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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에서 소 알꼬리로 끓이는 럭셔리 꼬리곰탕

비법 레시피 첨부

*대문 사진은 사우디 내무부 건물입니다.


사우디에서 초1이랑 4살짜리 키우려면 세 가지 아주 커다란 난관에 봉착하게 됩니다. 하나는 먹을 거리고, 다른 하나는 놀 거리,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사우디로 오시는 주재원 가족들이 가장 걱정하는 공부거리죠. 오늘은 먹을 리 중에서도 꼬리곰탕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집에서 곰탕 끓여보고 싶은 분은 레시피를 참고하시면 도움이 될 겁니다.


저희 애들은 입맛이 딱 한국 시아버지 입맛입니다. 아침 상에는 국이 꼭 있어야 하고요. 반찬도 한국식 나물 무침이나 연근조림, 김장 김치 이런 거 좋아합니다. 아마 어려서부터 외국을 전전하니까 사 먹일 게 마땅치 않고, 그래서 집밥을 많이 해 먹이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아요.


며칠 전에도 어머님께서 김장 김치를 보내주셔서 타파통에 정리하고 있는데 옆에서 맨 김치를 계속 쓱쓱 찢어먹어서 고춧가루에 속 쓰릴까 봐 얼른 안주(?) 삼아 족발을 시켜줬네요.

사우디에서 찍은 의미 없는 고양이 사진

할튼 사우디에서도 아침에 국을 찾는 건 여전해서 국을 끓여야겠는데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습니다. 일단 돼지고기는 특별한 날에 구워 먹는 거니까 돼지김치찌개류는 어렵다고 봐야 하고요. 배추된장국도 좋아하는데 이것도 어렵습니다. 


된장이야 저장성이 좋으니 잔뜩 구비해 둘 수 있지만 배추를 구하기가 어렵거든요. 차이니즈 캐비지라고 배추를 팔긴 하는데 너무 비쌉니다. 꾹 누르면 쑥 들어가는 속이 텅텅 빈 풍선배추 1/4 포기에 1만 5천 원 정도 하니까요. 물론 그것도 여러 마트를 뒤져서 재고를 잘 찾아냈을 때 얘요.


그래서 보통은 호주산 소고기를 넣은 소고기 무국이나 소고기 미역국을 주로 합니다. 무는 꼭 국산무 아니라도 레디쉬를 구할 수 있고 미역은 부피도 작고 가벼워서 국제 택배로 받기에 부담이 없거든요. 그런데 일상적으로 먹는 것을 그렇다 치고, 제가 재료를 구할 수 있다면 꼭 끓이던 국이 있습니다. 바로 꼬리곰탕이요.


뉴욕에 있을 때 (사우디로 가기 전에 2년 동안 뉴욕에서 살았습니다 뉴욕 일기도 절찬리에 연재 중인...;;) 우드버리 아웃렛에서 초특가 단돈 100달러에 구입한 무려 국내에서 출시되지 않은 28급 대형 르쿠르제 무쇠냄비가 있거든요. 여기다가 꼬리곰탕을 끓입니다.

사우디에서 찍은 의미 없는 고양이 사진

사실 처음부터 꼬리곰탕을 하려던 건 아니고 그냥 사골국물이나 내서 먹이려고 했는데 에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사우디에서 누린내 나지 않는 소고기를 구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굽거나 양념을 하면 훨씬 덜하긴 한데 물에 넣고 끓이면 얄짤없이 배꼽 후빈 냄새가 온 집안에 진동을 하거든요.


그런데 타미미라는 현지 마트에 가면 가끔 호주산 알꼬리가 들어옵니다. 꼬리찜할 때 쓰는 그 비싸고 양 적은 알꼬리 말입니다. 아마 한두 달에 한 번 정도 발견했던 것 같네요. 한 팩에 주먹만 한 큰 덩어리가 3개 정도 있고 살 거의 없는 꼬다리까지 다 합쳐서 10~12점 정도 들어있습니다. 아마 한 팩에 1만 2천 원 정도 했던 것 같습니다. 냄새도 전혀 없고 맛도 좋지요.


어느 날 마트에 갔는데 그게 있으면 정육점 냉장고 저 안쪽까지 뒤져서 있는 재고를 다 꺼냅니다. 그럼 보통 5~7팩 정도 나오거든요. 그러면 살점이나 뼈가 실한 것 위주로 골라서 보통 4팩을 사 옵니다. 4팩보다 적으면 그냥 다 쓸어오고요. 사재기가 아니라 실수요니까요. 흠흠.


