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지 않는 사람들, 출근해도 없는 사람들
출근, 그것은 각자 생존을 배우는 것이었다.
키보드 카이저의 기세는 식을 줄을 몰랐다. ‘횡포’라 부르는 것이 과장일 수 있다면, 아마 그저 그런 성격이었을 것이다. 감정을 억누르지 않았고, 타인에 대한 평가는 거리낌 없이 흘러나왔다. 계급을 나누는 데에도 주저함이 없던 사람. 그런 세계에 익숙한, 그리고 그것을 정당화하는 말투였다.
면접을 봤던 대표는 한 번도 출근하지 않았다. 마땅한 인수인계도, 업무 설명도 없이 우리는 ‘일’이라는 물속에 툭 하고 던져졌다. 사수는 없었다. 아니,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는 쪽이 정확하겠다.
물론 고영희 과장은 등장했다. 그러나 타 지점 관리자였기에 머물지 않았고, 홀연히 사라지는 날들이 많았다. 교육이란 것도 없었다. 오전에 와서 오후에 사라졌고, 질문을 던질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누군가 우리를 지도할 사람이 없다는 건, 예상 밖의 자유로움을 가져다주었다. 어딘가 쉬는 시간처럼. 우리는 낯선 그 ‘방치된 자유’를 만끽했다.
업무에 대해 아는 바 없는데, 성과를 요구하지도 않는다니. 심지어, 이 시간이 주어지는데 돈까지 받는다니. 기쁘지 않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당장은 괜찮은 것 같았다. 오히려 기뻤다.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것 같아서.
입사 3일째, 다른 부서에서 일하던 윤사원과 편하게 말을 섞게 되었다. 출근하면 대화할 사람도 한정되었으니 그녀와 친해지는 것은 금방이었다. 입사 두 달 차였던 그녀는 우리가 입에 담지 못하던 궁금증에 담담하게 답해줬다.
“가족 회사예요?”
“전혀요.”
그녀의 말은 단호했다. 구성원들은 모두 타인이었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다. 그 누구도 ‘가족처럼’ 굴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 더 낯설고, 책임이 없는 분위기였다. 우리는 다시 물었다.
“그럼 왜 이렇게 사람들이 조용히 사라지죠?”
“정말로 조용히 사라지는 경우가 많아요. 왜 안 나오는지… 따로 전달받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그냥 어느 날, 안 오더라고요.”
그녀는 덧붙였다.
“간혹 언쟁 뒤에 퇴사하는 경우도 있긴 해요.”
그렇게 들은, 그렇게 사라진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 빈자리 위로 우리 셋이 채워졌다는 사실.
대부분의 정황을 머릿속에서 정리한 후에는 마치 다른 세계에 스며든 기분이었다. 이 회사의 규칙은 단순했다. 성과가 곧 생존, 생존이 곧 보상이었다.
우리는 각자의 노트북을 열고, 머리를 맞댔다. 마케팅 전략을 짰고, 시장 반응을 분석했고, 홍보 문구를 뜯어고쳤다.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사수가 되었다. 아무도 우리를 돌보지 않았기에, 더 단단히 서로에게 기대게 되었다.
이 회사를, 이 구조를 견딜 수 있을까. 아니, 성과만 낼 수 있다면 어쩌면... 정말 괜찮을지도 모르겠다고. 기묘하지만, 희망은 언제나 어딘가에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견뎠다. 이상한 회사였다. 묘하게 해방감을 주는 동시에, 불안과 긴장을 놓지 않게 하는 곳. 우리는 서로에게 말하지 않아도 아는 눈빛으로 매일을 버텼다. 이 회사에서 ‘존재한다’는 건, 곧 스스로를 증명해야만 가능한 일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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