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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코로나가 바꿔 놓은 일상.

- 알 수 없는 미래 -

by 부자형아

새벽에 잠에서 깬 수호는 펑펑 내리는 눈을 보더니 헐레벌떡 일어났다.

수호는 동대문으로 출퇴근하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이렇게 눈이 오는 날은 차가 엄청나게 막히기 때문에 빨리 움직여야 했다.

평소에도 차로 1시간 걸리는 출근길인데 눈이 오면 2시간이 넘게 걸린다는 것을 오랜 경험상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세 마음을 바꾸고는 천천히 출근 준비를 한다.

일찍 출근했다고 누가 인정해 주는 것도 아니고, 일하는 시간만 더 늘어날 뿐이니 말이다.

그냥 느긋하게 2시간 동안 라디오를 들으며 가는 게 어찌 보면 본인에게 더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사무실 도착시간은 8시 55분.

평소라면 그래도 30분 전에는 도착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눈 때문에 조금 더 오래 걸렸을 뿐.

도착하자마자 수호의 사장님은 잔소리를 한다.

“일이 없어도 좀 부지런히 와서 준비하고 신상도 개발하고 그래. 차도 사줬으면 빨리빨리 다녀야지!”

사장님은 바로 수호의 엄마다.

수호가 일하는 곳은 부모님이 30년 동안 운영하는 동대문의 작은 의류 부자재 업체다.

이곳에서 수호가 일한 지도 어느덧 10년이 넘어간다.

수호의 부모님은 1988년 장사를 시작하셨고, IMF, 외환위기, 닷컴버블과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승승장구했던 베이비부머 세대다.

2010년 동대문 거평프레야가 망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거평프레야 사건은 수호가 학생일 때 일어난 일이라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자세한 내막을 알지 못한다.

모른다기보다 자세히 알아보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수호의 아빠가 거평프레야라는 상가에 투자했고, 사기를 당해 3억을 홀랑 날린 것이다.

점포를 분양받아 월세를 받을 계획이었는데 거평이라는 회사가 부도났고, 돈을 돌려받기 위해 들어간 소송비만 1억은 족히 될 거라는 이야기를 어렴풋이 들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소유권을 넘기는 조건으로 받은 보상금 30%까지 임차인 연합회 대표가 들고 도망갔다고 한다.

수호의 집이 변하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다.

부모님은 매일 큰 소리로 싸우기 시작했고, 빚과 이자를 감당하기 위해 동분서주했으며, 정작 잘못한 아버지는 본인이 뭘 잘못했는지조차 잘 모르는 상황이었다.

수호가 좋아했던 집은 순식간에 지옥 같은 곳으로 변했고, 존경하던 부모님과 멀어지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태어나면서부터 부모님 덕분에 금수저라는 얘기를 들으며 자랄 정도로 유복했던 수호는 부족한 것이 없었다. 부모님께서 학교에 다녀가시면 선생님들이 유난히 잘해주었고, 학급 반장은 항상 수호였으며, 전교 회장까지 수월하게 뽑힐 정도로 그런 학창시절을 보내왔다.

대학생 때는 유일하게 자취방이 있는 신입생이었고, 술자리에선 남에게 빚지는 것이 싫다는 명목으로 항상 수호가 술값을 내곤 하였다.

그래서였는지 그의 주변에는 항상 친구들이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가 당한 사기는 수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훈련소에 들어간다는 이유로 대학교에 휴학계를 신청했지만, 실상은 등록금을 내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다녀와야 할 훈련소였기에 이참에 휴학한 것이 수호에게는 그나마 다행이었을지도 모른다.

수호는 어릴 때 축구 유망주로 프로선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제대로 몸 관리를 하지 않았던 탓에 십자인대 파열과 허리디스크 문제로 운동을 그만두었다.

부상으로 인해 사회복무요원 판정을 받았고 훈련소를 다녀온 뒤에도 그 지옥 같은 집에서 매일 출퇴근할 수밖에 없었다.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던 그때 그 시절, 수호에겐 평생 잊지 못할 사건이 하나 터졌다.

수호의 엄마는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모으다 도저히 안 되자 돈을 좀 구해오라며 아빠를 고모 집에 보냈다.

엄마의 마음을 아는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수호 아빠는 돈을 구해오기는커녕 고모 집에서 거하게 술 한잔을 하고는 양손에 김치와 수박을 들고 온 것이다.


‘쫘아악! 척!’


수호 엄마는 현관문을 열고 그것들을 복도에 내동댕이쳤고, 김치인지 수박인지 구분이 안 되는 빨간색 국물이 앞집 현관문과 복도를 뒤덮었다.

수호는 누가 볼세라 재빨리 물티슈를 가져와 복도와 앞집 문을 죄지은 파리마냥 싹싹 닦았다.

벌게진 앞집 현관문이 마음에 걸려 아세톤을 발라 닦기도 하였고, 김치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에프킬라까지 뿌렸지만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수호는 왜 이 장면을 평생 잊지 못할까?


그 사건 뒤로 수호가 집에 있는 시간은 급격하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주무실 때 들어가기 위해 퇴근 후 항상 약속을 잡았고, 주말에는 술자리를 만들기 위해 이 친구 저 친구 연락해서 불러내기 일쑤였다.