아침부터 오후 3시쯤까지 핏물을 뺍니다. 이 뼈나 고기를 담가두면 나오는 빨간 물이 피가 아니라는 건 아는데 그래도 핏물이 익숙해서 말이죠. 핏물을 충분히 안 빼면 고기에서 냄새가 나거나 질겨지거든요. 꼭 반나절 이상 빼줘야 합니다.

사우디에서 찍은 의문의 침입자 사진 

그리고 오후 3시쯤부터 6시간을 끓입니다. 처음에는 센 불로 해서 펄펄 끓기 시작하면 중약불로 낮춥니다. 르쿠르제 무쇠솥이 이때 진가를 발휘하지요. 불을 낮춰도 뜨거운 열을 잘 보존하고 있어서 계속 뭉근하게 끓어주기도 하고, 6시간씩 끓여도 물이 잘 줄어들지 않는 것도 특징입니다.


처음 펄펄 끓고 10분쯤 되면 일단 물을 한 번 다 버립니다. 시커먼 썸띵 지저분한 거품이랑 이물질이 다 나오니까요. 뼈고기 건져내고 물 버리고 솥을 닦은 다음 다시 끓입니다. 이 번에는 2시간을 끓이죠. 1시간쯤 끓이면 갈비탕처럼 투명한 색입니다. 2시간을 끓이면 우유 먹던 컵에 물 부었을 때 색이 나옵니다.


핏물을 충분히 빼줬다면 지금쯤 뼈에서 고기가 발라질 겁니다. 냉동 상태의 꼬리를 그대로 끓여본 적도 있는데 그러면 이 단계에서 고기가 딱딱하고 질기고 분리가 안 되죠. 고기는 절대 냉동 상태에서 요리를 하면 안 됩니다.


고기는 다 떼서 락앤락에 담아서 한 김 식힙니다. 아니면 초간장을 만들어서 살짝 찍어서 애들 주면 꼬리 2팩 정도는 그 자리에서 사라집니다. 고기를 발라낸 뼈만 국에서 계속 끓입니다. 지금까지 2시간 끓였으니 앞으로 4시간 더 끓이면 됩니다. 2시간쯤 됐을 때 뚜껑을 열어보면 물 탄 우유가 아니라 그냥 우유색이 나올 겁니다.

사우디에서 찍은 의미 없는 고양이 사진

다 끓이고 나면 저녁 9시쯤 됐을 텐데요. 국물을 유리병으로 옮겨 담습니다. 저는 이케아에서 파는 유리자(jar)를 이용했습니다. 병목이 따로 없이 위아래가 같은 폭을 유지하는 제품이 좋습니다. 기름을 제거하려는 목적이거든요.


유리병에 담은 국물은 모래먼지가 들어가지 않게 윗부분을 랩으로 잘 싸서 부엌 바깥에 내놓습니다. 사우디도 저녁은 제법 춥거든요. 여기서 한 김 식히고 나중에 밤 12시가 되면 냉장고로 옮겨줍니다. 12시까지는 설거지를 하든가 다른 반찬을 준비하는데 쓰면 좋겠네요.


다음날 아침이 되면 유리병 위에 약 1cm 두께로 기름막이 굳어져 있습니다. 얼음낚시 하듯이 숟가락으로 구멍을 내서 들어 올리면 통째로 올라옵니다. 그걸 버리면 꼬리곰탕 먹을 준비 완료!


소금간만 해서 국물 맛을 보면 아.. 식당에서 파는 거랑은 다른 정말 진한 맛이 나옵니다. 먹다가 흘리거나 입술에 묻으면 아주 끈적끈적하죠. 밥 말아서 아껴둔 묵은지랑 먹으면 아주 그만입니다.

맛있게 잘 끓인 사진이 필요한데 딸내미가 흡입하는 사진밖에 없네요. 평범한 반찬 국인데 사진을 찍어뒀을 리가 없긴 하죠

우리나라에서야 알꼬리가 워낙 비싸니까 꼬리만 가지고 끓이기는 어렵습니다. 사골이나 잡뼈를 좀 섞어야 여러 번 우리기도 좋고 양이 좀 나오지요. 사골을 못 구해서 불가피하게 만들게 된 요리였습니다만 알꼬리가 그리 비싸지 않은 환경이다 보니 의도치 않게 입맛이 호강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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