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주변에 치매에 대한 걱정이 한가득이다. 멋지고 우아하셨던 친구들의 부모님들이 치매에 걸려서 품위를 잃어가는 얘기를 듣다 보면 남의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에는 강연가로 이름을 날리던 김창옥 강사가 알츠하이머일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유튜브에 나누면서 두려움이 배가 되었다. 그의 나이가 단지 50대 초반이라는 사실이 더욱 두려움을 더한다. 주변에 은퇴한 지 얼마 안 된 60대 선배들이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는 얘기를 들으면 우리가 꿈꾸는 은퇴 후의 멋진 삶은 남의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두려워진다.
그래서 요즘 뇌에 대한 관심이 많아진 것 같다. 뇌 CT나 뇌 MRI를 통해서 동맥류나 약간의 이상들을 발견하면 여러 가지 고민들에 놓이게 된다. 수술을 해야 하는가, 수술하다가 더 잘못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들. 모르는 게 약이라고 검사를 안 했으면 모르고 평생을 살다갈 수도 있는데 만에 하나라는 생각 때문에 딜레마에 빠지는 것이다.
내 경우는 외할머니가 뇌출혈로 돌아가셨고, 엄마는 동맥류를 가지고 계시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도 꽈리 형태의 동맥류가 있다. 이러다 보니 갑자기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 아무렇지도 않게 건강하게 지내고 있는 순간에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지니고 다니는 느낌이랄까.
다른 질환에 비해 뇌질환은 문제가 생기면 평생 가족들을 괴롭히며 불구의 몸으로 살게 때문에 더욱 무서운 병이 아닌가 싶다.
몇 해 전 뇌경색으로 입원한 지인의 병문안을 갔을 때 보았던 뇌질환 환자들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콧줄을 꿰고 영양분을 공급받는 의식이 없는 환자도 많았고, 거의 의사 표현이 안되게 어눌하게 말하는 사람들, 제대로 걷지 못하는 사람들, 정말로 내가 보기에도 완쾌에 대한 희망이 없어 보였다. 나는 그 환자들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내가 건강하다는 사실에 다행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하지만 감사하는 마음과 함께 언제든지 그들과 비슷해질 수도 있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안 하고 노심초사하면서 만에 하나 일어날 일만 걱정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다. 먹고 싶은 것도 마음껏 먹고, 가고 싶은 곳도 마음껏 가고 하고 싶은 것도 마음껏 하면서 거리낌 없이 살아왔고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은 불안은 어쩔 수가 없다. 특히나 주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존재는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가장 크다.
그러고 보면 내게 주어지는 건강한 하루하루가 모두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범한 하루가 얼마나 귀한 것인가 생각하게 된다. 마음속의 두려움을 잊고 감사하는 마음에 집중하면서 살기로 마음먹어야겠다. 그게 내게 주어진 소중한 삶을 잘 가꾸어 나가는 올바른 길이라 믿기 때문이다. 아울러서 정리하는 삶도 필요하다. 어느 날 갑자기 떠나도 괜찮을 정도의 정리는 필수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들을 하다 보면 비관주의자가 되는 것 같아 두렵지만 약간의 비관주의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마냥 들뜬상태로 살 수 없으니 가끔 자신을 돌아보는 데 필요하다.
어떻게 남은 생을 살아갈 것인가. 주변에 선배들의 삶을 보면 아프거나 치매에 걸린 부모들을 돌보거나 자라나는 손자 손녀들을 돌보는 사람들이 많다. 인간은 누군가의 삶에 기여할 때 안정감을 느끼고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래서 매일 해야 하는 일이 필요한 것이다.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일, 내가 있어야 하는 일이 있을 때 인간은 존재감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네가 있어서 참 좋아’라고 해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을 때 인간의 삶은 풍요로워지는 것이다. 그 삶이 힘들고 고통의 연속일지라도 그것이 그를 살게 하는 것이다.
날씨가 차갑다.
오늘도 나에게 주어진 소중한 하루다.
먼저 밖에 나가 나를 위해 팥죽 한 그릇을 사 먹고, 그 다음 마음이 쓰이는 친구들에게 커피 쿠폰이라도 보내 주고, 장을 봐 와서 사랑하는 가족에게 삼계탕을 끓여줘야겠다.
주변 사람들에게 나 자신이 필요한 존재가 되려는 노력을 해야지. 그것이 나를 살아가는 힘을 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