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를 푸는 수단 중에 쇼핑은 단연 으뜸이다. 고생한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의미로 뭔가를 마구마구 산다. 이렇게 물건을 살 때, 선택받는 자가 아닌 선택하는 자가 된듯한 자부심이 나를 들뜨게 하고 카타르시스를 선물하는 것 같다. 사도 되고 안 사도 되고, 결정자가 나라는 인식,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작은 세상에서 느끼는 우월감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일이 제대로 안 풀리고 인생이 막막하게 느껴질 때 쇼핑을 하면 그날의 우울감을 조금은 날려버릴 수 있다.
내가 가장 즐겨하는 쇼핑은 옷을 사는 것이다. 비싼 명품이 아닌 하찮은 것들을 즐겨 산다. 저렴하지만 내 취향인 것들, 조금 지나면 저런 걸 왜 샀을까 싶은 것들, 예쁘지만 내가 입기에는 조금 과한 것들을 장난감 모으듯 여러 개를 사 온다. 집에 오면 거실 바닥에 풀어놓고 하나씩 입어 본다. 대부분 사이즈가 맞지 않고, 디자인이 과하다.
그때부터가 즐거움의 시작이다.
이것을 어떻게 고쳐서 내 몸에 딱 맞게 만들어 볼까 생각한다. 그리고 바느질고리를 가져와서 고치기 시작한다. 특별한 방법도 기술도 없다. 그냥 이리저리 자르고 붙이고 하면서 내 몸에 딱 붙는 옷을 만들어 낸다. 손바느질로 한 땀 한 땀 옷을 만들어 내는 시간이 나에겐 또 다른 즐거움이다. 처음부터 옷을 만들어 내는 것은 엄두가 안 나지만 이미 만들어진 옷을 이리저리 고치는 것은 독학으로도 대충 가능한 일이라서 꾸준히 하다 보니 솜씨가 많이 늘었다. 그렇다고 해서 어디 내놓을 만한 정도는 아니다. 걸쳐 입고 나갈 수준은 되니 그 정도면 됐다고 생각한다.
이 일은 꽤 즐기는 취미가 되어서 지금은 오래된 옷을 수거함에 내놓기 전에 이리저리 고칠 수 있는가를 타진해 보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내놓는다.
주변 사람들은 미싱을 배워서 제대로 옷을 만들어 보라고 한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바느질은 명상하듯이 한 땀씩 뜨는 것이다. 게다가 기계를 다루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물건 생산이 목표가 아닌 과정 자체가 목표이기 때문에 뜨개질이나 퀼트처럼 즐기는 현재가 만족스럽다.
다만 날이 갈수록 안 좋아지는 시력 때문에 지속 가능한 취미가 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는 있다.
인터넷 쇼핑은 또 다론 즐거움이 있다. 주문을 결정할 때의 두근거림, 물건이 도착할 때까지의 설렘, 도착한 이후에 물건을 이리저리 만져보며 느끼는 즐거움이 추가된다. 물건을 직접 고르면서 바로 사는 것과는 다르게 실패할 확률도 높기 때문에 내 손바느질 대상이 되기 쉽다. 인터넷 쇼핑을 하고 반품을 해본 적은 한 번도 없다. 내가 고치면 되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쇼핑할 때 체크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는 디자인이 맘에 들어야 한다. 내가 손을 댈 수 있는 것은 길이와 품, 어깨 정도이기 때문에 카라 모양이나, 목선이 내 마음에 들어야 한다. 다음으로는 옷감이다. 바느질하기 좋은 옷감은 면 종류이다. 면이 입었을 때 감촉도 좋고, 정전기도 일지 않고, 수선할 때 군더더기가 없어서 가장 선호한다. 그런데 이 두 가지를 만족하는 옷들은 대체적으로 비싸고, 엄청 사이즈가 크다. 거의 옷을 반으로 만들다시피 해야 한다. 그래서 만들다가 못쓰게 된 것도 있다. 그렇게 되면 원피스를 치마로 만들거나, 블라우스로 만든다. 사실 옷장에 있는 많은 옷들이 입기 위해서라기보다 고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경우도 많다.
사실 생각해 보면 쇼핑과 바느질 이 두 취미는 돈이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들고(손바느질을 하기 때문에), 쓸데없는 것에 돈을 쓰는 이상한 취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손절을 하지 못하고 있다. 옷을 살 때의 기대감, 옷을 고쳤을 때의 성취감이 주는 짜릿함이 나를 만족시켜 주기 때문이다.
아예 그만두는 것은 힘들 것 같고, 서서히 줄여나갈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옷장의 옷정리를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쓸데없는 옷들이 너무 많고, 고치는 것 자체가 목적인 옷도 많아서 미니멀라이프에 정반대 되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버리려고 하면 잘 안 되는 건 미련이 많아서라는 생각이 든다. 뭐든 때가 있는 것이라서 조금은 기다려 볼까 한다. 어느 순간 손바느질이 귀찮아지는 순간이 오겠지.
하이에나처럼 고칠 만한 옷을 찾아 헤매는 나의 이상한 쇼핑 중독, 사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도 쇼핑을 가고 싶은 충동이 일고 있다. 이 충동을 가라앉히는 좋은 방법은 옷장 정리를 하는 것이다. 옷장 속에서 내가 고칠 만한 옷을 찾아내면 되는 거니까.
그럼 글은 그만 쓰고 옷장 정리하러 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