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쇼핑

by 작은영웅 Mar 28. 2025

스트레스를 푸는 수단 중에 쇼핑은 단연 으뜸이다. 고생한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의미로 뭔가를 마구마구 산다. 이렇게 물건을 살 때, 선택받는 자가 아닌 선택하는 자가 된듯한 자부심이 나를 들뜨게 하고 카타르시스를 선물하는 것 같다. 사도 되고 안 사도 되고, 결정자가 나라는 인식,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작은 세상에서 느끼는 우월감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일이 제대로 안 풀리고 인생이 막막하게 느껴질 때 쇼핑을 하면 그날의 우울감을 조금은 날려버릴 수 있다.


내가 가장 즐겨하는 쇼핑은 옷을 사는 것이다. 비싼 명품이 아닌 하찮은 것들을 즐겨 산다. 저렴하지만 내 취향인 것들, 조금 지나면 저런 걸 왜 샀을까 싶은 것들, 예쁘지만 내가 입기에는 조금 과한 것들을 장난감 모으듯 여러 개를 사 온다. 집에 오면 거실 바닥에 풀어놓고 하나씩 입어 본다. 대부분 사이즈가 맞지 않고, 디자인이 과하다.


그때부터가 즐거움의 시작이다.

이것을 어떻게 고쳐서 내 몸에 딱 맞게 만들어 볼까 생각한다. 그리고 바느질고리를 가져와서 고치기 시작한다. 특별한 방법도 기술도 없다. 그냥 이리저리 자르고 붙이고 하면서 내 몸에 딱 붙는 옷을 만들어 낸다. 손바느질로 한 땀 한 땀 옷을 만들어 내는 시간이 나에겐 또 다른 즐거움이다. 처음부터 옷을 만들어 내는 것은 엄두가 안 나지만 이미 만들어진 옷을 이리저리 고치는 것은 독학으로도 대충 가능한 일이라서 꾸준히 하다 보니 솜씨가 많이 늘었다. 그렇다고 해서 어디 내놓을 만한 정도는 아니다. 걸쳐 입고 나갈 수준은 되니 그 정도면 됐다고 생각한다.


이 일은 꽤 즐기는 취미가 되어서 지금은 오래된 옷을 수거함에 내놓기 전에 이리저리 고칠 수 있는가를 타진해 보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내놓는다.

주변 사람들은 미싱을 배워서 제대로 옷을 만들어 보라고 한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바느질은 명상하듯이 한 땀씩 뜨는 것이다. 게다가 기계를 다루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물건 생산이 목표가 아닌 과정 자체가 목표이기 때문에 뜨개질이나 퀼트처럼 즐기는 현재가 만족스럽다.

다만 날이 갈수록 안 좋아지는 시력 때문에 지속 가능한 취미가 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는 있다.


인터넷 쇼핑은 또 다론 즐거움이 있다. 주문을 결정할 때의 두근거림, 물건이 도착할 때까지의 설렘, 도착한 이후에 물건을 이리저리 만져보며 느끼는 즐거움이 추가된다. 물건을 직접 고르면서 바로 사는 것과는 다르게 실패할 확률도 높기 때문에 내 손바느질 대상이 되기 쉽다. 인터넷 쇼핑을 하고 반품을 해본 적은 한 번도 없다. 내가 고치면 되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쇼핑할 때 체크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는 디자인이 맘에 들어야 한다. 내가 손을 댈 수 있는 것은 길이와 품, 어깨 정도이기 때문에 카라 모양이나, 목선이 내 마음에 들어야 한다. 다음으로는 옷감이다. 바느질하기 좋은 옷감은 면 종류이다. 면이 입었을 때 감촉도 좋고, 정전기도 일지 않고, 수선할 때 군더더기가 없어서 가장 선호한다. 그런데 이 두 가지를 만족하는 옷들은 대체적으로 비싸고, 엄청 사이즈가 크다. 거의 옷을 반으로 만들다시피 해야 한다. 그래서 만들다가 못쓰게 된 것도 있다. 그렇게 되면 원피스를 치마로 만들거나, 블라우스로 만든다. 사실 옷장에 있는 많은 옷들이 입기 위해서라기보다 고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경우도 많다.


사실 생각해 보면 쇼핑과 바느질 이 두 취미는 돈이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들고(손바느질을 하기 때문에), 쓸데없는 것에 돈을 쓰는 이상한 취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손절을 하지 못하고 있다. 옷을 살 때의 기대감, 옷을 고쳤을 때의 성취감이 주는 짜릿함이 나를 만족시켜 주기 때문이다.

아예 그만두는 것은 힘들 것 같고, 서서히 줄여나갈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옷장의 옷정리를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쓸데없는 옷들이 너무 많고, 고치는 것 자체가 목적인 옷도 많아서 미니멀라이프에 정반대 되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버리려고 하면 잘 안 되는 건 미련이 많아서라는 생각이 든다. 뭐든 때가 있는 것이라서 조금은 기다려 볼까 한다. 어느 순간 손바느질이 귀찮아지는 순간이 오겠지.


하이에나처럼 고칠 만한 옷을 찾아 헤매는 나의 이상한 쇼핑 중독, 사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도 쇼핑을 가고 싶은 충동이 일고 있다. 이 충동을 가라앉히는 좋은 방법은 옷장 정리를 하는 것이다. 옷장 속에서 내가 고칠 만한 옷을 찾아내면 되는 거니까.

그럼 글은 그만 쓰고 옷장 정리하러 가봐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막내 동생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