그날 이후로 수호에게 집은 쉬는 곳이 아니라 항상 눈치를 봐야만 하는 곳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금융위기, 부동산 폭락, 금리 인상 등으로 인해 수호네 매출도 점점 떨어지는 상태.

결국 사기로 인해 수억의 돈을 날린 부모님은 모든 직원을 다 내보냈고, 집은 40평대에서 20평대로 이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수호는 당시 3억이라는 돈이 그렇게 큰돈인 줄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부모님이 하라는 대로 해왔고, 시키는 대로 살아왔기에 그제야 너무 세상 물정 모르고 살았나 싶은 마음뿐이었다.

본인이 뭘 하고 싶은지, 취업은 어디로 해야 하는지 조차 정하지 못한 상태였고, 그냥 놀기 좋아하는 지방대 경제학과 3학년 학생일 뿐이었다.

결국 부모님이 내보낸 직원들을 대신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어쩔 수 없이 부모님 회사에 입사하게 된 것이다.


“콩나물을 팔아도 내 장사를 해야 하는 거다!”

“사업을 해야 나중에 더 큰 사람이 될 수 있어!”


수호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왔기에 부모님 회사에 들어가는 것이 크게 이상하지 않았다.

어쩌면 부모님이 사업을 시작하는 순간 본인도 그곳에서 일하는 것이 정해졌던 게 아닐지 하는 생각을 지금도 가끔 한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을 증명하는 것처럼 얼마 지나자,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이 개방되면서 동대문 시장은 다시 한번 불타올랐다.

2016년 중국인들이 보따리를 싸 들고 동대문에 있는 옷들을 싹쓸이해 갔다.

우리나라 섬유나 옷 퀄리티가 상당히 좋았기 때문이다.

사무실도 엄청나게 일이 많아졌고, 1년 동안 외주로 해오는 작업만 해도 기계 한 채를 살 수 있는 값이 되었다.

3년 동안 외주업체에 결제한 대금만 몇억이 되자 결국 수호 부모님은 대출을 받아 기계를 사기로 결정한다.

“사업은 대출로 키우는 거야!”

“내 돈 가지고 장사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다 대출이지!”


수호 부모님은 항상 이렇게 이야기하셨다.

이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자영업을 경험해 본 지금의 수호는 대출이 얼마나 위험한 양날의 검인지를 이제는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수호 부모님은 아파트 담보대출과 신용대출을 모두 끌어모아 자금을 마련하였고, 기계를 구입하여 외주로 해오던 작업을 직접 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꾸준하게 장사가 잘될 것이라 생각하였고, 수호랑 그의 여동생이 이 사업체를 꾸려나가면 되었기 때문에 과감하게 투자를 결정하셨던 것이다.

수호는 이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꽃길만 걸을 줄 알았다.

신혼생활 1년 차에 예쁜 딸도 생기고, 사무실까지 자리를 잡아가고 있으니 세상에 걱정이 어디 있었겠는가. 하지만 그 꽃길은 얼마 가지 못하고 전부 시들어버렸다.


기계를 들인 지 6개월이 지난 2019년 겨울.

중국에서 이상한 병이 생겼다는 뉴스가 보도되기 시작했다.

처음엔 우한 폐렴이라고 불렸는데 그것이 바로 지금까지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하고 있는 코로나다.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는 사망자 수가 급격하게 늘어나더니 점점 세계로 퍼져나갔다.

코로나가 우리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줄지 이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2020년 1월 20일 우리나라에서도 첫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했다.

이후 전국적으로 코로나 환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마스크를 엄청나게 사재기하는 기이한 상황까지 발생하였다.

중국에서 오던 보따리 상인들은 점차 모습을 보이지 않더니 급기야 국경 폐쇄라는 국가적 봉쇄를 단행하였다. 광저우에서 들어오던 값싼 의류 부자재들 또한 물류가 막히면서 제대로 공급되지 않았고, 그로 인해 동대문의 수많은 업체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수호네는 시설투자를 한 지 1년도 되지 않았기에 그저 희망 회로만 돌리며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본인들이 잘못한 것이 아니기에 더더욱 그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중국인들이 동대문을 방문하지 못하자 이렇게 한가할 수가 없었다.

3년 동안 바쁘게 일하고 움직였던 것들이 오래오래 지속될 것이라고 착각했던 것이다.

물론 코로나라는 전염병을 예측한 사람도 없었겠지만, 경제나 시장 상황이 급변하는 것 또한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수호네는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많은 이야기를 해보았지만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기계를 구입한 투자금도 문제거니와 매달 사업장을 유지하는 비용만 1,000만 원이 넘어가는 상황.

거기에 부모님 생활비, 본인과 여동생 월급, 대출 원금과 이자까지.

정말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었다.

그나마 3년 동안 바쁘게 일하면서 모은 돈과 조금씩 들어오는 마스크 작업을 하면서 버텨보는 수밖에 달리 방도가 없었다.

코로나는 갈수록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고, 동대문 시장은 모래성처럼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이처럼 코로나는 전 세계를 뒤집어 놓았고, 우리나라의 경제를 흔들었으며, 수호의 일상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어느덧 1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2021년 2월을 향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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