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는 안 보이는데 기류를 지배한다
회사에 대해 사실적으로, 공익적인 목적에서 글을 쓰고 있다는 점을 먼저 밝혀두고 싶다. 하지만 혹시라도 명예훼손으로 신고를 당할까 두려워 표현을 둥글게 다듬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 양해를 구한다. 정작 이 회사가 망하기도 전에 내가 먼저 망할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앞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가능성이 훨씬 높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내가 가장 먼저 판단한 건 계약서를 다시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사내 분위기에 최대한 빨리 적응해야겠다는 것이었다. 계약서를 봤어야 했는데, 키보드 카이저의 존재감과 기류가 워낙 강해서 그 흐름에 눌린 채 눈치를 먼저 보게 됐다.
그렇게 사내 분위기를 살피는 데 온 신경을 쏟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키보드 카이저’라 불리는 실질 운영자의 발언 스타일과 반응 방식이 주는 긴장감 때문이었다. 그는 사내 메시지 채널에서 간헐적으로 이런 말을 남겼다.
“맞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
“판단은 빠를수록 좋다.”
처음엔 단순한 원칙적 조언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발언들이 일종의 문화처럼 작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정인을 직접 겨냥하진 않았지만, 가끔씩 톤이 묘하게 예민한 결을 건드리는 듯한 날카로움이 있었다. 마치 ‘공기 중에 깔리는 압박’ 같달까.
반면, 성과가 분명한 사람에게는 칭찬과 격려가 아낌없이 주어졌다. 보상도 빠르고 명확했다. 그런 구조 속에서 치열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그 시스템 안에서 잘 살아남고 있었다. 적당히 일해선 버티기 어렵다는 사실은 금방 실감할 수 있었다. 업무 자체가 결과 중심적이었고, 내가 기대했던 마케팅 업무와는 조금 결이 달랐다.
그 당시 내가 받은 첫인상은 이랬다.
‘성과를 내면 대우도 확실한 곳이구나. 열심히 해보자’
하지만 그 생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성과가 있었던 직원도 일정한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어느 순간 얼굴을 뵐 수가 없었다. 누가 먼저 그만두자고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판단하고 물러나는 흐름이 자연스레 자리 잡고 있는 듯한 구조였다. 어느 순간 나도 그 흐름에서 예외일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입사 이틀 만에, 나는 이 회사를 빠르게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구직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틀 만에 다시 구직을 준비하게 되다니 아이러니했다.
다만, 당장 자리를 옮기기는 어려웠기에 먼저 마음의 준비부터 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이곳에서 내가 보고 느낀 모든 것들을 기록으로 남기자고. 그 당시엔 그저 황당한 경험을 나중에 회상할 수 있는 일화쯤으로 생각했다.
진정서를 쓰게 될 줄은, 그땐 정말 몰랐다.
※ 이 글은 실제 경험에 기반한 기록으로, 특정인을 비방하거나 기업의 명예를 훼손할 의도가 전혀 없습니다. 글 속 등장인물은 모두 가명이며, 내용은 당시의 상황을 최대한 주관적으로 풀어낸 서술임을 알려드립니다. 불특정 한 독자에게 전달되는 개인적인 기록이므로, 글에 등장하는 구조나 표현은 어디까지나 한 개인의 시선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