나가는 아이의 모습을 보자마자 주방으로 뛰어 들어간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조리대 뒤에서 한참을 펑펑 우는 수호.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눈물을 흘린 적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산후조리도 제대로 못한 와이프가 매일 독박 육아를 하고 있고, 한창 뛰어놀 딸내미는 집이라는 감옥 안에서 혼자 책을 보고 그림을 그린다.
엄마는 동생을 케어하느라 바쁘고 아빠는 장사를 해야 해서 놀아주지 못하는 현실...
‘나는 정말 아빠로서 자격이 있을까?’
크리스마스인 내일도 집에 갇혀 있을 가족을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얼마나 서럽게 울었는지 수호의 두 눈이 퉁퉁 부었다.
수호는 눈물을 멈추고 생각한다.
‘안 되겠다. 내일은 문 닫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야겠어.’
8개월 만에 처음으로 하루 문을 닫기로 결정하는 순간이다.
장사의 기본은 영업시간을 지키는 것이라고 책에서 배웠지만, 지금의 수호에겐 감옥에 갇혀 있는 가족들이 먼저였다.
비록 하루뿐이라도 가족과 함께하며 행복해하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직장을 다닐땐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저녁시간이 이렇게 소중하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하지만 자영업을 해보니 가족과의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이제는 알 수 있었다.
수호는 문을 닫으며 문 앞에 종이를 한 장 붙인다.
<내일 하루만 쉬어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